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운명을 규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신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과 자기 자신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고 하겠다. 그 여러 가지 요인들 중 한 사람의 운명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기 자신적인 요인 특히 자기 자신의 성격 또는 기질이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물론 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되는 그의 성격이 이미 신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들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생각할 때 자기 자신 이외의 요인들이 그의 운명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이고 결과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 사람의 운명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자기 자신의 성격과 기질이라고 나는 보고 싶다.

나는 '운명'을 한 사람이 사는 '삶의 스타일'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싶다. 내세에까지 이어지는 현세를 사는 한 사람의 삶의 스타일을 나는 그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박정희 태통령이 심각하고 엄격하고 강인하고 무자비하게 살았다면 그와 같은 그의 삶의 스타일이 그의 운명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돌 같이 불도져 같이 막 밀어 붙이며 무식하게 살았다면 그와 같은 그의 스타일이 바로 그의 운명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융통성 없이 독선적으로 무책임하게 살았다면 그와 같은 그의 삶의 스타일이 바로 그의 운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한평생을 심각하고 우울하게 살았다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운명이고, 어떤 사람이 한평생을 느긋하고 여유있고 즐겁게 살았다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운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운명을 규정한 나의 성격적 요인들을 살펴 본다. 야곱같이 거짓되고 이기적인 요인이 나의 속 깊이 작용하고 있다. 모험을 좋아하는 못 말리는 성격이 나의 삶에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11살에 혼자 38선을 넘을 수도 있었고 세계 이곳 저곳을 뛰어 다니며 갖가지 난관들을 뛰어 넘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도 있었다. 영몰라 통몰라의 건망증이 나의 삶 전부에 흐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욕을 먹으면서도 쉽게 잊어버리고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여유 있게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것이다. 한 사람의 운명을 그의 성격이나 기질에 내어 맡기고 그것의 지배를 받으며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그렇게 한 평생을 사는 것 같다. 속이기 좋아하는 이중적 성격을 타고 난 사람은 한 평생을 남을 속이면서 이중적으로 사는 것 같고, 다투는 성격을 타고 난 사람은 한평생을 다투면서 사는 것 같으며, 무질서하고 불친절한 성격을 타고 난 사람은 한평생을 무질서하고 불친절하게 사는 것 같다. 게으른 사람은 한평생 게으르게 산다. 대부분의 경우 무덤에 갈 때까지 자기 성격에 따른 한 평생의 운명을 지니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는 있다. 성격의 변화와 그에 따른 운명의 변화가 있다. 그것은 어떤 충격적 감동과 꾸준한 훈련에서 온다. 나는 속이기를 좋아하는 본능적 습관을 신앙적 감동과 꾸준한 훈련으로 조금씩 고쳐 나아갔다. 나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이기적이던 성격을 미국 생활 중 신앙적 감동과 꾸준한 훈련으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사람 돕기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차츰 바꾸어 갔다. 그래서 본래적인 나의 성격과 다른 적극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적극적인 스타일의 삶을 사는 다른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이 변화될 수 있고 그에 따라 그의 운명이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꾸어지고 시몬이 게바 또는 베드로로 바꾸어 지며 사울이 바울로 바꾸어짐을 보여 준다. 부정축재하며 산 세리장 마태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남을 돕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서의 저자로 바꾸어짐을 보여준다. 한국 사람들과 한국의 신자들에게는 아직 이와 같은 타고난 성격의 변화와 운명의 변화가 뚜렸하게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속이는 성격, 무절제한 성격, 불친절한 성격, 탐욕적 성격, 배타적인 성격이 그대로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것 같다.

성격의 변화와 운명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성격의 변화는 먼저 내가 나의 타고난 성격의 잘못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인정하고 시인하는 데 있다. 그 다음 철저한 신앙적 감동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 철저한 신앙적 감동은 성격을 변화 시킨다. 그 다음 꾸준한 훈련이 따라야 한다. 거듭된 훈련은 성격을 변화 시킨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우리의 성격과 운명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를 정직한 사람들이 사는 정직한 사회로 바꾸어야 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친절한 사회로 바꾸어야 하며, 질서있고 검소한 사람들이 사는 질서있고 검소한 사회로 바꾸어야 할 때이다. 우리가 교회와 사회 안에서 천국에 잇댈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적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의 스타일과 운명을 바꾸어야 한다.

김명혁 목사님(강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