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팅엔젤스 김한수 대표의 시니어 라이프
▲비지팅엔젤스 김한수 대표의 시니어 라이프
‘르네상스 맨’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다재다능한 사람, 팔방미인, 박식가로 번역되고 있는 이 단어는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지칭하며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같은 명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회화나 조각 외에도 건축, 천문, 해부, 수학, 음악, 발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꽃피우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인물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역사적으로 ‘르네상스 맨’으로 불리며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활약을 했던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독립 선언문 작성에 참여하며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미국 건축사에서 있어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또,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우며 18년동안이나 ‘연방준비제도 FRB 의장’을 역임했던 ‘앨런 그린스펀’은 젊은 시절 세계 최고의 음악대학인 쥴리어드 음대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하고 색소폰과 플룻을 연주하고 다니던 음악도였습니다.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왼쪽)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오른쪽)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왼쪽)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오른쪽)
우리나라에도 이들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해오신 분이 있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전문 경영인(28년)로 재임하며 대한민국 전문 경영인의 ‘대부’로 불리고 있으며, 퇴임 후에는 프로 서양화가로 이름을 날리며 수많은 개인전과 초청전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그의 이름을 딴 화풍이 등장할 정도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갖고 있는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 (현 CEO 컨설팅 그룹 회장)입니다.

1939년생인 강석진 회장이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설립한 세계 최대의 글로벌 인프라 기업인 GE와 인연을 맺게 된 건 1970년대 일입니다. 당시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에서 수출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강 회장은 GE에 음향기기 공급 계약을 따내면서 인연이 시작했습니다. 당시 GE에서는 적극적이고 열정 넘치는 젊은 한국 인재를 눈 여겨 보았고 GE가 인프라 사업으로 한국에 진출을 하면서 GE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978년 GE의 아시아 지역 전략기획 담당 이사로 입사한 강 회장은 이어 1980년 말 GE코리아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며 최초의 한국인 CEO가 되었습니다.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 있는 많은 외국기업들은 우리나라에 그들의 물품을 판매하는데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단순 판매로는 다국적기업인 GE가 한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한국 기업들과 합작투자, 기술협력, 전략적 제휴 등 장기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본사에 제안했습니다.” 강 회장의 제안은 미국 본사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기술과 자본이 유출될 것을 염려했던거죠. 하지만 강 회장은 뚝심있게 본사 경영진을 설득했고 마침내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후 GE코리아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실리콘, 의료기기, 조명 사업 분야에서 합작 회사로 한국에 진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기술 유출 염려로 해외 진출 사례가 없었던 항공기엔진과 발전 설비 부문은 기술 합작 방식으로 국내에 진출하였습니다. “GE코리아의 성공은 GE본사의 경영 방침에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한국에서의 방식이 글로벌 표준이 되어 GE의 세계화 경영 전략의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강석진 회장이 CEO로 취임한 1980년만 하더라도 GE코리아는 10명의 종업원과 매출액 260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20여년이 흐르고 강 회장이 퇴임하던 2002년 GE코리아는 1100명의 종업원과 매출액 4조원 규모에 17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외형 뿐만 아니라 강회장은 보수적이었던 전통적인 기업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관료적인 분위기에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갖고 열정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조직의 장벽을 허물고, 관료적인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없애고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열린 문화를 만들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습니다. 이 같은 노력이 조직의 성장에 일조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강석진 회장이 직접 지은 시 ’흰 구름 아래 산마을’와 서양화 ‘산촌의 오월’
▲강석진 회장이 직접 지은 시 ’흰 구름 아래 산마을’와 서양화 ‘산촌의 오월’
2002년 퇴임 이후 강석진 회장은 서양화가로 제2의 인생을 지내왔습니다. 단순 취미 활동이 아닌 한국미술협회에 ‘정식 화가’로 등록해 수많은 개인전을 개최하고 작품활동을 하는 프로 화가가된것입니다. 강석진 회장은 풍경화라는 장르로 자연이라는 소재를 독특한 시각으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주로 높은곳에 올라가 광활하게 펼쳐진 대자연을 화폭에 담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에서 내려다 보듯이 그림을 그리는데 저는 이 구도를 하나님이 세상을 내려다볼 때의 높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랑계에서 이런 그림을 ‘강석진 구도’ 라고 따로 부르며 강 회장만의 독특한 그림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강회장이 젊은 시절부터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며 넓은 시야를 갖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석진 회장은 서양화가에 머물지 않고 시인으로도 창작 활동을 하며 자신이 직접 창작한 시와 그림들을 엮어 시화집을 발간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경영과 예술은 전혀 다른 분야인데 어떻게 같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강석진 회장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예술과 경영이 기본적인 정신과 태도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야 모두 ‘열정(passion)’ ‘창조(Creativeness)’ 그리고 프로정신(professionalism)이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경영자는 훌륭한 종합 예술가라고 합니다. 경영을 하며 예술가로서의 영감을 받았으며, 예술을 하면서 창조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현대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각화 됨에 따라 이런 ‘르네상스 맨’들의 활약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들을 폭 넓게 이해할 수 있으며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는 눈이 필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시니어들도 ‘르네상스 맨’이 충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재 다능함의 핵심 키워드는 융통성 있고 열려있는 마음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분야만 집중하기 보다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을 폭 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건 뭐지’ ‘원리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같은 도전 정신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나에서 머물러 있고자 한다면 앞서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도 듣고 느낄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호기심을 갖고 한 발 내딛어 보십시오. 이전에 없던 다재 다능함이 생겨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