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1988년 서울 올림픽이 6.25 전쟁 후 잿더미에서 경제적으로 재건된 한국사회를 세계적으로 알렸던 계기가 되었듯이, 이번 2013년 WCC(World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부산총회는 성공적 개최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이제 선교된 지 130년 만에 교회사에 이름을 올리고 국제교회 및 선교대회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했다. 세계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교회가 세워진 지 130년밖에 되지 않는 나라가, 134개국 140여개 개신교파의 총대 700명을 포함한 2800여명의 해외 지도자들을 초청한 것 자체가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이미 독일의 복음주의 선교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 등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부흥발전상이 1970년대부터 유럽에 알려졌으나, 이들이 한국에 와서 몸소 보고 듣고 체험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모습이 이제는 실제적으로 세계의 기독교인들과 지성인들에게 교회사의 실체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그 동안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였던 한국교회가,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 지구촌의 교회(Global Church)로 등극한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본 글에서 WCC 부산총회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1. WCC 부산총회의 역사적 성과: 약화된 추진력 재충전의 기회

지난 2013년 10월 30일 개회하여 11월 8일 폐막한 WCC 부산총회는, 13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지녔으나 세계적 교회로 성장한 한국교회에 열매와 과제를 동시에 안겨준 값진 경험으로 기억될 만하다.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체제를 촉구하는 성명서가 채택된 것과, WCC 창립 65년 아래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여성 의장이 선출된 것도 성과로 꼽힌다.

이번 총회에는 한국 일부 보수진영들이 극렬히 반대와 방해를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WCC 회원교단 뿐 아니라 세계복음연맹(WEA)·국제로잔복음화운동(국제로잔)·침례교세계연맹(BWA) 등 복음주의권 세계교회 지도자들도 우호적으로 참석, 전 세계 교회가 직면한 생명·정의·평화 문제를 논의하고 다양성 속 일치를 추구하며 정의·치유의 복음을 전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총회에서 참가자들이 이집트·시리아·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고통과 중동 및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폭력과 가난, 차별,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에큐메니칼(교회연합·일치) 운동을 통해 치유와 회복에 나서겠다고 다짐한 것은 큰 결실이다. 이제 한국교회가 부산총회를 통하여 세계적인 안목과 비전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부산총회에서는 2012년 9월 중앙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문서인 WCC의 새로운 선교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 변화하는 지형에서의 선교와 전도’(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s)가 채택되었다. 향후 WCC와 세계교회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교문서’의 채택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방향성을 재확인한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 항목들이 절제되고 교회 항목,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교회와 성령이 강조되었다. 사회참여에서 성령사역을 통한 교회의 선교로 방향 전환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를 채택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문제를 세계교회의 관심사로 새롭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1) 캔버라(7차)의 초혼제 이후 멈춰버린 추진력 재가동

WCC 관계자들의 진단에 의하면 이들은 ‘현재 WCC의 상황’에 관해 자신들의 상태가 다소 비정상적임을 이미 알고 있다. 바이어하우스는 “1961년 뉴델리와 1968년 웁살라 총회에서의 유명한 추진력은 1991년 캔버라 총회의 ‘초혼제’로 인해 멈춰버렸다”고 진단하였다. 특히 정교회 같은 중요한 회원 교회들에게 초혼제는 WCC가 공개적으로 혼합주의를 표방한 증거로 나타났다고 항의를 야기시켰다. 그리고 정교회 등 회원교회들은 에큐메니칼 의사결정 과정이 서구의 의회 규정들과 그들의 이념적 개념을 따라 협의회 당국의 손에 달린 것을 불평하고 있다.

“정교회측은 만일 WCC가 모든 시스템을 철저히 개혁하지 않을 경우 회원권을 포기하겠다고 위협했고, 전임 콘라드 총무의 마지막 임기 중 이전의 권위주의적 스타일이 좀더 민주적이고 반응이 있는 협의회 체계로 바뀌게 됐다.” 바이어하우스는 “콘라드 총무 이후 제네바(WCC)의 리더십은 굵직한 선언들을 만들고 협의회의 미리 고안된 의제들을 회원 교회들에게 강요하는 데 제한을 받게 됐다”며 “그 결과 WCC는 세속 언론, 심지어 서구의 회원 교회들로부터도 대중적인 관심을 많이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결과의 또다른 원인은 “에큐메니칼의 주도권이 제네바 본부로부터 로마 교황청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라고도 했다.(크리스천투데이, “WCC의 추진력, ‘초혼제’로 멈춰… 내부 비판도 직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입력 : 2013.11.10. 15:37, 한국신학회, 獨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초청 신학강좌 개최).

개신교 쪽에서도 WCC의 선언들과 활동들에 대한 우려들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들과 선교회들은 특히 불신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와 지리적으로 10/40창에 있는 미전도 지역의 교회 개척이, WCC의 공식적 의제들 중 매우 하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WCC는 1968년 제 4차 웁살라 총회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용어 아래 선교와 복음화의 개념을 새롭게 개발했다. 여기서 ‘선교’는 교회에 부과된 첫번째 과업이 아니라, 세속사와 자연 가운데 현존하시고 점진적 또는 혁명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하나님 나라’라는 목표로 이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 이후 선교는 전통적 선교 개념에서 인간화와 사회화와 민주화로 변질되었다. 그리하여 기존 종교인들을 전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개종선교 금지(moratorium on proselytism)를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하여 개신교 보수주의 진영은 이의를 제기하면서 회심 선교와 미종족 전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부산총회는 김삼환·박종화 등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온건한 복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WCC의 종래 사회적 관심을 한국교회의 전도와 선교, 성경공부와 기도회에 접목시켜 보다 교회 중심의 선교와 성령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도록 하였다. 트베이트 WCC 총무는 먼저 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협조한 한국교회에 감사하며, 이번 WCC 제10차 총회에 대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총회”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WCC 총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고, 이번 총회 역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트베이트 WCC 총무는 총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WCC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해왔고 그것을 주로 정치적 이슈로 다뤘지만, 이번 총회에선 신앙과 영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했다”며 “신앙에 기초한 공통의 고백과 헌신을 가능케 한 총회였다”고 평가했다(크리스쳔투데이, WCC 총무 “반대자도 기독교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입력 : 2013.11.11. 12:06, 총회 평가 기자회견 후 출국… “北인권은 효과적 접근법 모색해야”).

부산총회에 참석했던 중도보수 신학자들에 의하면 이번이 여태까지 WCC 대회 가운데 온건했으며, 특히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1960-70년대 사회참여적 선명성이나 1991년의 종교다원주의적 충격에서 벗어나 WCC가 본래의 선교와 교회와 일치와 성령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베이트 총무는 이어 “총회 참석자들은 세계 기독교에 있어 한국과 아시아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세계교회는 한국과 아시아 교회들의 주도권을 인정할 것이고, 또한 그들의 리더십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총회에서 WEA를 비롯한 복음주의권과 오순절 교회들이 WCC에 대해 강한 지지를 보냈다. WEA 신학위원장 토마스 슈마허(Thomas Schumacher) 목사가 새로이 채택된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에 전적 공감을 표시한 것이 그 구체적인 예(例)라고 할 수 있다. WEA 신학위원장 슈마허는 4일 오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WCC 전체회의에서 “WEA와 WCC는 서로 예의를 다하고 친절하게 대화하는 관계”라며 두 단체의 유대감을 강조했다(국민일보, WEA “우리는 WCC와 협력관계” 세계복음주의연맹 밝혀 2013.11.04. 22:12, 부산=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이러한 WEA 등의 우호적 유대감과 지지는 한기총을 비롯한 일부 보수진영의 WCC 반대 및 거부 정서가 강한 한국교회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회참여에서 교회와 신앙으로: 그리스도는 세상의 평화 강조

제10차 부산총회 개회예배 설교는 초대교회의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이자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아르메니안 정교회 카레킨 2세 총대주교가 맡았다. 선교 역사 130년에 불과한 한국과 2000년 기독교 역사의 가교 역할을 정교회가 담당했다. 카레킨 2세는 “우리 각자는 자기 나름의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서로가 다르고 모두 독특하지만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가지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보다 힘쓸 것은 영적인 일치다. 믿음과 봉사에서 하나됨,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교회의 이름으로 온 세상에 복음 증거를 하는 일에서 하나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것”이라며 “자기 이웃의 권리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내심이 허락하는 한 무슨 방법으로든 자기 뜻을 관철하며 사는 사람들의 태도가 하나님을 떠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카레킨 2세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참된 평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아이굿뉴스, “사회참여로 시작된 WCC ‘성령’을 화두로 변화 모색.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으로 ‘일치’ 향한 큰 걸음”, 2013년 11월 06일 (수) 15:07:02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카레킨 2세 총대주교는 철저한 자기부정과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 없이는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 엠마오 도상에서 만난 제자들처럼 다시 하나로 모여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성취해야 한다는 점을 개회 메시지에 담았다. 그리고 모든 참여자들은 함께 니케아 콘스탄틴노플 신조를 고백하였다. 니케아 콘스탄틴노블 신조는 사도신경을 보다 교리적으로 구체화한, 기독교 신앙고백의 핵심이다. 참가자들은 눈물을 흘리는 등 은혜를 받았다. WCC를 여태까지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던 한 목회자는, 이 개회예배를 통하여 WCC 찬성자로 돌아섰다는 간증을 했다고 한다.

3) 성령의 역사 강조: ‘성령’으로 돌아가자

부산총회에서 발표된 새로운 선교문서는 선교의 패러다임을 기존의 ‘기독론’ 중심에서 ‘삼위일체론’ 중심으로 옮겼다고 분석되고 있다. 실제 이 문서는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고, 거룩한 삼위를 하나로 묶는 그 사랑은 온 인류와 피조물에게로 넘쳐흐른다”며 “성령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우리는 오늘날 변화하는 다양한 세계 안에서 하나님 선교를 어떻게 다시 계획할 수 있을까”라고 증언하고 있다.

새로운 선교문서는 ‘성령의 선교’에 대해 “성경은 성령의 선교적 역할에 대해 다양한 이해가 있음을 증언한다”며 “(그 가운데 한) 견해는 성령은 우리를 ‘온전한 진리’(요 16:13)로 인도하는 ‘진리의 영’이며 온 우주를 끌어안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시는(요 3:8) 것”을 강조하면서, “성령은 그리스도의 원천(source)으로 교회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백성들의 종말론적 모임(synaxis)으로 선포한다”고 밝히고 있다.
 
WCC 제10차 총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성령’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선교와 일치 등 교회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성령’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고백이 나왔다. WCC 관계자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오순절교회의 부흥을 목격하고, 특히 한국 총회에서는 한국교회 안에 깊게 뿌리내린 기도와 성령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오순절교회가 WCC 회원교회가 되어 달라’는 ‘러브콜’이 강렬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91년을 주도했던 사회참여와 다원주의 영성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11월 4일 저녁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가 주관한 기도회에는 2천여명이 참석했다. 설교를 전한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영훈은 ‘성령과의 동행’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체험이 없는 신앙은 우리를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으로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형식화되는 신앙을 경계하며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는데, 이것은 성령님을 날마다 환영하고 인정하며 모실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를 따라했고, 성령의 임재를 간구했다.

선교선언문이 채택된 지난 4일 WCC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 총무 금주섭은 ‘함께 생명을 향하여’라는 선언문에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가 가장 중요하게 고백됐다”고 설명했다. 선언문은 오순절교회와 정교회의 성령론으로 선교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선교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며 성령님이라는 점을 선언문에 명시했다(아이굿뉴스, “사회참여로 시작된 WCC ‘성령’을 화두로 변화 모색.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으로 ‘일치’ 향한 큰 걸음”, 2013년 11월 06일 (수) 15:07:02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이러한 분위기는 1970년대 강한 인종 차별 정권에 대한 투쟁, 독재 정권 하에 인권을 강조하던 분위기, 1991년 초혼제로 충격을 받았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흐름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선교 선언 93항에는 다른 신앙 전통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성령의 신비로운 역사가 있다고, 삼위일체론적 성령론이 다원주의적 성령론으로 나아가는 문이 열려 있다.

4) 종교소수자 보호 선언

부산총회는 급진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에 대해서도 WCC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힐라리온 대주교는 “박해받는 형제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의무”라며 “전 세계에서 100만 정도의 기독교인이 종교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으며, 거의 5분에 한 명씩 종교를 이유로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의 정치화와, 이슬람 지역에서 종교적 소수자인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관련해서는 공공쟁점처리위원회가 제안한 발표문에서도 언급됐다.

공공쟁점처리위원회는 “최근 들어 종교 및 신앙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종교 모독 문제로 더욱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하고, “사람의 권리보다 종교를 보호하려는 경항은 인권의 기본 원칙을 해친다”며 이슬람권이 내세운 ‘종교모독방지법’에 대해 반대의 의사를 표명했다. WCC는 성명서 초안에서 “종교모독방지법은 종교적 소수자들이 박해받는 지역에서 악법의 길을 터 주는 것”이라며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없도록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아이굿뉴스, “사회참여로 시작된 WCC ‘성령’을 화두로 변화 모색.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으로 ‘일치’ 향한 큰 걸음,” 2013년 11월 06일 (수) 15:07:02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부산총회 아시아 전체회의에서 인종과 종교갈등, 경제성장의 이면에 존재하는 빈곤과 환경파괴, 여성과 어린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개진된 것은 하나의 큰 성과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헨리에트 후타바랏 레방 총무는 지난 11월 1일 아시아 전체회의에서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종교 극단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증가해 망명을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가 겪는 문제가 결코 세계교회와 무관하지 않으며, 아시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세계교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필리핀 연합감리교회 목사 코니 세미 멜라는 “여러 행태의 불의가 만연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수백만명이 극심한 빈곤을 겪는 상황에서 정의로운 평화는 실현될 수 없다”고 피력하였다(기독교신문, “WCC, 남북화해 위해 교회의 목소리 낼 것”, 2013. 11.10. 제 2177호, 2면). 이처럼 WCC 부산총회가 남아시아 이슬람이나 힌두교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원리주의의 실태를 고발하고 국가 간의 개발 경쟁에서 경제 정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세계교회협의회로서 낼 수 있는 중요한 목소리를 냈다고 말할 수 있다.

5) “종교다원주의”, “용공”, “동성애” 비난에 대한 공식적 해명

WCC 월트 알트만 의장은 10월 31일 부산 벡스코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WCC 총회 반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거론되는 의혹들인 동성애나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WCC의 공식 입장은 없다. 소수자들을 무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어떤 프로그램이나 정책이 없는 만큼, WCC를 동성애나 종교다원주의, 용공이라고 매도하는 건 옳지 않다.” “95% 이상이 찬성할 때에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컨센서스(consensus) 결의법에 따라, WCC가 많은 논란들에 대한 공식적 입장이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기독교신문, “WCC, 남북화해 위해 교회의 목소리 낼 것”, 2013. 11.10. 제 2177호, 2면).

이러한 의장의 표명에 따르면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용공을 주장하는 소수가 WCC 안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WCC 지도부는 이들이 소수자라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다수는 이를 반대한다는 것을 의장은 밝히고 있다. 협의회로 연합운동을 하는 기관에는 모두가 한 교단처럼 동질적일 수는 없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큰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WCC를 단도직입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용공”, “동성애”로 매도하는 극단한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은, WCC의 실체적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부산총회에서 이미 입증되었듯이 “종교다원주의”나 “용공”이나 “동성애”에 대한 확고한 결정은 WCC 안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6) 한국교회가 세계 에큐메니칼 회의 역사 속에 편입

이번 부산총회를 통하여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세계교회 지도자들과 만나고 대화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이제는 지구촌의 교회로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경에 있는 소아시아교회와 더불어, 한국의 부산이 아시아에서 1961년 인도 뉴델리에 이어 두번째로 WCC 에큐메니칼 대회를 개최한 것으로 교회사의 문서에 그 족적을 가지게 되었고, 여기서 발표되는 선언문과 각종 채택된 정책들이 앞으로 7년간 전 세계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교회는 이제 한반도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역사적 계기(kairos)에 서 있다.

부산총회를 포함해 모두 5차례 WCC 총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초대 인권대사 박경서는 “한국교회의 영성과 잠재력을 세계교회에 보여준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총회 개막식과 더불어 주말 프로그램으로 한국교회 및 60년 동안 철책이 있는 남북 분단의 현장과 도라산·임진각 등을 방문한 외국인 참가자들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영성, 평화를 향한 열망을 온몸으로 체험하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개막 및 폐막 예배와 기도회, 성경공부, 주제발표와 마당 등 각각의 프로그램이 전체 주제에 맞도록 짜임새 있게 준비됐고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평가된다. WCC 창립 65년 이래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여성 회장(장상 목사)이 선출된 점은 한국교회의 쾌거로 받아들여진다.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한 것도 큰 성과다. 이번에는 배현주 교수 등 여성 두 분이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것도, 여성 대표를 선호하는 WCC의 분위기를 나타내 주고 있다.

7) 반대자들도 형제로 간주하는 트웨이트 총무의 관용적 태도

트베이트 총무는 부산총회가 끝난 후 11월 11일 아침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산총회 기간 동안 있었던 ‘WCC 반대 시위’에 대해서 언급했다. “WCC는 다양성 속 일치를 추구한다. 이 일치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 속에서의 일치”라며 “WCC 반대자들 역시 세계 기독교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한다”(크리스천투데이, WCC 총무 “반대자도 기독교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입력 : 2013.11.11. 12:06, 총회 평가 기자회견 후 출국). 부산 총회 시작부터 폐회까지 쉬지 않고 지속된 반대시위에 대하여 트베이트 총무가 “반대자들도 기독교 공동체의 일부”라고 한 것은 복음적 태도라고 생각된다. 보수주의자들은 겸손과 관용을 WCC 지도자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방법을 가지더라도 목적이 같으면 서로를 인정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배워 나가는 관용과 겸손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덕목이 되어야 한다. 트베이트 총무의 이러한 표명은 반대자도 공동체의 일부로 수용하는 관용적 태도이며, 한국 보수진영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태도를 배우는 것이 요망된다. 이번에 WCC가 2013 선교선언문을 세계복음연맹(WEA)의 동의를 얻어 선언한 것도, 상호 협력의 정신과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8) 일부 보수진영 지도자들의 지도력(관용과 넓은 안목) 결핍

이번 부산대회에 대한 일부 보수진영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의 태도는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일반 사회적인 반대 시위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볼 때, 한국 기독교인의 양식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화 덕목은 이신칭의라는 큰 신앙에 비하면 상당히 후진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한쪽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 이에 대한 규탄시위와 기도회를 인도한다는 것은, 양식이 있는 지도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총회 폐회예배 시에 강대상을 향하여 돌들이 날아와 화면과 단상 위의 사람들이 다치는 일까지 벌인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필자는 WCC가 교리적으로 보완해야 할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리가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같은 수준으로 못 믿는 형제라면 질타나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더 큰 믿음을 가지도록 사랑으로 설득하고 도와 주는 것이 예수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