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 아시아복음연맹 신학위원장).

머리말

지난주 ‘WCC 부산총회에 대한 신학적 평가 (I)’가 나갔을 때 필자에 대해 좀 아는 독자들은 필자가 여태까지 비판하던 입장에서 변질되지나 않았는지 염려했던 것 같다. ‘신학적 평가 (I)’은 긍정적 측면을 진솔하게 피력한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나의 전체 글(‘신학적 평가 II’ 포함)을 읽고 필자의 진정한 의도를 알기 바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WCC 기구에 속한 적은 없다. 그러나 WCC에 소속한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지고 열린 대화를 하고 있으며, 그들을 존경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에 소속되어 있으며 신학위원장과 아시아복음연맹(AEA: WEA의 아시아기구)의 신학위원장으로서 지극히 작은 소임(所任)을 다하고 있다. 국민일보 대담(2013. 9. 4.)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항상 복음주의와 정통주의 개혁신학의 유산(遺産)을 중요시하고자 하는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있는 사실 그 자체로”(Zur Sache selbst, to the thing itself) 인정하는 현상학자(現象學者)의 태도를 지니고자 한다. 이번 부산대회는 “WCC가 공식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용공, 동성애를 결의한 적 없다”(WCC 월트 알트만 의장)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그런데 일부 극단한 보수진영은 자기들의 선입견으로 상대방을 무조건 정죄하고 매도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WCC의 신학에 대하여 비판적이긴 하나, 거기서 일하는 분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며, 그들은 보다 진보적 견해를 지닌 우리의 형제들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개진하는 비판적 견해는 적(敵)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가 더 잘 되기를 원하여 조언한다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평가도 온전하지 못하며, 제한적이며 미흡하여 한계가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II. WCC 부산총회의 미흡했던 점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부산대회의 선교선언문을 보면 대부분이 성경적이고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다. 총주제인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는 보기에도 은혜스럽다. 그러나 자세히 음미하여 읽어보면 핵심용어인 ‘생명’에 대한 진정한 기독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이해가, 부산총회를 위한 선교선언문에는 빠져 있다. 그래서 이 문서에서 말하는 ‘생명’은 뉴에이지 운동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어떤 범신론적 종교나 이념의 신봉자들에 의해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우주적인 힘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소지(素地)가 있다.
 
1.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을 털어내지 못함

WCC 부산총회 선교선언문 “함께 생명을 항하여-변화하는 지형 속 선교와 전도”(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는 2012년 9월 중앙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문서로 1982년 이후 30년 만에 새롭게 채택됐다. WCC는 이 선언문을 내놓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신학적 논의를 진행했으며, 지난 2011년 WEA와 로마 가톨릭과 함께 ‘그리스도의 확언’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의 선교선언을 내놓은 바 있다.

이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은 복음의 핵심을 선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좋은 소식이고, 사랑과 겸손의 성령 안에서 선포되어야 한다고 확언한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와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서 성육신, 십자가, 부활의 중심성을 확언한다. 그러므로 전도는 제도를 가리키기보다 항상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전도는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을 확언하고 전도를 교단보다는 교회의 본질에 귀속시키는 것은 “예수와 하나님 나라”을 선포하는 선교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1982년의 문서가 기독론 중심이었다면 이번에(2013) 공식으로 채택된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틀 안에서 성령의 선교를 강조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교를 위해 교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며 권능을 주심을 확언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으로서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때에 역동적이 되고 변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요 10:10)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사 65:17)라고 하나님의 통치의 비전을 확증하시는 성령을 통해 온 피조물을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신다. 우리는 겸손과 소망 가운데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선교에 헌신한다”(아이굿뉴스, “사회참여로 시작된 WCC ‘성령’을 화두로 변화 모색.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으로 ‘일치’ 향한 큰 걸음”, 2013년 11월 06일 (수) 15:07:02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교선언문에는 여전히 여태까지 복음주의자들이 비판해오던 종교다원주의의 문장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82항) 개종이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93항) 영적 다원주의: 하나님의 영은 생명을 긍정하는 모든 문화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령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시기에 우리는 다른 신앙전통들 안의 성령의 활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영성들 안에 고유한 가치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교는 “다른 사람”을 선교에 동반자로 만들며, 선교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94항) 대화란 종교적 차원에서 볼 때 우리보다 앞서서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해 오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와 더불어 시작할 때만 가능하다.

위 문장들은 영적 다원주의를 함축하고 있다. 개종이 전도의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종교대화를 하여 상대방 종교에서 그들이 이미 삶의 정황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강조하자는 태도는 제도적·법적인 강제전도를 금지하는 명제로는 적합하다. 그러나 이 문장이 더 나아가 양심에 입각한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나오는 사랑의 간증과 설득에서 이루어지는 전도와 복음화를 비적합한 것으로 보게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강제 전도는 복음에 합당하지 않으나 양심에 입각한 자유 전도는 복음이 우리들에게 명하는 바이다. 이 자유 전도를 금하는 면이 있지나 않는가 보인다.

“성령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시기에 우리는 다른 신앙전통들 안의 성령의 활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영성들 안에 고유한 가치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문장은 성령의 구속 사역과 섭리사역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다른 신앙에 고유한 가치와 지혜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다. 다른 종교에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경건이 있다는 것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것을 구원으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은 “성령이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다른 신앙전통들(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안에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는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선교의 동반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대화란 “다른 종교 안에 이미 계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와 더불어 시작한다”는 명제도 하나님의 일반섭리적 사역과 특별구속적 사역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종교대화에서 다른 종교 안에 이미 계신 기독교의 하나님을 만난다면, 종교적 개종이란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앞서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WCC는 모든 종교에 계시는 섭리의 하나님과 기독교 안에서만 구원을 행하시는 구속의 하나님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하고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적 사역과 구속적 사역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의 철폐는 기독교적 제한주의를 넘어서서 보편주의로 나아가며, 이러한 보편주의는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영과 성령을 타종교에서 역사하는 영과 동일시 함으로써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김영한, “WCC 핵심 논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II)”, 크리스천투데이, 2013. 11.11). 이런 점에 있어서 표현은 온건해졌으나 선교나 전도나 타종교에 대한 관점은 바아르 선언문(1990년)에서 보다 크게 달라졌다고 보이지 않는다.

2. 동성애를 차단하지 못함: 동성애는 반성경적이다

WCC는 스웨덴 웁살라 총회 때부터 성 문제를 다뤘다. 동성애, 일부다처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성이 무엇인가와 이혼, 조혼, 성노예, 문란한 성문제에 대한 논의였다. 이 때 논의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성이 타락,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은총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WCC는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지지한 적이 없다”고 한다(국민일보 쿠키뉴스, [WCC 부산총회 평가 김영한, 박성원 특별좌담], “총회 개최 한국교회의 축복”-“보수교회 함께 못해 아쉬움” 2013.11.14. 21:49).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WCC를 두고 동성애와 다원주의를 옹호한다고 비판했지만, 이는 숲은 보지 못한 채 한 그루의 나무만을 보고 WCC를 왜곡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 부산총회에서도 성(性)소수자를 지지하거나 이들의 인권을 강조하는 발언이 나왔지만 WCC 안의 보수주의 회원교회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소외돼선 안 되며 동성애가 현실로 다가온 서구교회의 경우 남의 이야기처럼 바라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동성애 지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11월 1일 전체회의에서 러시아정교회 힐라리온 대주교는 “오늘날 동성애, 동거, 동성커플의 아이 입양 등이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가치를 파괴하고, 부모의 개념에 혼동을 주고 있다”며 “미국과 남미, 뉴질랜드의 여러 지역에서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며, 교회가 전통의 가치에 반대한다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동성결혼 반대 발언에 총대들 대부분이 반대 의견을 밝혔다.

아프리카 감리회 소속 한 여성 목회자는 “대주교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많은 이들이 성 정체성 때문에 고통받으며 부당한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며 “교회는 약자에게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그들을 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캐나다 연합감리회 소속 한 목회자도 “WCC 공식 문서에는 성 소수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번에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미국 감리교회 등 일부 회원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性)소수자인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과는 구분을 두면서 논의가 전개됐다.

정작 회의장에 동성애 부스가 설치되었다. 일부 회원들의 동성애 지지 캠페인이 길어지고, 이에 대한 반대 시위가 있는 등 의견차이로 인하여 이번에 동성애에 대한 입장 표명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WCC가 동성애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히기를 바랐던 다수의 목회자들에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리고 WCC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3. 정치적인 평화 개념에 치우침

이번 선교선언문은 얼핏 보면 ‘성령, 생명, 창조, 하나님 나라’ 같은 핵심 용어들 때문에 비교적 영적인 언어로 쓰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주제이자 선언문에서 강조하는 ‘평화’에 대한 이해에는 문제가 있다.

평화를 주제로 한 회의에서 이화여대 교수 장윤재는 다음처럼 한반도의 남북대치상황을 실례로 군비경쟁 부재로써의 평화를 말하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평화는 ‘출애굽’ 여정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1953년 휴전했을 뿐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한국은 늘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군비경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또 전쟁이 벌어질 경우 하루 150만 명의 희생자가 생길 것이고, 첫 주에 60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60년 동안의 가짜 평화였으면 충분하다. 한국은 새로운 출애굽을 원한다”(아이굿 뉴스, 세계 속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한 ‘평화 회의’, 평화의 이론과 실재,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2013년 11월 07일 (목) 19:45:10 김동근 기자 dgkim@igoodnews.net).

이러한 발제에서 장윤재는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과 공동체에 주시는 내적 평화보다는, 전쟁의 부재라는 세상의 평화에 관하여 주로 말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성명서에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금융제재를 해제하도록 각국 정부가 노력할 것과 한반도에서 모든 외세들이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등 주로 그 동안 북한 정권과 종북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평화를 논하는 회의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두 명의 청년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가 원하는 평화의 모습에 대해 증언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비쳤다. 아르메니안 사도교회 청년공동체 지도자 아가타 아브라하미안 씨는 “이란 정부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에 대한 평화를 바란다”며 “이런 제재들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다. 이란의 한 평범한 시민으로 나는 매일 현실을 마주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경제적인 제재 뿐 아니라 의학적인 제재 등이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하고 있다”며 “모든 제재들이 철폐되고 이란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우리에겐 이런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 할 책임이 있다”며 눈물을 지었다. 아브라하미안도 이란 정부의 경제 재제 조처에 대한 철폐가 평화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역시 성경이 말하는 평화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으로 WCC 장애인 프로그램 EDAN의 중앙아메리카 코디네이터로 섬기고 있는 파비안 코랄스 씨는 “차이를 뒤로하고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일해야 한다”며 “평화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포기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폭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향하는 우리의 여정은 또 다른 사회운동이 아니다”라며 “이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운동이요, 예수가 우리에게 말씀하신 운동이며, 예수님의 요청”이라고 강조했다(아이굿 뉴스, 세계 속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한 ‘평화 회의’, 평화의 이론과 실재,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2013년 11월 07일 (목) 19:45:10 김동근 기자 dgkim@igoodnews.net). 코랄스는 청각 장애인으로서 평화가 그리스도를 향한 운동이며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코랄스가 발표자로서는 유일하게 성경적 평화개념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북한인권한국교회연합 사무총장 서경석은 이러한 WCC가 제시하는 평화가 매우 편향된 평화 개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에 WCC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동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나 통일이 아니라 인권이다. 지난 68년간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속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젊은 수령이 등극했으니 앞으로 50년 이상을 다시 최악의 인권유린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 인권을 말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 인권이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 사이비 평화일 뿐이다. 북한인권을 말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만을 말하는 것은,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대가로 남한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북의 김정은으로부터 보장받으려는 극도의 이기적인 행동이다. 기독교인은 이런 이기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 한국은 북한인권을 말하는 바람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이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북한인권을 말해야 한다”(서경석, “단언컨대, WCC는 이제 끝났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입력 : 2013.11.10. 15:37, 북한인권에 대한 침묵 규탄… “한반도 문제서 손 떼라”).

그는 WCC의 평화란 인권을 말하는 순간 깨어지는 평화로, 이러한 평화는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박해와 유린의 참상을 간과하는 거짓 평화요 사이비 평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4. 편파적인 정의 개념

부산총회가 주로 의도하는 “정의”는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종교개혁적 정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재정권에 의해서 박탈당한 시민권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평화”는 무기를 내려놓는 것을 의미했고, 군사적인 위협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다. WCC는 우리들의 관심이 재난으로 황폐된 지역들과 시민권과 성의 동등성을 유린당한 여성등과 같은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부산총회는 그와 같은 무자비한 제도와 행동들에 대한 분노를 나타낼 것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동을 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분명히 구약의 선지자들인 이사야와 아모스와 미가가 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가 예언자적인 사역을 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신약교회의 주된 사명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사역이 사회 정치적인 선언이나 행동을 하는 데 있지는 않다. 그것은 오히려 성경의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데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고,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서 특히 핍박을 당하며 순교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간구하는 데 있다. 이번 부산총회에도 참가한 독일선교학자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는 부산총회의 관계자들의 편파적인 정의에 관하여 다음같이 언급하고 있다.

“많은 참관자들과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부산총회와 총회를 준비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100마일 떨어져 있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대량으로 그리고 가장 무자비한 방식으로 순교의 죽음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공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총회의 준비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조종을 받는 북한 당국의 교회를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부산의 WCC 총회가 북한의 고통 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을 것입니다. 총회는 주님께서 저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참된 통일을 가져다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고 평화로운 통치 아래서 한 나라를 이루도록 위해서 기도를 했어야 합니다”(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WCC 부산총회에 아쉬움 나타내, 기사입력: 2013/11/03 [00:32]  최종편집: ⓒ newspower).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선언서를 발표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인권 상황을 외면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 공개처형과 정치범수용소에서 이뤄지는 고문, 학살 등 북한 독재체제 하에서 자행되는 참혹한 인권 유린 실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면서 북한을 제재하는 것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내용들은 이 같은 ‘선택적 분노’ 아래 보류됐고, 이는 북한의 그리스도인 핍박에 대한 명백한 침묵이다. 이러한 WCC가 주로 강조하는 정의는 편파적인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교선언문 45항도 만물을 위한 하나님의 뜻인 생명의 충만함을 방해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투쟁할 것을 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트베이트 WCC 총무가 “동성애에 대하여 지지도 하지 않으나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중립적인 태도를 표명한 것은, 인류 사회에 대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뜻을 분명히 표명해야 하는 기독교 기관으로서 세속적인 풍조에 대하여 따라가는 태도를 보인, 영합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5. 영원한 생명(zoe)과 생물적 생명(bios) 구분이 애매

이번 선교선언문은 얼핏 보면 ‘성령, 생명, 창조, 하나님 나라’ 같은 핵심 용어들 때문에 비교적 영적인 언어로 쓰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주제이자 선언문에서 강조하는 ‘생명’에 대한 이해에도 문제가 있다.

제10차 WCC 부산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주님 -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였다. 부산총회가 토의와 성명의 초점을 생명 자체가 되시고 유일하게 살아계시는 신이신 하나님께 둔 것은 바른 일이다. 새로운 선교선언문은 “선교의 대상을 인간 중심에서 전 지구의 모든 피조물로 확대하고 있다.” “선교의 목적이 생명의 온전함과 풍성함이 되어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인류 공동체 전체와 일치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과 식물의 생명 등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런데 WCC 선언서에 나타나는 생명은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세상이 말하는 생명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선언문이 강조하고 있는 ‘생명’은 세상에서 말하는 자연적 생명(bios)과 훨씬 더 높은 형태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이미 소유하고 계시고 성도들이 부활 이후 온전히 공유할 초자연적 생명(zoe)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이 핵심용어인 ‘생명’에 대한 이런 진정한 기독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이해가 부산 총회를 위한 선교선언문에는 빠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생명’은 뉴에이지 운동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어떤 범신론적 종교나 이념의 신봉자들에 의해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우주적인 힘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

“비오스”(bios)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생명을 의미하고, “조에”(zoe)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고 그를 믿는 자녀들만이 공유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회개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물과 성령으로 중생할 때 지금 신비하게 시작되는 것이다. 참되고 영원한 생명은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로 우리들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귀중한 생명의 선물을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과 분리된 죄악 가운데서 죽어가는 이방 세계에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어진 성스러운 특권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부산 총회와 준비 문서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진리를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총회에서 “생명”은 주로 세속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WCC 부산총회에 아쉬움 나타내, 기사입력: 2013/11/03 [00:32]  최종편집: ⓒ newspower).

6. 한반도 선언서에 북한의 인권조항 반영 안 됨

WCC는 이번 총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문’을 통해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북한의 인권, 특히 생존권 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수용소, 공개처형 등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트베이트 총무는 “북한의 인권 상황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에 우리가 발표한 성명의 핵심적 목적은 분단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표시하고, 서로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각론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일일히 거론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크리스천투데이, WCC 총무 “반대자도 기독교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입력 : 2013.11.11. 12:06, 총회 평가 기자회견 후 출국…)고 설명했다.

트베이트 총무는 “북한의 인권 문제는 향후 반드시 한 번은 짚고 거론돼야 할 의제임은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그것에 접근하는 게 더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분명한 것은 평화 없이 분단 문제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평화는 남북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충만케 하는 첫번째 과제”라고 강조했다(크리스천투데이, WCC 총무 “반대자도 기독교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입력 : 2013.11.11. 12:06, 총회 평가 기자회견 후 출국…). 그는 “北 인권은 효과적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보면 북한 인권 개선과 북한 민주화와 평화통일이라는 목적은 진보나 보수가 같은데, 이를 실천하는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WCC의 한반도 평화·통일 성명서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크나큰 아쉬움이며, 앞으로도 WCC가 보수주의로부터 앞으로도 용공집단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성명서는 다음의 부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관해 말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와 종교박해 중단에 대한 선언은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 둘째, 북한의 통일전략 중 하나인 ‘평화협정’을 지지하면서 북한의 각종 도발(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편파적인 사고다. 셋째,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은 북한의 경제 실패 원인을 북한의 억압정권보다는 국제사회의 경제봉쇄에 돌리는 것이다. 넷째, 핵무기 제거와 함께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적 디딤돌인 핵발전소를 같이 제거하라고 함으로써 북한의 선군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주최국으로서 WCC의 방향을 온건하게 주도하기는 했으나, 보다 개최국의 영성을 충분히 대회 진행에 살리지 못하고, 총회 주제인 생명, 정의, 평화라는 개념 하나하나에 보다 강력한 복음주의적 성격을 명료히 부각시키지 못하고, 하나의 이벤트성으로 대회 진행에 초점을 맞추고, 당초 2명이었던 한국교회의 WCC 중앙위원 몫이 1명으로 축소되는 등 한국교회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점은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평가하고 싶으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점이다.

맺음말

이번 WCC 부산총회는 국제회의 자체로는 무난하게 잘 치렀다. 그러나 WCC가 한국교회에 주었던 각종 오해를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 부산총회는 한국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은 아쉬운 여운을 남기면서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지구촌의 교회로서 세계를 향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이 성경적 원리에 따라서 전개되도록 신앙적 역동성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영성적 울림이 없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저 풍성한 말잔치나 사회적인 운동을 펼쳐나가는 NGO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 정의와 평화 개념이 단지 세상적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성경적·영적 차원의 의미를 가지도록 항상 신학적으로 깨어 선교와 복음화의 역동성을 항상 불어넣는 사명을 감당했으면 한다.

필자는 아시아복음연맹(Asian Evangelical Alliance, AEA) 신학위원장(Chairman in Theological Committee)으로서 이번 8월 20-22일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복음연맹 주최 아시아교회대회에 참석하고, 여기서 아시아 12개국(한국, 일본,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태국, 필리핀 등)에서 온 대표들과 함께 아시아복음연맹 신학선언문을 같이 기초하고 발표하였다. 이 신학선언문의 기본 내용은 WCC 2013 선교선언문과 그 항목(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다양한 역사, 교회의 일치, 선교, 평화, 정의, 인권, 생태계)에 있어서 거의 같은 항목들을 다루고 있다. 단지 선교와 복음화와 종말에 대한 분명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확언은 같으나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WCC 선교선언문에 WEA가 동의한 것이다. 크게 보면 WCC와 WEA(세계복음연맹)는 상당한 점에서 공통분모를 향하여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WCC는 사회적 책임을 더 중시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WEA는 선교와 복음화를 더 중시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인 것이다. 이 둘은 기독교라는 선교수레에서 함께 작동하는 두 바퀴와 같은 것이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영혼구원하는 세계복음화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선교수레의 두 바퀴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