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20세기에 개혁교회와 오순절 교회 사이에 성령론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방언이나, 신유, 기적과 같은 문제에 대한 이견이 존재했다. 또한 두 교회 사이에는 성령세례론에 대한 이견도 있었다. 오순절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지만 개혁교회는 성령의 사역을 무시한다는 주장이 있기도 했지만 반면에 오순절 교회는 너무 열광주의적이고 성령에 사역에 대한 대단히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우리는 개혁교회의 성령론과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을 분석해서 이 두 교회의 성령론의 모습과 구조를 명확히 하고 이 두 성령론의 장점과 문제점을 밝힐 것이다. 이 논구에서 두 교회의 성령론 모두 완전하지 못하고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밝힌 연후에 통전적인 성령론을 제시할 것이다. 이 통전적인 성령론은 두 교회가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바른 성령론이다.

Ⅰ. 개혁교회의 성령론
1. 개혁교회 성령론의 개요

개혁교회의 성령론의 특징을 간단히 요약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의 다섯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인식되고 있다.

1) 개혁교회의 성령론에 의하면 성령은 우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영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다.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이 연합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연합이다. 성령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중생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중생과 칭의는 성령의 역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중생과 칭의의 영이라고 일컬어진다.

2) 성령의 두번째 사역은 성화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전체 삶을 성령에 의한 삶으로 인식했고 이런 시각으로 성령론을 발전시켰다. 성화는 성령의 압도적인 역할에 의해 이루어진다. 칼빈에 의하면 부르심, 회개, 중생과 칭의만이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 성화가 성령의 사역이고 성령의 사역이 중심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에 의해 시작되고 새로워지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 성화된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영이시다.

3) 개혁교회의 성령론에 의하면 성령의 사역은 영혼의 구원이라는 영역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와 자연 속에도 성령의 사역이 존재한다. 성령은 세계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영이다. 이런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 없다면 세계는 이내 혼란에 빠질 것이고 인간성은 야수성으로 변할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에 의하면, 인간과 사물들을 유지시키고 재능을 부여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다. 예술가들의 재능이나 특별한 전문가들의 능력 역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심지어 성령은 한 국가에 기술과 예술적인 재능을 부여하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거두어 가시기도 하신다. 칼빈에 의하면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다. 칼빈의 관점에 의하면 예술과 수학과 과학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성령의 우주적 차원을 강조했는데 이는 성령론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것이다.

후대의 개혁신학자들은 영적인 구원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특별은총과 피조물과 인간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일반은총을 구별하는 교리를 발전시켰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은 칼빈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통적으로 모든 피조세계에 활동하는 성령의 사역을 언급하고 강조했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교회 신학은 피조물을 보호하고 유지시키는 성령론을 발전시켰다.

4) 성령의 넷째 사역은 말씀에 대한 증언이다. 개혁 교회의 성령론에 의하면 우리는 성령의 증언을 통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게 된다. 성경의 권위와 본질에 대한 복음적 이해를 위한 칼빈의 가장 훌륭한 공헌은 성령의 내적 증거의 교리를 발전시킨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은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지 않는 한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말씀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가운데 믿음을 창조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의 내적 증거가 없으면 기록된 말씀이나 선포된 말씀 그 어떤 것도 효력이 없다.

칼 바르트(K.Barth)에 의하면 하나님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인식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이다. 성령의 증언 없는 기록된 말씀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비록 성경이 자체적으로 권위가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내적인 사역이 없이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성경의 신비와 위엄은 성령의 증언을 통해서 드러난다.

5) 교회론과 성례론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는 개혁 교회 성령론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칼빈은 교회론과 성례론을 성령론적 시각으로 강조하고 가르쳤다. 칼빈이 초대 교회의 교부인 키프리안(Cyprian)의 유명한 말인 하나님이 아버지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어머니이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유한한 육체의 의복을 벗을 때까지 어머니인 교회가 그녀의 젖가슴으로 우리를 먹이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어머니인 교회의 보호와 돌보심을 받지 않고서는 생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의 보이는 수단이다. 성령은 어머니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천성으로 인도하기 위한 성령의 기관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는 성령의 성례전적 기관이다. 교회는 성령께서 인간을 하나님과 연합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눈에 보이는 인간적 도구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교회라는 사회적 실존을 통해 나타나신다. 교회의 실존이 없다면 오늘의 역사 속에 존재하시는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는 오늘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성령의 기관이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은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으로 성경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와 성례를 강조했다. 성례 역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의 보이는 표지이다. 성례는 성령의 보이지 않는 은총의 역사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개혁교회의 교회론과 성례론은 성령론적 시각에 의해서만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나타내기 위한 성령의 보이는 도구들인 것이다.

장신대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