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말리사>와 동성애자들의 서울광장 퀴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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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5] ‘19금 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


어제 강의가 끝나자마자 한 학생에게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 강의 주제는 '사회개혁으로서 종교개혁'이었는데, 이 학생은 교내에서 어떤 기독교 단체가 동성애와 관련하여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 캠페인'을 벌이는 사진을 내밀며 "이래도 되는 거예요?" 하고 물어온 것이다.

'차별금지'를 공익으로 이해하는 이 학생의 눈에 비친 기독교는 '사회개혁' 집단이라기보다는 공익에 반하는 종교집단으로 보인 것 같다. 나는 하마터면 "(차별금지법 반대는) 당연한 것 아닌가? 왜?" 하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걸 멈추었다. 학생의 얼굴을 보니 '이 사회에 역행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잘못됐다!'며 종교개혁적으로 뭔가 한 마디 던지면 들을 기세로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아노말리사'는 주제가 동성애는 아니지만, '동성애가 무엇인지' 인간에게 달린 그 인식의 회전문을 잘 보여 준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정체성 문제인가, '성(性)' 정체성 문제인가?

주인공 마이클 스톤은 성공한 고객 관리 컨설턴트이지만, 심각한 자기 정체성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중년 남성의 위기 문제인듯 전개되지만,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깊은 인간 인식에 관한 문제를 표지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귀에는 모든 목소리가 똑같은 '목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똑같은 목소리'라 함은 모두 개성이 없는 목소리라는 뜻이 아니다. 성(性)의 구별이 없이 들리는 목소리를 말한다. 목소리마다 개성은 있다. 그런데 성의 구별이 없이 들리는 것이다. 마이클에게는 모든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로 들린다. 남자는 남자의 악센트, 여자는 여자의 악센트가 있지만, 모든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로만 들린다.


2. 동성애자의 문제인가, 모든 '이(異)'성애자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이 남성은 동성애자일까?' 싶은데, 동성애에는 난색을 표하는 분명한 '남자'다. 가령 비행기에서 옛 애인에게서 받은 편지를 꺼내 읽을 때, 그 편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다. 그리고 호텔 방에서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도 '남성'이었다. 그래서 동성애자일까 싶지만, 비행기가 착륙할 때 옆에 있던 남자가 슬쩍 자신의 손을 더듬자 명확하게 남자를 거절하는 '남성'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앓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스토리텔링의 대가인 영화의 감독 찰리 카우프만은 이미 영화를 만들 때 "만나는 모든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증상인 '프레골리 망상(Fregoli delusion)'을 영화의 메타포로 써서, 그 주인공의 시점에 맞추었다"고 밝혔다.

 

정신병리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나면서 망상(delusion)은 오늘날 다양한 양상으로 분류돼 임상이 가해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망상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는데(창 1:27), 모든 사람을 남자로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모든 사람을 여자로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남성을 아버지로 간주해도 문제일 것이고, 만나는 모든 여성을 어머니로 여겨도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가끔 이 인식의 틀이 회전한다.

주인공 마이클 스톤에게는 독특하게도 듣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남성'의 것이다.

3. 동성애자의 문제인가, 현대 사회의 문제인가

마이클 스톤이 앓고 있는 이 문제는 그의 특수한 직업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인 모두가 앓고 있는 증후군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이 사람이 히트시킨 책의 이름이 재미있다. 「고객을 어떻게 대할까?」라고 의역되어 나오지만, 책 제목은 'How May I Help You Help Them?'이다('당신을 돕겠습니다'라는 말과 '당신이(또는 내가) 그들을 어떻게 도울까'라는 말이 합쳐서 들린다).

이 책을 읽은 사람마다 고객 관리 90%의 생산성 향상을 봤다고 한다. "미소를 잊지 마세요. 미소는 공짜잖아요?"라며 열띤 강연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저자이지만, 정작 강연을 하는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의 얼굴은 탈부착이 가능한 '가면'이다.

 

딱히 '고객만족센터'를 직장으로 두고 있지 않더라도, 이 불편한 '친절'의 역설은 모든 현대인의 문제 아니겠는가.

영화에서 주인공은 뜻밖에 사랑하는 여성 '리사'를 만난다. 그녀 역시 마이클이 쓴 책의 광팬으로, 한 제과회사의 세일즈 텔레마케터(전화상담원)이지만 특별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그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여성 목소리'인 것이다.

옛 애인의 목소리도 남성 목소리요,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여성의 목소리도 남성 목소리요, 심지어 아내의 목소리도 남성의 목소리인데, 오로지 이 전화 상담원의 목소리만 '여성 목소리'다.

 

4. 신시내티 시(City of Cincinnati)와 프레골리 호텔(Hotel of Fregoli), 그리고 서울광장(Seoul Plaza)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시 신시내티와 호텔 프레골리는 꽤 의미 있는 상징과 기호이다. 실제로 그 도시의 동물원과 스파게티가 그토록 자랑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 마이클이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택시에 오르자마자 쉬지 않고 말을 해대는 택시 기사는 꼭 동물원에 가볼 것과 파스타를 꼭 먹어볼 것을 권한다. 하루만 묵고 갈 것이라고 했는데도, 이 도시에 왔으면 멸종될 동물들이 있는 그 동물원엘 꼭 가봐야 한다며 계속 강요한다. 전화상담원처럼.

고객에게 속사포처럼 쏴대는 그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주인공의 태도는 고객 관리 컨설턴트로서는 역설적 행동이다. 심지어 유일한 '여성 목소리'를 내는 여자 리사의 목소리가 점점 '남성 목소리'로 변하여 들리게 되는 것은, 밥 먹는 자리에서 "이 도시에서는 동물원엘 꼭 가봐야 해요. 멸종될 동물들도 있고…"라며 그 택시 기사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할 때이다.

 

신시내티(Cincinnati)를 Sin-Sin-City라고 발음하여 마치 '죄의 도시'처럼 들리게 조크를 하는 택시 기사의 말을 듣게 되는 건 영화 초반이므로, 그 도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호텔 프레골리와 함께 의미화할 때 보다 명확한 기호를 띤다.

'프레골리'는 앞서 감독이 밝힌 대로 프레골리 망상(Fregoli delusion)의 한 메타포(은유)로 쓰였다고 했다. 그런데 프레골리란 무슨 뜻이며 어디서 온 말일까?

이 용어가 처음 학명으로 나타난 것은 1927년경으로 보인다(P. Courbon and G. Fail, Syndrome d'illusion de Frégoli et schizophrénie). 그들은 이 Fregoli라는 말을 들여올 때 1867년생이었던 레오폴도 프레골리(Leopoldo Fregoli)라는 실제 배우의 이름에서 따 왔다. 그는 살아 생전 변화무쌍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이 영화의 시점인 주인공 시점에서 모든 사람의 얼굴이 가면인 이유이기도 하다(고대의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persona]가 정신분석학에 정식 사용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한 가면을 착용하고 살아야 정상일까,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야 정상일까?

만약 동성애자가 아닌 마이클이 여성의 목소리를 여성 목소리로 듣지 못하는 프레골리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이라면, 남성을 여성으로 동일시하고 여성을 남성으로 동일시 하는 사람들-그들은 주로 동성애자일까-역시 이 프레골리가 표지하는 인식의 틀에 교란이 온 탓일 수 있다.

앞서 내 강의를 들은 학생이 문제 제기를 했던 기독교인의 '차별금지법 반대'는 사실상 동성애 반대, 더 구체적으로는 올해 여름에도 서울시청 광장에서 벌어질지 모를 퀴어축제를 견지하는 점에서, 이 신시내티 내 가면의 공간 '프레골리' 호텔은 서울에서 벌어질 그 기이한 축제의 기호와 평행한다.

왜냐하면 다양성이라는 기치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퀴어(Queer)라는 말은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뜻인바, 이 영화 제목 '아노말리사'(Anomalisa)와 그 뜻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 유일한 여성 목소리의 주인공 '리사'와 합성된 단어 '아노말'(a + normal)은 a가 부정접두로서 기이하다(not normal)는 뜻이다.

무엇이, 어떻게 기이할까?

Fregoli(프레골리)의 명확한 어원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사람의 성씨(이탈리아)에도 붙는 이 단어는 Fregola라고 썼을 때 '프레골라 파스타'를 연상하면 기호 연관이 쉬워진다. 곡물(의 모양) 파스타라는 의미에서 쓰였기에, '곡물'이기도 한 이 프레골라(Fregola)는 문지르거나 비빈다(rub)는 뜻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곡물은 비벼서 취하는 열매라는 고대의 상징 이해에서 형성된 기호였을 것이다(이 영화에서 택시 기사는 동물원 외에 파스타/스파게티를 무척 강조했다).

문지르고 비비는 것이 기이한 것인가? 그렇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 기호다.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 영화에는 매우 수위 높은 정사 장면 한 곳이 포함돼 있다. 이 장면을 삭제해 버렸더라면 배급사 입장에서 관객 수도 더 늘릴 수 있었을 법한데,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리뷰에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지만, 마찬가지로 빠뜨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입으로 여성의 성기를 다루는 그 수위 높은 행위는 내가 듣고 싶은 목소리를 위해 입을 대체해 버린 프레골리 망상의 전형을 기호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동일화에 빠진 인식이 신체기관의 용도를 바꿔버린 셈이다. 프레골리에 빠진 이 사람에게 입은 상대적으로 교양 없이 '말하고' 교양 없이 '먹는 데' 사용되는 위에 달린 혐오스러운 기관이다(유일한 여성 목소리의 주인공 리사의 입은 교양이 없다).

이 영화에서 요약하고 있는 이 같은 증후군들, 곧 목소리에 싫증을 느껴 각기 '다른' 목소리들임에도 동일시하여 '같은' 목소리로 혼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행위를 파스타를 비벼먹는 행위와 혼동하는 사람들, 이들이 공히 그 동일화 망상(Fregoli delusion)에 시달리는 것이라면, 성(의 기관)을 자유롭게 바꾸어 쓰는 행위 곧 동성애 역시 일종의 망상이며, 동일화 증후군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영화를 참조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신시내티' 서울의 광장에서 벌어진 기이한 축제에서 (여)성의 심볼을 먹는 파이로 만들어 팔았던 사례는 이상한 일도 아니다.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치유의 대상인 이유다.

 

이 영화에는 마지막 반전이 있다. '아노말리사'는 그 텔레마케터가 아니라 바로 이 인형 게이샤였다는 사실이 그 반전의 힌트.

 


기독교인들이 읽는 성경 로마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 말인즉,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주어 파멸케 하리라"는 말과 일반으로 봐도 무방하다.

저 글귀에는 '마음'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공간으로 지목된 앞의 '마음'은 επίγνωσις, 즉 '지식'이 쌓이는 공간이다. 다음에 나오는 상실함이 들어찬 공간으로 지목된 두 번째 '마음'은 νους, 즉 '지성'이 들어차는 공간이다. 아마 저 글귀의 저자는 이 νους에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 주거한다고 본 것 같다.

그 공간이 텅 빈 상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관계'로서의 징벌이기도 하다.

모든 동일화 망상(Fregoli delusion)은 그 공간이 비어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롬 1:26-27)".

/이영진 교수

호서대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필자는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하여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는 신학자다. 최근 저서로는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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