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기생충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을 들고 있는 봉준호 감독. ⓒ기생충 페이스북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느 영화제에 이어 미국 2020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과 각본상 등 4관왕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와 관련, 지난해 영화 개봉 당시 기독교적 입장에서 <기생충>에 대해 분석한 글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진부한 계급 투쟁? 기독교적으로 본다면

본지에 영화 분석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를 연재중인 박욱주 박사는 지난해 6월 영화 <기생충>에 대해 “다수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계급투쟁 프레임 안에서 해석한다”며 “한국적 입장에서는 사기를 획책하고 거짓말을 꾸미는데 능한 잔머리, 그리고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심한 질투심,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한 이전투구가 일상화되는 저열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박 박사는 “영화에서는 계급에 따른 선악 구분이 모호한 편이다. 악하기로 따지자면 기득권층인 박 사장 가족보다, 서민이자 하층민인 기택 가족이 훨씬 악한 면모를 보인다”며 “물론 빈부격차를 고착화시키는 우리 사회가 서민들을 그토록 저열한 방식으로 살도록 몰아간다는 정치경제적 통찰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선악 구분의 모호함 때문에 계급 투쟁적 메시지보다 오히려 한국민 특유의 고질적 죄성이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생충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대한민국 서민들의 비틀린 심성을 가감없이 다룬 수작이다.
그는 “영화 <기생충>에 묘사된 한국인들은 강렬한 질투심을 바탕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준칙도 법도도 없는 사기적 기질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라며 “가지지 못한 자들은 남이 노력해 획득한 것을 어떻게든 속여 갈취하기에 급급하고, 가진 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자신들처럼 되는 꼴을 보기가 싫어 어떻게든 구분선을 그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박욱주 박사는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다소 자유롭다. 그들은 하향 평준화 대신 무한한 자기계발을 통한 경쟁에서의 승리를 열망한다”며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경쟁자들이 무력하게 하향 평준화되어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를 짓밟고 그 위에 서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구 사람들이 주로 ‘남 위에 서려는’ 정복욕을 끊임없이 긍정하며 투쟁하는 반면, 동아시아인들은 남을 끌어내려 ‘평균화하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투쟁한다”며 “두 가지 모두 성경적으로 보면 죄된 육체의 정욕이건만, 전자는 진정 높은 곳을 바라보고 경주하는 투쟁을 부추기는 반면, 후자는 함께 낮은 수준에 머무르도록 억누르는 투쟁을 부추긴다”고 했다.

그는 “영화 <기생충>은 두 빈민층 가족의 혈투와 덩달아 봉변을 당하는 박 사장 가족의 태도를 통해, 왜곡된 집단주의를 기반으로 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한국인들의 참담한 정신상태를 가감없이 폭로하고 있다”며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과 마음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을 진부한 계급투쟁 서사로 바라본다면, 이런 반성 기회를 획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칸 영화제 기생충
한국인 특유 ‘죄적 심성’의 예리한 보고서

박욱주 박사는 이러한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집단적 평등주의’가 공산주의 사상과 결합됐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문화적 관점으로 보면, 유독 집단주의·전체주의를 강조하는 유교 문화 덕분에, 공산주의 통치 체제가 동아시아 지역에 상당히 오랜 기간 안착해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 박사는 “계급 투쟁을 조장하는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의 질투심과 깊게 연관돼 있다. 애초 마르크스가 겪었던 19세기 중후반 유럽의 현실은 경제적 정의가 한없이 결여된 시대였다”며 “공산주의 사상은 빼앗긴 노동자들의 권리, 즉 생산수단을 공평하게 소유할 권리의 회복이라는 정의로운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를 이행하는 원동력으로 격정적 분노와 질투심을, 그 수단으로는 폭력 혁명을 권장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기독교 정신과 정반대되는 면모”라며 “기독교의 복음은 사회적-경제적 불의의 상황이 닥칠 때, 내세에 대한 소망을 바탕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도우심이 임하기를 기도하도록 가르친다”고 비교했다.

또 “자신들보다 사회적으로 혜택받는 이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투심을 갖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자신보다 못한 서민들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해 그들의 작고 정당한 권익들조차 빼앗으려 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생충 같다”며 “영화는 기태 가족의 사기와 범죄 행각을 통해, 한국 하층민들 사이 만연된 기생충스러운 행태를 비판적으로 폭로했다”고 했다.

이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질투심과 집단적 평등주의를 집중 조명하는 가운데, 한국인들의 선험적 죄성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에게도 반성할 거리를 제시한다”고 소개했다.

기생충
▲영화 <기생충>은 계급투쟁이라는 주제보다는 한국인의 병적인 정신적 현실을 다루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넘을 수 없는 선? 경멸과 혐오, 분열과 차별

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지혜 목사는 지난해 ‘모멸의 자격, 존엄의 자격’이라는 글에서 <기생충>에 대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며 “뛰어난 미장센은 물론 블랙코미디와 풍자, 스릴러 등 각 장르를 오가며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화두인 ‘양극화와 빈부 격차’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영화적으로 잘 다뤘다”고 호평했다.

김지혜 목사는 “자본주의 사회 계급 층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봉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에서 열차라는 수평적 메타포를 통해 계급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표현하고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기득권 계급의 특권을 무너뜨리는 투쟁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며 “반면 <기생충>은 계단이나 폭우 등 다양한 수직적 상징들을 네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두 가족의 상황에서 대조적으로 사용하면서, 계급의 차이와 갈등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박 사장(이선균)의 운전수였던 기택(송강호)은 박 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을 수 없다. 고용주(雇用主)와 고용인(雇傭人) 관계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기택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선을 넘고 만다. 바로 박 사장이 근세(박명훈)의 몸을 대하면서 경멸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택은 근세에게 자신을 이입하면서 이성의 끈을 놓고, 딸까지 잊어버린 채 박 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분노로 변한 수치의 칼날을 휘두른다”며 “사회학자 김찬호는 <모멸감>에서, 모멸이란 의도적 혹은 무심코 다른 사람을 낮춰 보거나 하찮게 봄으로써 그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이며, 반대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격하될 때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고 했다.

칸 영화제 기생충
김지혜 목사는 “모든 것이 돈으로 수렴되는 사회에서는 사람의 가치 역시 돈으로 환산되곤 한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고 가치를 매긴다. 위계화시키고 존재마저 서열화한다”며 “누군가에게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만들고 누군가는 관계를 비인간화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마땅히 그 존엄을 존중 받아야 한다”고 의미를 짚었다.

그러면서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 사회적으로 멸시당하던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죄인들의 편이 되셨는데, 그리스도인은 어떤 냄새가 나는 사람의 편에 설 것인가”라며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이자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낸다는 것(고후 2:14-15)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계급에 기생하는 계급주의 영화’ 비판도

반면 영화를 매개로 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등을 저술한 본지 칼럼니스트 이영진 교수(호서대)는 영화 <기생충>에 대해 “계급에 기생하는 계급주의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영진 교수는 “영화 <기생충>의 지배 윤리는 ‘선을 넘지 말라’는 금제에 대한 극혐이다. 즉 ‘선을 넘어라’인 것”이라며 “반일(反日)을 외치는 일제 포르노그라피 키즈, 계급에 기생하는 반(反) 계급주의자, 육사 콤플렉스, 제조업만 골라 패는 매국적 기업관, 이런 ‘기생충’들이 근절되어야 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했다.

이 교수는 “부자들은 높은 곳에 살기에 태양과 가깝고, 가난한 자들은 낮은 곳에 살기에 습윤과 거기에 기생하는 벌레들에 더 노출돼 있다. 소독차 가스는 마치 그들이 벌레와 동급이 된 듯 보이게 하려는 매개일 것”이라며 “그러나 실제로 반지하에 살고 있는 관객들에겐 어떨까. 영화가 이해해 주니 감사할까? 정작 그들에게는 어떠한 공감도 희망도 제시 못하는 영화”라고 비판했다.

기생충
▲기우와 함께 사기극에 적극 가담하는 제2의 주모자, 기정(박소담 분)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는 물질이 모든 착함의 근원이다. 물질이 있어야 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체험적 진리이지만, 유물론적 진리”라며 “그래서 반지하방에 사는 사람들을 소재로 착해질 수 있는 돈을 벌었지만, 저 모든 반지하방의 사람들을 꺼내주진 않는다. 유물론 자체가 상부구조를 무너뜨려 하부구조를 착취하는 기생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생충>의 물질관”이라고 전했다.

또 “가난한 주인공들은 이 부자 가정에 큰 감정이 없고, 오히려 감사해한다. 하지만 결국 큰일을 저지르고 만다”며 “그것은 사람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계급을 가져오는 사회구조를 미워하라는 암시인 것 같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