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우선성과 사회적 책임,
둘 사이 균형 맞추기 위해 분투
총체적 선교, 스토트 노력 결과
인간 영적·육체적·사회적 존재?
육체적 문제 해결 속 구령 초점
예수님 사역도, 분명 구령 우선
균형 프레임 매몰돼 본질 희석

인간 신학자 아닌, 성경 따라야

존 스토트 빌리 그래함
▲(왼쪽부터) 로잔 운동 태동의 주역 존 스토트와 빌리 그래함 목사. ⓒ크투 DB

1. 로잔 운동의 핵심 브레인 존 스토트

복음주의 진영의 가장 대표적인 운동인 로잔운동은 빌리 그래함(Billy Graham)과 존 스토트(John Stott) 두 거장에 의해 태동됐다고 할 수 있다.

좀 단순화해서 표현하자면 빌리 그래함은 로잔 운동의 하드웨어를, 존 스토트는 로잔 운동의 소프트웨어를 각각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빌리 그래함의 지도력에 의해 전 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모임이 형성되고 추진됐다면, 존 스토트의 노력에 의해 로잔 운동이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로잔 운동이 나가는 방향은 스토트에 의해 정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토트의 가장 큰 공헌은 로잔 언약을 작성해 로잔 신학의 기초를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토트는 로잔 언약을 작성할 때, 양 방향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로잔 운동이 복음의 우선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책임도 복음전도와 똑같이 중요한 책임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자의 입장이 빌리 그래함과 상당수 복음주의 참여자들의 입장이었다면, 후자의 입장은 남미 해방신학과 에큐메니칼 진영 ‘하나님의 선교’ 개념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책임도 똑같이 중요한 선교적 책임이라는 사고를 가진 르네 파딜라((Rene Padilla),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 비나이 사무엘(Vinay Samuel) 등 소위 ‘철저한 제자도 그룹’의 입장이었다.

2. 존 스토트 신학의 변화와 영향

존 스토트는 본래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입장을 가졌지만, 1968년 WCC 웁살라 총회에 참석하고 철저한 제자도 그룹과 함께한 여행 등에서 비서구 세계의 심각한 가난을 목격하면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 됐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그동안 개인 구령에 초점을 맞추었던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사회적 책임 문제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스토트는 어느 한쪽의 생각만 택하기보다, 모두를 포함하는 균형 잡힌 사고와 신학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자신의 신학적 관점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빌리 그래함과 결별하고 로잔 운동에서도 손을 뗄 각오로 로잔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로잔 언약은 전도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교회의 사회참여를 함께 강조하는 다소 어정쩡한 선교 개념을 지니게 됐다. 여기에는 스토트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고, 이후에도 스토트의 이런 관점은 로잔 운동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제1차 로잔대회
▲1974년 제1차 로잔대회가 열리는 모습.

3. 존 스토트 신학의 공헌점

그렇다면 로잔 운동에 미친 존 스토트의 영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먼저 그의 공헌을 생각해 보자. 첫째, 스토트는 복음주의 운동이 분열되지 않고 잘 모아지도록 하는 일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스토트가 어느 한쪽 손을 들었다면, 다른 쪽은 로잔 운동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 스토트는 균형을 매우 중시하면서 복음주의 운동이 균형 잡힌 운동이 되도록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로잔이 추구하는 ‘총체적 선교’는 균형을 중시한 스토트의 노력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4. 존 스토트 신학의 한계점

하지만 스토트의 이런 공헌점과 강점은 동시에 한계점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신학 가운데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필자가 보기에 스토트는 균형과 화합에 많은 강조점을 두면서 기여한 바가 있지만, 반면 균형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균형이라는 프레임’에 빠진 것 같은 경향을 보인다. 그는 로잔 1차 대회 다음 해인 1975년 <균형 잡힌 기독교(Balanced Christianity)>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이웃을 육체 없는 영혼으로(이웃의 영혼만 사랑하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영혼 없는 육체로(이웃의 육체적 행복에만 관심을 갖도록) 창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나아가 사회로부터 분리된 영육으로(이웃 한 개인에게만 관심을 갖고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도록) 창조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이며 육체적이며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의 전적인 복지, 즉 그의 육체와 영혼과 사회적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78-79쪽).”

균형 잡힌 기독교
▲<존 스토트의 균형 잡힌 기독교>.

5. 존 스토트 전제의 오류

존 스토트의 위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이고,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셨는데, 전통적인 선교는 인간의 육체적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을 무시했다는 식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스토트는 인간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주장하면서, 전통적 인간 이해가 균형을 잃은 왜곡된 견해라는 관점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선교 역사는 스토트의 관점에 오류가 있음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에 와서 사역한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조선에 와서 다른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 전했다면, 스토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병원과 고아원 등을 세워서 조선인들의 육체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고, 학교 등을 세우고 교육을 하면서 조선의 정치와 사회 문화 등을 바꾸는 일에 기여했다.

다만 선교사들은 이 모든 도움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조선을 바꾸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선교 사명이라는 관점을 지녔기에, 구령 사역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존 스토트 신학의 심각한 한계점

더 심각한 것은 스토트의 주장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이 영적이고,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으로 창조됐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즉 영적 차원의 문제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성경의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선교를 수행할 때 교회는 어떤 문제 해결에 가장 큰 관심을 둬야 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교회는 영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더 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우리 선교 모델이신 예수님도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던가? 예수는 ‘떡의 문제’ 해결을 기대하면서 왕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고, 오히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6-27)”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고 말씀하셨다.

만약 스토트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시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래오래 사시면서 백성들에게 매일 떡을 먹여주고 백성들의 원대로 왕이 되시어 이스라엘의 식민 통치를 종식시켜주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백 번 양보하여 예수께서 실제로 왕이 되셨다 한들, 이스라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스토트의 문제는 균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균형 프레임에 매몰돼, 그만 성경 그리고 예수의 모범과 부합하지 않는 선교를 주장하면서 선교의 본질을 부차적인 것과 섞어 희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균형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균형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본질을 약화시키는 균형은 결국 기독교 자체를 약화시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로잔은 균형에 잡혀 본질을 약화시킨 스토트의 관점을 거의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로잔이 따라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한 인간 신학자가 아니라 성경이요 예수님이 아닌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안승오
▲안승오 교수.

※보다 자세한 보충 설명을 원하면 책 <로잔운동의 좌표와 전망>을 참조하고, 자세한 각주나 토론 등을 원하면 이메일(aso0691@hanmail.net)로 연락 바랍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 석사(Th.M) 학위와 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7 Key Principles of Dynamic Church Growth』, 『Rethinking the Theology of WCC』, 『선교사가 그린 선교사 바울의 생애』,『능력 있는 예배를 위한 7가지 질문』, 『건강한 교회 성장을 위한 핵심 원리 7가지』,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 『성장하는 이슬람 약화되는 기독교』,『현대 선교신학』, 『현대 선교의 핵심 주제 8가지』, 『이슬람의 어제와 오늘』, 『현대 선교의 프레임』, 『제4 선교신학』,『성경이 말씀하는 선교』, 『현대 선교신학(개정판)』, 『현대 선교의 목표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