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진부한 계급 투쟁? 기독교적으로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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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기생충> (上)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영화 평론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한국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을 분석합니다. <기생충>에는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기택)를 비롯, 장혜진(충숙), 최우식(기우), 박소담(기정), 이선균(박사장), 조여정(연교), 이정은(문광), 정지소(다혜), 정현준(다송) 등이 출연했습니다. 배우 박서준도 카메오로 출연했지요. 스포일러와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2주간 이어지는 이 평론에는 스포일러가 거의 없습니다. -편집자 주

▲영화 &lt;기생충&gt;의 한 장면. 대한민국 서민들의 비틀린 심성을 가감없이 다룬 수작이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대한민국 서민들의 비틀린 심성을 가감없이 다룬 수작이다.

◈질투심과 사기: 결국은 서로 속이고 착취하는 한국 사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벌어지는 범죄는 무엇일까? 건수로 따져볼 때 가장 앞서는 것은 단연 ‘절도’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는 절도가 아닌 ‘사기’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온라인 거래가 워낙 일반화돼 얼굴 보는 일 없이 상거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악용하는 사기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사기범죄에 대한 고소 절차도 간편해져 사기범죄 기록율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사기범죄 발생 건이나 비율 자체가 아니라, 사기범죄에 대한 후속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사기를 당한 이상 피해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사기와 횡령은 경제사범으로 분류되는데, 한국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단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자잘한 수준의 사기는 거의 범죄도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다.

성서에 보면 지중해의 작은 섬 크레타(Crete)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제자인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크레타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딛 1:12-13).”

만일 사도 바울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면, 동일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 신앙을 가졌느냐 마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사람 됨됨이 자체가 사기와 거짓에 능한 것이 한국민에게 특화된 죄성인 듯 싶다.

여기에 더해 한국인에게는 한 가지 더 못된 습성이 있다. 바로 질투가 심하다는 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한국 사람들에 한정해볼 때 만고불변의 진리로 통한다.

사기를 획책하고 거짓말을 꾸미는데 능한 잔머리, 그리고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심한 질투심,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한 이전투구가 일상화되는 현실이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런 현실을 매일 몸으로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한국 영화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기생충>은 바로 이런 한국의 저열한 현실을 다룬다.

다수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계급투쟁의 프레임 안에서 해석하려 한다. 봉준호 감독의 지난 작품들을 되돌아볼 때, 특히 그의 수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설국열차(2013)>의 메시지를 상기해볼 때, 이런 해석 방향은 일견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기택 가족이 벌이는 사기극의 출발점이 되는 큰아들 기우(최우식 분).

▲기택 가족이 벌이는 사기극의 출발점이 되는 큰아들 기우(최우식 분).

그러나 <설국열차>에서와 달리, 영화 <기생충>에서는 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선악 구분이 모호하다 못해 역전되어 있다. 서민들은 핍박받는 선량한 사람들이고, 기득권층은 착취하는 악인이라는 일차원적인 진부한 공식은 거부된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서민의 대표,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전체가 사기에 능하고 기회주의적이며,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성품을 가진 이들이다.

우선 아들인 기우(최우식 분)는 입시 준비생이면서 명문대생인 것처럼 속여, 박 사장(이선균 분)의 큰딸 다혜(정지소 분)의 고액과외 자리를 얻어낸다.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 기정(박소담 분)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출신 미술교사로 위장시켜 박 사장 집에 소개해 취업시킨다.

기정은 다시 자신에게 치근대는 박 사장 집안의 운전기사를 모함해 해고되게 만들어, 그 자리에 자신의 아버지 기택을 소개해 취업시킨다.

박 사장의 집에 붙어 생계를 해결하게 된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박 사장 집의 가정부 문광을 모함해(문광이 결핵에 걸린 것처럼 보이게 꾸며) 해고되게 만들고, 기택의 아내이자 기우·기정 남매의 어머니인 충숙을 그 자리에 소개해 취업시킨다.

▲기우와 함께 사기극에 적극 가담하는 제2의 주모자, 기정(박소담 분)

▲기우와 함께 사기극에 적극 가담하는 제2의 주모자, 기정(박소담 분)

이쯤 되면 사기로 대동단결한, 사기에 특화된 가족이라 할 법하다. 서로가 가족임을 감추고서 박 사장 집의 일자리를 점거한 네 사람은 그들이 새로 차지하게 된 자리를 위협하는 모든 이들, 특히 같은 서민 처지인 문광(이정은 분)과 그의 남편 근세(박명훈 분)와의 투쟁에 돌입한다.

먼저 박 사장 집에 자리잡은 기생충들(운전기사, 문광, 근세)을 새로 들어온 기생충들(기택 가족)이 몰아내려 하고, 이 계략을 알아챈 문광과 근세가 거기에 저항하는 식의 혈투가 벌어진다.

확고한 계급적 우월감을 가진 박 사장은 이런 이전투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집에 빌붙어 살게 된 모든 서민들에게 기득권층과 서민 간의 계급을 구분하는 ‘선을 넘지 말라’고 강요한다.

이런 태도는 기생충들 가운데 하나인 기택의 분노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 박 사장과 기택은 결국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큰 변화를 맞는다. 이것이 <기생충>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영화가 등장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계급에 따른 선악 구분이 모호한 편이다. 악하기로 따지자면 기득권층인 박 사장 가족보다, 서민이자 하층민인 기택 가족이 훨씬 악한 면모를 보인다.

박 사장 가족은 박 사장의 헛된 우월감을 제외하면, 별다른 허물을 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선량한’ 가족으로서, 기택 가족이 벌인 사기극과 범죄의 일방적 희생양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통해 전하려는 바는, 빈부격차를 고착화시키는 우리네 사회가 서민들을 그토록 저열한 방식으로 살도록 몰아가고 있다는 정치경제적 통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기득권층-서민층의 관계 가운데 엿보이는 선악 구분의 모호함 때문에, 그런 계급 투쟁의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한국민 특유의 고질적 죄성이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더 눈길을 끈다.

영화 <기생충>에 묘사된 한국인은 강렬한 질투심을 바탕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준칙도 법도도 없는 사기적 기질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남이 노력해 획득한 것을 어떻게든 속여 갈취하기에 급급하며, 가진 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자신들처럼 되는 꼴을 보기가 싫어 어떻게든 구분선을 그으려 한다.

▲영화 &lt;기생충&gt;의 기득권층인 박 사장 부부(이선균, 조여정 분).

▲영화 <기생충>의 기득권층인 박 사장 부부(이선균, 조여정 분).

사실 이런 세태는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들 역시 갖고 있는 동아시아 특유의 정신적-문화적 성향으로, 그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농경사회 시대에 통용되던 유교적 집단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모두 함께 수준 낮게 사는 것은 참아도 누구 하나 흥왕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하향 평준화된 집단주의는 동아시아의 인간성 계발을 저해해 온 주된 요소 가운데 하나라 볼 수 있다.

기독교 문화권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다소 자유롭다. 그들은 하향 평준화 대신 무한한 자기계발을 통한 경쟁에서의 승리를 열망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경쟁자들이 무력하게 하향 평준화되어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를 짓밟고 그 위에 서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나 삶의 투쟁은 끊이지 않지만, 서구와 동아시아에서 이 투쟁을 유발하는 동기는 분명 상이한 내용을 갖는다.

서구 사람들이 주로 남 위에 서려는 정복욕을 끊임없이 긍정하며 투쟁하는 반면, 동아시아인들은 남을 끌어내려서 ‘평균화하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투쟁한다.

두 가지 모두 성경적으로 보면 죄된 육체의 정욕이건만, 전자는 진정 높은 곳을 바라보고 경주하는 투쟁을 부추기는 반면, 후자는 함께 낮은 수준에 머무르도록 억누르는 투쟁을 부추긴다.

영화 <기생충>은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의 혈투, 그리고 이를 쳐다보다 봉변을 당하는 박 사장 가족의 태도를 통해, 왜곡된 집단주의를 기반으로 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사는 한국인들의 참담한 정신상태를 가감없이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우리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을 계급투쟁에 대한 진부한 서사로 바라본다면, 이런 반성 기회를 획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 기독교적 관점에서 영화에 묘사된 한국인의 죄악된 기질을 날카롭게 관찰한다면, <기생충>은 단지 빈부 격차에 대한 이야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의 비틀린 삶의 동기에 대한 비판적 자화상으로 읽혀질 수 있다.

▲영화 &lt;기생충&gt;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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