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들 농락한 영화 ‘아가씨’가 ‘외설’인 4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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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8] ‘아가씨’는 ‘핑거스미스’를 어떻게 훼손했나

이영진 교수의 '기호와 해석' 여덞 번째 편은 하정우, 조진웅, 김민희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다. 소위 '19금' 영화 중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던 '아가씨'는, 그 파격적 내용뿐 아니라 주연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의 스캔들로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편집자 주

여성의 복종과 정절을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모성애의 기반으로 규정한 한스 요아힘 마츠(Hans-Joachim Mazz)는, 그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왜곡된 인간 창조론에 기인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외전(外典)을 소개하였다.

"유대인의 역사인 '구약'에 의하면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담의 첫째 아내 릴리스를 창조했다. 하지만 아담과 릴리스는 평화롭게 살 수 없었다. 릴리스는 아담에게 복종하지 않았고, 둘 다 흙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동등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성행위를 할 때 릴리스가 아담의 밑에 눕는 것을 거절하는 방법으로, 그녀의 동등권은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사랑의 유희에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위에 올라가기'를 원했다. 이렇듯 릴리스가 복종을 거부하자, 아담은 불안해하며 화를 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결국 릴리스가 낙원에서 도망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리하여 릴리스는 '관능적인 여자'의 화신이 되었고, 나중에 창녀들의 수호신이자 자위하는 악녀, 금지된 쾌락으로 유혹하는 여자의 화신이 되었다. 융(C. G. Jung)의 심리학에서 그녀는 부정적인 아니마로 해석되고 있다(릴리스 콤플렉스, 18쪽)."


저 외전에 대해서는 잠시 후 해설하겠지만, 우선 <아가씨>의 원작인 <핑거스미스>의 주인공 이름 '모드 릴리'(maud lilly) 가운데 '릴리'가 릴리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모드'는 빅토리아 여왕(1837-1901)의 손녀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역사 소설인 셈이다.

'아가씨'의 원작 <핑거스미스>에서 중요한 기호는 대략 네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장갑, 둘째는 책, 셋째는 아기, 넷째는 석스비 부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영화 <아가씨>에서는 이들 중대한 기호 중 '책'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게다가 그 '책'에 대한 기호조차도 제대로 된 해석을 입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아가씨와 석스비 부인

이른바 빅토리아 시대, 19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 어느 날 영국 템스 강에서 한 사공이 소포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죽은 아기 사체가 들어 있었다. 경찰은 용케 범인을 찾아냈다. 범인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위탁아동 사업을 해 오던 아멜리아 다이어(Amella Dyer)라는 중년 여성이었다.

아동을 위탁받는다고 신문 광고까지 내 오던 그녀는 간호사 출신이라는 이력 덕택에 '고객'에게 신뢰를 얻었다. 맡긴 아기들을 부유한 집으로 입양보낸다고 속여 위탁비를 받아 챙기고는 아이들은 목졸라 죽여가면서 사업을 이어가다 덜미가 붙잡힌 것이다. 당시 경찰은 그녀가 약 200-400명의 유아를 살해했을 것으로 보았고, 그녀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와 같은 아동 위탁사업을 당시에는 Baby Farming(아기농장)이라고 불렀다. 이 교수형된 실존 인물을 등장시킨 것만 같은 소설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 이면의 어두운 단면을 시사한다. 빅토리아 시대는 규범에 어긋난 자는 모두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장 속에 감춰야만 했던 시대다. 그 중에는 동성애자나 창녀, 심지어는 미혼모도 포함되었으며, 그 벽장이란 주로 정신병원이었다. 가령 청결해 보이지 않는 여성의 경우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불시에 생식기 검사를 받아야 했던(Contagious Diseases Prevention Acts) 사회 정서 속에서, 이 시대는 특히나 미혼모에게 혹독했다.

<핑거스미스>에서 모든 이야기의 발단이 바로 이 아기농장과 정신병원에서 얽힌 출생의 비밀로 시작한다. 모드 릴리의 어머니는 미혼모였는데, 아버지와 오빠가 정신병원에 가두기 직전 석스비 부인(Mrs. Sucksby)의 시설에 와서 아기를 맡기며 지극히 평범한 여성(자기와 같은 귀족 여성이 아니라)으로 길러 달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 아기는 평범하다 못해 아예 글을 모르는 소매치기로 양육된다. 핑거스미스는 '소매치기'라는 뜻의 19세기 속어다.

그러나 영화 <아가씨>에서는 이 중차대한 발단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다른 어떤 대체 플롯도 없다(일본 옷을 입고 일본말을 쓴다고 배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가씨>는 배경이 없는 영화다. 외설 영화의 첫 번째 특징이다.

(2) 아가씨와 서책

석스비 부인의 집은 교수형이 집행되는 형장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다. 그 때문에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면 짭짤한 부수입을 올린다. 시민들에게 돈을 받고 사형 장면이 잘 보이는 2층을 대여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집이 위치한 거리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게 자주 목격된다. 'Lant Street', 어딜까.

Lant Street는 실제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이 거리에는 실제로 Marshalsea 법정과 감옥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 감옥은 바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작품에 나오곤 했던 곳(그의 아버지가 이 감옥에 있었다)이다. 석스비 부인 역시 디킨스 소설에 나오는 이름이며, 아기농장 역시 그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사업의 주된 업종이다. '핑거스미스'에서 다른 주인공 수 트린더(Sue Trinder)가 이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은 아예 '올리버 트위스트'의 노골적 각색이다. <핑거스미스>가 이와 같이 과도하게 찰스 디킨스의 흔적을 노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 이전의 여성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였다. 이런 문제는 19세기 전까지는 대부분 거론조차 되지 못하던 것이,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 정치·경제·교육에 이르는 전반적인 불평등 문제로 나타났다. 수백만 명의 노동자와 함께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는 사회 계층이었으며, 무엇보다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을 가질 수가 없었다(<핑거스미스>에서 모드 릴리가 남편이 있기 전까지는 상속받은 재산을 수령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같이 사회 고발을 주제로 한 통속 소설이 진흥한 시기가 바로 빅토리아 시대였지만, 여성의 이 같은 법적 지위는 이 시대 소설에서조차 거의 다뤄지지 못했다. 남녀 평등을 논할 때도 대개 여성의 역할이 남성의 교양 있는 대화 상대 내지 가정을 지키는 천사로 묘사되는 정도가 전부였다.

<핑거스미스>에서 모드 릴리가 남성 후견인(삼촌 크리스토퍼)에게서 교양 있게 책을 낭독하는 훈련을 받지만, 실상 그 남성의 서책에 담긴 내용은 모두 외설인 이유가 그 때문일까? 세태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찰스 디킨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찰스 디킨스는 살아생전 책을 낭독하고 다니는 것을 대단히 즐겼다고 한다. 당대의 낭독회는 작가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였다. 당시 찰스 디킨스의 낭독회는 큰 인기를 몰고 다녔는데, 디킨스 자신이 무척 실감나는 낭독을 했다고 한다. 그런 인기를 타고 그는 큰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가정을 중요시하는 그의 소설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여배우와 바람이 나서 1858년 이혼했다.

그는 처제들도 사랑했던 것 같다. 일찍 죽은 처제 메리를 잊지 못해 그녀의 머리카락을 소지하고 다니거나, 또 다른 처제 조지아는 평생 결혼을 않고 디킨스의 아이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둘 간에는 혼외 자식도 하나 두어, 얼마 전에는 그 혼외 자식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디킨스의 유품을 경매로 내놓은 기사도 있었다.

<핑거스미스>는 왜 찰스 디킨스의 그림자를 밟았을까? 그 시대의 고발을 담았다고 하는 그의 '통속 소설'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싶어서였을까? '아저씨, 왜 그러셨는데요!' 하는 식으로….

영화 <아가씨>에 등장하는 아저씨는 이보다 더 심각한데, 감독은 아저씨를 차라리 일본 포르노 제작자로 그려내고 말았다. 그러는 바람에 당초 원작이 투사시켰던 중대한 문학 비평 자체를 지워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아가씨>가 외설인 두 번째 이유다.

(3) 아가씨와 아기

영화 <아가씨>가 원작의 문학적 본질을 지우고 외설로 바꾸는 방식은 릴리스 콤플렉스를 빼내기 위해 앞서 마츠 박사가 유대/기독교 경전에 행했던 외설의 방식과 동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츠가 인용한 외전의 맥락은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텍스트 전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래는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다.

"어린 아들이 병에 걸리자 느부갓네살 왕은 말하였다. '내 아들을 고쳐라. 그렇지 않으면 널 죽일 것이다.' 벤 시라는 즉시 자리에 앉아 거룩한 이름으로 부적을 썼다. 그리고는 거기다 치료의 천사들을 기명해 나갔다. 그들의 이름과 형체와 형상, 그리고 그들의 날개와 손과 발에 따라 의술을 부여 받은 천사들이었다. 느부갓네살은 부적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누구냐?'

의술을 담당하는 천사들 세노이(Snvi), 센세노이(Snsvi), 셈앙겔로프(Smnglof)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처하는 아담을 만드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독처하게 되는 것이 좋지 않다(창 2:18).' 그러시고는 아담을 만드신 것처럼, 흙으로 아담을 위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릴리스라 불렀습니다.

아담과 릴리스는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아래에 눕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너의 밑에 눕지 않고 오로지 위에만 있을 것이다. 내가 (너)보다 우월한 존재로 지어져서 네가 밑에 위치하는 것이 훨씬 맞기 때문이야.' 릴리스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똑같이 땅에서 만들어졌으니 서로 평등해.' 그러나 그들은 서로 듣지 않았습니다.

릴리스는 잠시후 감히 입 밖으로 부를 수 없는 그분의 이름을 읊조렸고, 그것은 공기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담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께 기도했습니다. '우주의 통치자시여! 당신이 내게 준 그 여자가 떠났습니다.' 그러자 즉시 거룩한 그분께서는 그녀를 다시 데려오도록 이들 세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거룩하신 그분이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녀가 만약 돌아오는 것에 동의한다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매일 100명의 자녀가 죽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니라.' 천사들이 하나님을 떠나 릴리스를 추격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인들이 빠져 죽었던 권능의 물들 중심부, 바다의 한복판에서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녀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천사들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를 바다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

'날 내버려 두세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잉태의 고통을 위해서만 지어졌을 뿐입니다. 만약 태어난 아기가 남자아이면 출생일부터 8일 동안만 그 아이에게 힘이 미칠 것이고, 여자아이라면 12일 동안 힘이 미칠 것입니다.'

'천사들이 릴리스의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녀가 돌아가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내가 당신들 또는 당신들의 이름, 또는 어떤 부적 속에서라도 당신들 형상을 보았을 때는 그 유아에게 내 아무런 힘이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매일 죽게 될 운명의 자손 100명을 잉태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에 따라 매일 100명의 귀신이 죽어나갔고, 그 같은 연유로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들의 부적 위에 그 천사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릴리스가 그들의 이름들을 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맹세를 기억하고는 그 아이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Alpha Beta Ben Sira 78.

히브리어 음가로는 ‘릴리트’라고 발음되는 이 릴리스 전승은, 고대 바벨론 탈무드부터 사해문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존재한다. 여성 악신이나 두려움의 존재로 알려진 이것이 정경에 나오는 것은, 이사야서 34장 14절에서 올빼미로 번역된 정도일 것이다. 그러던 것이 후대 몇몇 작품에서 아담의 첫 여자로 창작되어 나타났으나, 가장 오랜 형태의 본문은 위와 같은 대화체로 알려져 있다(Alpha Beta Ben Sira 78./ AD 800). 중요한 것은 여기서 과연 릴리스라는 메타포가 표지하는 속성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악신? 부적? 미신? 결국 어둠과 부정의 형태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여기서 릴리스가 표지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그것은 단순히 분방하고 음란한 이교적 여신의 형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고대 사회에 감내해야 했던 여성의 육아와 아기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담는 데 종사한다 할 것이다. 매일 100명의 신생아가 죽은 채 잉태될 것이라는 의미는 고대 유아들의 유산 및 사산 빈도를 반영한다. 복종과 정절이 건강한 모성애에 방해가 된다는 릴리스 콤플렉스가 외설적 편집의 산물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위의 벤 시라 본문의 릴리스는 '모드 릴리'의 생모이자 '수 트린더'의 계모인 석스비 부인의 기호로 상응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당대에 아기농장이라는 불편한 직종에 종사한 여성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후에 자기가 낳고 기른 그 기구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교수형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참된 릴리스 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아가씨>에서는 이 중차대한 기호, 즉 '아기와 육아'가 통편집되어 사라지고 없다. 이는 <아가씨>가 외설인 세 번째 이유다.

석스비 부인이 아기를 인질로 잡고 있는 모드 릴리와 이렇게 말한다.
모드: "나를 가게 하지 않으면, 당신의 아기를 죽일 거야"
석스비: "어차피 멀리 왔어"
모드: "정말이야… 그렇게 할 거야. 그렇게 할 거야."
석스비: "얘야. 여러 해 동안 원치 않는 아기들을 돌봐 왔단다. 지금은 일곱 명을 돌보고 있지. 원하면 여섯 명으로 만들어도 돼. 아니면 다섯이나.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을거야"

(4) 아가씨와 장갑

이제 이 영화의 궁극적 기호, 장갑이다. 장갑은 다의적 기호를 갖는다. 빅토리아 시대라는 역사 시점을 상정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손(가락)은 본래 도구를 상징하지만, 무엇보다 접촉을 기표한다. 무엇 무엇을 만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무엇 무엇으로부터 피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제도적 기호로 작용할 때는 말 그대로 '아가씨'를 상징할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 내지 그 손녀와 같은 아가씨. 최고 권력을 지닌 여성이면서도 동성인 여성을 헤아리지 못하는 제도적 기호, 장갑.

이 장갑이 심리적 기호로 작용할 때는 대개 나를 향한 억압으로 전환한다. 심리적 기제 속에서 강박에 빠진 사람의 대부분이 손 씻는 일에서 그 반복된 의례를 구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에 장갑을 끼거나, 손 씻는 의식을 치르거나.

이와 같은 의례가 금제의 형식을 동반할 때 그것은 이제 종교적 기호로 진입한다. 장갑이 종교적 기호가 되었을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아가씨>에서 뜻밖에도 기호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곳이 딱 하나 있는데, 서재로의 접근 금지가 '핑거스미스'에서는 '장갑 낀 손가락' 표지였다면 <아가씨>에서는 '뱀'이라는 점이다.

서재로 접근하려고 할 때 '핑거스미스'에서는 "핑거! 핑거!" 하지만, <아가씨>에서는 "뱀! 뱀!" 하며 경고를 날린다. 그러고는 그 경계선에 놀랍게도 '무지의 경계선'이라는 이름까지 덧붙였다.

창세기에서 릴리스의 후임자, 곧 하와가 그 무지의 경계선 뱀을 만났을 때 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하나님께서는 먹지 말라고는 했어도, 만지지 말라고 하신 적은 없었다(창 2:16-17). 그런데 어찌하여 이 여성, '제2의 릴리스'는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고 하였을까? 적어도 이 여성에게 있어 지식, 곧 '아는 것'이란 '만지는 것'인 까닭이다. 지식이란 먹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만지는 것인가?

<핑거스미스>에서도 지식은 '만지는 것'이다. 특히나 그 '지식'을 '성', '동성애'와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것은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지식의 궁극적 종말들은 언제나 만질 수 있는 어떤 것, 곧 신체에 관한 '부끄러움'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담과 하와가 획득한 지식의 결과는 '부끄러움'이었다(창 3:7; cf. 2:25). 지식의 결과는 부끄러움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란 '앎'의 실체인 것이다.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한 즉, 무지의 경계를 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를테면 동성애자들이 획득한 부끄러움의 상태 또한 그들이 겪은 지식에 대한 결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롬 1:26-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6-27)."

<아가씨>가 이 무지의 경계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고서 뱀이라는 기호를 채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아가씨>는 <핑거스미스>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지식과 무지를 역리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의 경계선을 넘어가 알게 됐다면서, '아가씨'들에겐 부끄러움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굳이 종교적 가치나 도덕적 요구를 이르는 기준은 아니라고 해 두자. 단지 미장센을 완성하는 미학의 의미로 보면 전공자들에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부끄러움의 부재 곧 미학의 부재, 이것은 영화 <아가씨>가 외설인 네 번째 이유다.
 
별점(5개 만점): ★☆☆☆☆
한 줄 평: 아가씨들을 농락한 영화, 아가씨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필자는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하여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는 신학자다. 최근 저서로는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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