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9-30)”.

이 비유 중에 가라지는 볏과 식물로서 잎은 밀이나 보리처럼 좁고 길쭉하며, 줄기와 붙은 부분은 원통형에 가깝습니다. 밀밭에 흔히 볼 수 있는 독초를 가리키며, 경상도에서는 이를 ‘피’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논에서 친구들과 피를 뽑는다는 것이 실수로 벼를 뽑아, 안타깝게 생각하며 벼와 농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은 옛부터 농경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 땅을 소중히 지키며, 농민들의 피와 땀 덕분에 우리 먹거리를 먹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으나, 악인들에 대한 즉각적 심판이 유보된 채 하나님의 자녀들과 악인들이 섞여 살다가 세상 끝, 곧 예수님의 재림 때 최종 심판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될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다 내가 가라지를 뽑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뽑혀야 할 가라지가 아닐까, 하고 바꿔서 생각해 봅니다. 내 주제가 가라지인 걸, 가당치 않게 남들을 가라지니 아니니 하며 판단하고 뽑아버릴까, 그냥 둘까 했던 생각들이 저를 창피하게 합니다.

이웃은 가라지이고, 나 자신은 가라지를 뽑아줘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여태껏 참된 신앙인 양 살아온 모습들이 참으로 부끄럽기도 합니다.

주인께서 보시고 얼마나 나를 가소롭게 보시겠습니까? 아! 주인이 가라지를 뽑아내자고 하는 종들을 말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전부 드러나기 전에는 이웃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주인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부족한 가라지일지 모르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본받으며 “가만 두어라”는 말씀을 결단코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도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오히려 가라지일 수도 있습니다. 내 이웃의 모습을 보고 함부로 가라지라 평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자칫 밀밭에 밀은 온데간데 없고, 온통 가라지만 무성한 밭이 되어 다 뽑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바심을 버리고, 인내심을 가지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라지이고 무엇이 알곡인지, 이는 하나님께서 뽑으라 하실 때까지 우리의 판단과 평가, 선입견을 버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라는 밭에서는 늘 함께 가야 합니다.

가라지처럼 살아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가라지도 밀도 함께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고 또 기다려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추수 때까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가라지일지 모르지만, 알곡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과 공동체에서 함께한다면, 추수 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겠습니까?

농사를 통하여 하나님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농민들의 희생과 노고에 대한 큰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오늘 주시는 가라지 비유가 이렇게 우리 삶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한 하늘나라의 신비로 가득 차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금식하고 방언하며 공예배는 빠지지 않고 출석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면, ‘저 분은 참 성실하고 믿음이 좋은 분이시구나!’ 라고 평가합니다. 물론 사람이기에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은 좋은 현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 오히려 그런 분들이 교회 분란의 씨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겉보기에 가난하며 공예배에도 간혹 빠지고, 방언도 하지 못하며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가라지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귀한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성숙하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수시로 기도하며 돌아볼 때,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보람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주님 보시기에 부족한 모습들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자신 안에 묶여 있는 많은 습관적인 모습 때문에 후회하거나 아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다짐하곤 합니다.

오늘 가라지 비유는 부족한 우리 신앙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추수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삶을 살았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목회자로 시작하여 장로, 집사, 권사까지 되신 분들께서는 더더욱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성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 식구 감싸기에만 치중한다면, 그 교회는 가라지들이 우글거리는 독초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이라면 그 ‘사람이 있을 때 존경하고, 없을 때 칭찬하는’ 아름다운 알곡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