▲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대표, 강변교회 담임)

교회사를 초대 교회사, 중세 교회사, 종교 개혁사, 근세 교회사, 현대 교회사 등으로 구분하는데, 중세 교회사는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약 1천년의 시대를 가리킨다. 정확하게 말해서 로마 제국의 어린 황제 로물루스가 오도바칼에 의해 폐위되어 로마 제국이 붕괴된 476년부터 터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풀이 함락된 1453년까지의 시대를 가리킨다. 중세의 특징들을 열거하면 교황권의 확대, 수도원 제도의 발전, 십자군 운동, 스콜라 신학의 형성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중세의 신앙과 삶의 특징을 이루는 수도원 제도에 대해서 살펴본다.


“수도원 제도, 그 역사와 원리”

수도원 제도는 4세기에 이르러 전성을 이루기 시작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발전이 시작됐다. 종말론적 기대와 박해의 시대가 지나간 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면서 차츰 안정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상을 획득한 반면 영적 특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일부 신자들에게는 기독교가 세상에 적응하고 이완된 생활을 하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배신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기독교가 점점 세속화 되면서 신자의 생활과 불신자의 생활을 구별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타락한 로마 제국의 시민으로 살면서 동시에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자처하는 것이 용납되기가 어려워 보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명령의 도전과, 명상의 생활을 이상적 생활로 간주하는 희랍 전통의 영향과, 그리고 혼란한 세상으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인간 본성적 충동에 따라, 경건한 신자들이 세상을 떠나 사막에서 고립된 은둔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보는’(Visio Dei, vision of God) 생활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수도사들(monks)은 육체를 괴롭히고 옷을 남루하게 입고 죽지 않을 정도로 적게 먹는 금욕 생활을 하며 기도와 명상에 전념했다.

동방의 수도원들이 대체로 개인적이고 금욕주의적이었는데 비해 서방의 수도원들은 공동체적이고 중용적이었다. 수도원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도원 규칙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카시안(Cassian), 파코미우스(Pachomius), 어거스틴(Augustine) 등이 규칙들을 만들었고 6세기에 눌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 543)가 가장 표준적인 규칙인 ‘베네딕트의 규칙’을 만들었다. 베네딕트의 규칙(Rules of Benedict)의 특징은 질서와 안정, 훈련의 중용 그리고 융통성을 강조한 점이다.

수도원의 역사는 타락과 개혁의 역사였다. 수도원의 발전과 성공은 안일과 세속화를 가져 왔고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이 일어났고 그리고는 또 다시 타락이 뒤따르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개혁 운동은 (1)10세기 말의 쿨루니 운동(the Cluniac) (2)12세기의 씨스터시안 운동(the Cistercian) 그리고 (3)13세기의 도미니칸 운동(the Dominican)과 프란시스칸 운동(the Franciscan) 이었다. 아시시의 프란시스는 베네딕트의 윤리적 이상들을 과격한 형태로 강조했는데 특히 절대 청빈(absolute poverty)을 요구했다. 그는 수도사들을 수도원으로부터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설교자와 선교사로 활동하게 했다. 프란시스칸 수사들은 떠돌아 다니는 탁발승(wandering friar)으로 평민들에게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절대 청빈의 기쁨과 평화로운 겸손과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가르쳤다.

“수도원 훈련의 원리”

수도사의 지고선(summum bonum)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를 모방하므로 얻어지는 하나님 명상과 하나님 사랑의 ‘영적 완성’이었다. 수도사들은 막10:21의 말씀을 생활의 원리로 받아 들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좁은 길, 고난의 길, 자기 부정과 징벌의 길을 택하는 것을 의미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청결은 자신을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으로부터 청결케 하므로 얻어진다고 가르쳤다. 이와 같은 청결의 작업을 평생 계속하므로 영혼이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해지고 하늘에 대해서는 부해져야 한다고 했다. 세가지 형태의 부정과 거절이 강조되었으니 가난(poverty)과 순결(chastity)과 복종(obedience)이었다.

‘가난’은 세상의 가치 기준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표식이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풍부에 있지 않았다. 바질은 기록하기를 “어떤 사람이 무엇을 자기의 것이라고 부른다면 그는 하나님과 먼 사람이다”라고 했다. 수도원의 규칙은 개인적 소유권을 철저하게 금했다. 모든 것은 수도원에 의해 공통적으로 소유되었고 원장이 관리했다. 재산의 공유와 근면 생활은 결국 수도원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었는데 이와 같은 부유는 사치와 타락을 초래했다. 성 프란시스는 이와 같은 사치와 타락을 반박하며 “나는 가난이라고 불리는 여인과 결혼했다”(I married to Lady Poverty)고 했다.

‘순결’은 육체를 부정하고 거절하는 표식이었다. 가장 끈질긴 육체의 요구는 성적 요구였다. 성적 충동을 마귀적인 것으로 보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범한 한가지 실수(God’s one mistake in creation)로 간주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을 인종을 번식시키기 위한 필요한 수단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롬은 “결혼은 땅의 백성을 증가시키고 독신은 하늘의 백성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하나님을 봄’을 추구하는 완전한 생활은 가정 생활과 아이들의 울음 소리와 성적 방종에 의해서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동방의 어떤 수도사들은 성적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서 일어서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더 건전한 방법을 제시했으니 손으로 일하는 방법이었다. 수사들은 하루에 6시간씩 손으로 노동해야만 했다.

‘복종’은 자기 의지(self-will)를 부정하고 거절하는 표식이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장과 선임자들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다. 교만은 죄악의 뿌리요 겸손은 선의 뿌리인데 순종은 겸손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말하기를 “자기의 의지에 따라 사는 것 보다 복종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수도 생활은 등급의 원리(principle of gradation)를 초래했다. 즉 도덕적 완성의 성취가 단계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 갑자기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등급의 원리는 결국 인간의 솔선과 노력을 강조했다. 도덕적 완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성취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바로 이 원리를 후에 루터가 비판하여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