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Ⅰ. 개혁교회의 성령론

Ⅱ.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

1.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의 개요
2.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의 장점
3.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의 단점

1) 오순절 교회 성령론의 첫째 문제점은 “소위 성령의 세례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는 다른, 그 이후에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 보는 오해에 있다. 이 오해는 행 2:1~4, 8:14~17 및 19:2~7에 대한 오순절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석 때문이다. 누가는 중생과 구별되는 두번째 성령의 세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도는 이방인까지 포함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이 말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에 이른다는 말이다. 누가의 이 의도는 사도행전 첫머리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성령의 세례는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다(고전12:3).

중생과 성령 세례와의 일치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바울과 누가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성령의 세례는 중생의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성령의 세례를 중생과 분리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인 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성령을 받은 것이다”라고 쓴 빌리 그래함(B. Graham)의 말은 옳은 말이다.

2) 방언에 대한 과대평가는 오순절 교회 성령론의 또 하나의 오류이다. 방언이 성령의 은사임은 확실하다. 바울 역시 방언이 성령의 은사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바울에 의하면,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지고한 은사도, 중심적 은사도, 첫째가는 은사도 아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보다도 말씀의 은사를 반복해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고전 14:6).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9). 바울에 의하면, 이성적인 말씀의 은사가 불분명한 방언의 은사보다 귀중하다.

이와 같은 바울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가르치고 말씀을 강조한 개혁파 신학이 방언에 강조점을 둔 오순절주의 신학보다 더 성령의 사역에 깊이 밀접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이 방언을 높이 평가하고 성령 받은 높은 수준의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표증으로까지 이해한 것은 큰 잘못이다. 방언은 단지 하나의 성령의 은사일 뿐 없어서는 안될 중심적인 높은 은사는 아니다.

미하엘 벨커(M. Welker)에 의하면 이와 같은 오순절 교회의 오해는 “하나님의 영을 특이하고 신비한 어떤 일을 일으키는 영으로 보는 견해” 때문이다. 오순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영을 “신비하고 특이한 감정과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오순절주의자들의 오해 때문에 오순절 교회는 불가피하게 신비한 은사와 경험이 교회의 삶과 경건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신비주의적 교회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