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
▲야코포 팔마(Jacopo Palma)의 작품, 아벨을 살해하는 가인(1590년).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러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8-19)”.

인류 최초 살인자 ‘가인’의 이름은 대장장이 또는 얻음이란 뜻으로, 하와가 가인을 얻고 난 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아들이 자기에게서 났다고 기뻐했다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창 3:15).

형인 가인으로부터 죽임당했던 ‘아벨’ 이름의 뜻은 ‘공허’라는 뜻입니다. 형 가인과 동생 아벨 간 갈등 주원인은 당시 농경 문화와 유목 문화 또는 농경 사회와 유목 사회의 갈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생활방식이 달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형태도 달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신 이유가 본문 안에는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어떤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거나 거절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에 보면 “나는 은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기뻐하시지 않음을 알고도 부족했던 믿음을 돌이켜 살피기는커녕, 오히려 분노하며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극단적 방법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창조주와의 관계는 물론, 그가 거룩하게 여겼던 이웃과의 관계마저 무너뜨린 비운의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가인은 “그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되레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반문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대신 외면해 버리려 했습니다.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정면으로 인정하고 나서기는 심히 두려웠을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한 본성이 그 자손을 통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에게서 태어난 가인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그를 죽이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징계하시면서도 그의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긍휼을 베푸십니다.

아담과 하와, 뱀 모두 아름다운 은혜의 동산에서 추방당해 가시덤불과 엉겅퀴 숲에 살아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을 것을 직접 재배하는 수고를 하고, 밭에서 나오는 소산을 먹으며, 가시덤불과 엉겅퀴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삶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담과 하와, 뱀의 합작품 결과인 거짓과 탐욕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인류의 고통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좀 짓궂은 면이 있으신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설마 이들이 죄를 지으리라 예상하셨을까요? 간교한 뱀의 꾀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인류 최초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지은 인류는 오늘날까지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불안하고 고통스런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치 풍토와 문화는 그야말로 시궁창 같습니다. 갖은 거짓과 권모술수가 만연한 가운데, 인간의 마지막 양심까지 내팽개치는 사악한 일들이 밝은 대낮에 스스럼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백성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나라 지도자들, 특히 입법을 논하는 국회의원들의 죄상은 시궁창보다 못합니다. 그 모습을 본 국민들은 그들을 배척해야 할텐데, 오히려 그들과 함께 온갖 죄에 관한 재주를 다 부리고 있으니 실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법부 역시 정부가 어떤 성향이라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올바른 저울로 판결을 내리고 죄를 물어야 하는데, 권력과 돈의 욕심 때문에 올바른 판결을 하지 못하고 눈치나 보고 있습니다. 특히 죄 짓는 사람들에게 더 유리하게 판결하는 행위를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최고 지성인이고 엘리트라는 분들이 억울한 백성들의 신음소리는 외면한 채, 자신의 영욕을 위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늘 말하면서 그 정신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참으로 애가 마를 지경입니다.

야당 대표라는 분의 죄상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토건 비리임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되레 그 분을 옹호하며 오히려 ‘이게 나라냐’고 동네마다 현수막을 설치하여 여론을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몰고 가는 민낯을 보노라면, 향후 국회의원은 먼저 양심적 인격을 갖춘 자들을 뽑는 시험제도가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이대로 망할 것인가? 법치 문란의 주범이 법원’, ‘이대로 가면 나라 망한다’, ‘법관들의 편향된 이념과 주체사상이 한국을 파탄내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의 오늘날 한국에 대한 촌평입니다.

한국은 ‘제살 뜯어 먹는 미친 나라’라고 합니다. BBC 방송은 멀쩡하던 나라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부터 시작해 침몰하는 과정을 보며 역사에 남을 멘트를 날렸습니다. 한국은 ‘판사들이 나라 망치는 이상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판사 몇 명이면 멀쩡한 나라도 식은 죽 먹기로 말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체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판사가 개판인 나라’, ‘판사가 이중잣대로 제멋대로 재판하면 그것은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감히 대통령 탄핵도 비상식적으로 하는 자들이니 무슨 짓인들 못할까’, ‘한국은 판사가 법치문란의 주범인 나라’, ‘법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고 법원은 법치수호 기관이어야 하는데, 법치수호 임무를 수행하는 판사가 법치문란의 주범이라면 나라는 이미 걷잡을 수없이 망해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불모의 땅 한국은 탁월한 지도자들의 출현으로 한때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기적을 이뤄냈지만, 판사들이 앞장서서 스스로 노예의 길로 가는 이상한 나라이다. 국민이 본래 미개하고 천박해 결국 스스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잘 사는 게 복에 겨워 판사들이 앞장서서 차내고 스스로 고난의 길, 노예의 길로 가려하는 이상한 국가가 한국과 그 국민들이 아닌가?’라는 촌평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가시덤불과 엉겅퀴 속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내는 사법부 한 여성 부장판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야기는 서울 서초동 소년법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정법원에서 실제 있었던 판결이었는데, 이 판결을 본 사람들은 ‘이런 분이 대법원장이 되어야지’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구속된 소녀는 홀어머니가 방청석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법정 안, 중년의 여성 부장판사가 입장했습니다. 전과 14범 소녀는 무거운 보호처분을 예상한 듯 어깨를 잔뜩 움츠렸습니다. 판사는 그런 소녀를 향해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 힘차게 외쳐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는 나지막하게 “나는 이 세상에서…”라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따라하라며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다, 이 세상에는 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큰 목소리로 따라하던 소녀는 “이 세상에는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칠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 등 범죄를 저질러 소년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었고, 이번에는 동일 범죄로 무거운 형벌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판사는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사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며 말을 이어 갔습니다.

“이 소녀는 작년 초까지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였으며 장래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초 귀갓길에서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소녀는 당시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그 충격으로 홀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되었습니다.

소녀는 학교를 겉돌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판사는 법정에서 지켜보던 참관인들 앞에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가해자로 재판장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소녀에게 누가 가해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의 잘못에 책임이 있다면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과 우리 자신입니다. 이 소녀가 다시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우리가 다시 찾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진 판사는 눈물 범벅이 된 소녀를 법대 앞으로 불러 세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이 세상은 네가 주인공이야. 이 사실만 잊지 말거라.” 그리고는 두 손을 쭉 뻗어 소녀의 차가운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막혀 있어 이 정도 밖에 할수 없어 미안하구나.”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는 16세 소녀에게 이례적인 ‘불처분 결정’을 내리며 참여관 및 실무관, 그리고 방청인들까지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이 감동적인 판결은 실화입니다. 험한 세상에 이렇게 희망을 주는 법조인이 있어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소녀가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법보다 사랑이 우선입니다. 처벌보다 따듯한 사랑과 위로와 격려를 주는 판사님의 판결이 한 소녀의 차디찬 얼음장 마음을 녹여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아직 우리 법조계에도 이런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주인공이신 서울 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님!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십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지만, 그 속에서 희망과 소망의 꽃을 피우는 김귀옥 부장판사 같은 분은 세상을 향해 소금과 빛을 밝히는 등대와 같습니다. 다른 판사님들도 이런 사례를 주목하셔서, 이 땅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본받아 죄 지은 자가 판치는 세상을 만들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을 향해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한 사람이 되어라(마 5:48)”. 더 높은 사랑과 도덕, 윤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