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Ⅰ. 개혁교회의 성령론


3. 개혁교회 성령론의 단점

1) 칼빈의 신학에서 성령의 사역에 대한 풍요로운 많은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혁주의 전통에서 성령론은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 수많은 중요한 개혁교회의 신학자들의 책들 속에 성령론에 대해 쓴 장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책들에서 성령론은 구원론의 보조적인 기능을 할 뿐 독자적인 영역이 확보되지 못했다.

1963년 장로교회의 신학자 멋쥐(L.Mudge)는 개혁주의 전통의 신앙고백이나 신조들이 성령의 사역에 대한 성경적인 강조에 상응하는 고백서를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이 잘못의 결과는 성령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듣지도 못하고 성령의 활동을 보지도 못하는 상태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개혁교회의 교리 속에서의 성령론의 소멸은 성령의 사역을 바르게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초래했고 그 결과는 교회가 굳어지고 선교와 봉사사역의 약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2) 개혁 교회의 성령론의 거대한 실수는 기적이 멈추었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서의 기적의 의미는 방언, 신유, 예언과 같은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닌 은사들을 주로 지칭하는 말이다.

칼빈은 “신유의 은사는 기적적인 다른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주께서 한시적으로만 존재하기를 원하셨던 은사인데, 지금은 사라졌는데 그 까닭은 복음에 대한 새로운 설교가 놀랍게 빛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수세기 후의 미국의 장로교 신학자 워필드(B. B. Warfield) 역시 기적은 사도시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미국의 칼빈신학교의 교수였던 후크마(A. A. Hoekema)가 기적은 멈추었음을 재삼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기적적인 은사들은 사도들의 권위를 확증하기 위한 의도로 주어진 것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결여된 잘못된 주장이다.

3) 개혁교회의 성령론에서 성령은 개인의 구원을 위한 영으로 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구원이라는 말의 의미는 영적인 구원이었다. 성령은 영적인 중생과 성화의 영이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도 개인의 영혼의 새롭게 함과 관련되어 있는 사역이었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에서 성령의 사역과 우주적 차원 역시 창조세계의 보존과 주로 관계된 사역이었다.

오웬(J. Owen)에 의하면 성령의 직무는 “창조세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의 문제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나 경제적 곤핍으로부터의 자유 등의 문제들은 모두 해방하는 성령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차원의 성령의 활동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성령의 사역을 개인의 영혼과 교회의 영적 활동 속에서 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이 성령론의 문제점이다.

헤셀링크가 개혁교회 성령론은 폭이 넓은데 장점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이 넓은 장점이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폭넓은 성령론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폭넓은 성령론으로의 발전은 개혁 교회의 신학 속에서 20세기 후반에 몰트만(J. Moltmann)의 성령론이 등장하면서 가능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