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4)

조개구름이 수놓인 하늘은 잔잔한 이미지의 수채화처럼 맑고 고요하였다. 세상을 두 쪽 낼 듯이 우박처럼 폭탄을 퍼붓던 제트기가 더는 날지 않았다. 인민군이 밀려간 후 동네 공터엔 여기 저기 UN군부대가 자리 잡고 캠프를 쳤다. 신애네 집과 가까운 학교 운동장과 공장 마당에도 미군부대와 필리핀부대의 캠프가 설치되었다. 폭격으로 부서지고 깨진 거리에는 흔들거리는 양…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Jul 12, 2012 10:20 A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3)

요즘엔 퇴각하는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밤낮 없이 유엔군의 폭격기가 살상의 불을 뿜는 세상이 것만, 과수원의 복숭아나무엔 크레파스로 그린 것처럼 수밀도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고. 사과나무엔 연록색의 색연필로 칠한 것 같은 푸른 사과가 눈 시리게 달려 있었다. 새빨간 고추잠자리와 된장잠자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난 원무를 추고, 미루나무의 우듬지마다 엔 둥…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Jul 03, 2012 04:55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2)

언니야, 아버지한테 이르지 마라. 그 사람들 안 무서워. 우리 복숭아가 아주 맛있다고 좋아했단 말이야, 응? 너, 또 거길 가겠다는 거야? 신애는 눈을 부릅떴다. 아니야 아냐 안 가. 언니야, 진짜 아버지한테는 이르지 마라. 마당에서 벌 서는 거, 창피하단 말이야. 응? 넌 흠씬 당해야 해. 도무지 엄마 아버지의 속을 상하게 하는 바보잖아? 이때다 싶어 신애는 영어 단어 10개 …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Jun 29, 2012 03:16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1)

썩은 악취를 풍기는 건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몰골이었다. 이시가와였다. 엄마는 그 자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토록 악랄하던 일본 놈, 이시가와가 분명하였다. 시신과 진배없는 몰골은 걸레처럼 불결하고 남루하였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행색이었다. 아악! 어이쿠, 아악---아악---! 신애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비명을 토해내는 엄마를 끌어안았다. 기…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Jun 21, 2012 01:19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0)

가여운 금희는---? 신애는 잠간 금희에게 가볼 생각을 한다. 해방이 되고 개학을 하여 한글을 배우고 있는 데도 금희는 학교엘 오지 않고 있었다. 금희의 무용가의 꿈은, 경성에 가서 식모살이를 해서라도 무용학교에 가겠다던 금희의 독한 포부는---? 여린 신애의 마음은 애잔해 진다. 엄마는 과수원지기가 사는 양철집 안팎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계속 사과도둑이 들다니, 아…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Jun 14, 2012 01:19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9)

매일 내리던 눈은 날이 밝으면서 그쳐주었다. 눈 온 이튿날은 문둥이가 빨래해 입는 날이라고 하신 할머니 말이 생각나서 신애는 미소가 나왔다. 바람도 자고 정말 푸근한 겨울날씨였다. 엄마는 은애에게 감춰 두었던 눈깔사탕이며 부채과자를 꺼내주고 두 동생을 잘 보라고 엄하게 일렀다. 특히 세 살짜리 사내동생이 윗목에 철망을 쳐 놓은 화로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한눈팔…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Jun 07, 2012 01:53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8)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는다. 경성에 가자마자 아버지에 관한 소식을 알려주시겠다고 한 고진의 아저씨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루가 백년 같은 데도 한가위 추석이 돌아왔다. 이미 9월도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작년 추석 땐 흰 인조견 속치마를 받쳐 입은 위에 까만 뉴똥 치마와 노란 개나리꽃 무늬가 있는 분홍색 공단 저고리를 입었던 생각이 나서 신애는 몹시 우울하였다. …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May 15, 2012 02:21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7)

무더운 날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아버지에게선 엽서 한 장 오지 않는다. 고단한 밤 엄마가 한 땀씩 수놓은 일곱 개의 무운장구 센닌바리는 아버지 방 책상 위에 압핀으로 붙어 있다. 볼 때마다 신애는 엄마의 간절하고 고독한 마음이 느껴져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할머니가 몸져누우셨다. 큰아버지가 구금된 때문이다. 아버지가 징용을 피하기 위해 숨어 지내던 것과…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May 08, 2012 04:17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6)

만세를 힘차게 외치는 격앙된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방송은 계속 일본 천황의 항복소식을 반복하였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신애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방을 휘둘러보는데, 언덕 아래 가즈오네 집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게 보였다. 웅성웅성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이집 저집에서 동네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이 망하고 해방이 되었다. 만세…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May 02, 2012 06:59 A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5)

까미가 풀려 산발이 된 머리 때문에 엄마의 광란은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배에서 상체로 올라온 주먹은 젖무덤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원한의 주문을 외우듯이 이시가와의 이름을 뇌까리며 엄마는 소리 죽여 훌쩍였다. 그렇다. 이시가와 그는 원수이다. 도저히 무엇으로 어떻게도 씻을 수 없는 치욕인 것이었다. 아버지가 땅굴에서 발각되어 구금된 그 비 쏟아지는 밤, …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Apr 25, 2012 07:20 A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4)

인원 점검을 위해 나온 조헤이 담당자들과 일본 헌병들이 애국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기차에 오르고 있는 징용 나가는 조선 남자들에게도 따라서 부르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제일 강력적인 손짓 지휘를 하는 이시가와를 엄마가 보게 되었다. 아버지도 신애도 보았다. 큰아버지는 츳츳 혀를 차며 못된 새끼, 망할 놈의 새끼, 눈살을 찌푸리시고 가래침을 칵 뱉었다. 속울…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Apr 10, 2012 02:22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3)

제3장. 기적소리 담청색 하늘이 아기의 얼굴처럼 해맑은 8월의 아침. 아버지는 전보다는 한결 힘을 얻고 있는 듯했다. 큰엄마가 줄곧 인삼 영계백숙과 깨죽을 날라다 주셨고, 징용에 나가기로 마음을 굳힌 아버지가 수면제로 제대로 잠을 주무신 덕인 것 같았다. 동생 둘만을 남겨두고 아버지와 엄마를 따라 신애는 종종걸음으로 할머니 댁으로 갔다. 여느 때처럼 할머니는 정…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Apr 03, 2012 04:35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2)

다음날 아침. 이시가와가 대문 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는 댓돌 앞에 낮도깨비처럼 우뚝 선 채 구겨진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쓱쓱 닦는다. 왕골 돗자리를 깐 대청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그가 딱총을 쏘듯 쇳소리로 말하였다. “가네모도 쥰이찌(金本 純一)상, 여기다 도장 찍으시오.” “그, 그게 무엇입니까?” 힘들게 일어나 앉으시며 아버지가 물었다. “조헤이 영장이 …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Mar 20, 2012 02:37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1)

“아니다. 남양 군도나, 아마도 그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그럼, 선생님도 조헤이에 나가시는 거예요?” “그렇다. 전황이 매우 위급한 모양이라고 하니까.” “선생님은 일본인인데 징병에 가시지 않아도 되잖아요? 남양군도는 말라리아랑 너무 멀고 위험한 곳이에요.” “천황폐하의 명령이다. 쇼아이 너, 선생님이 엽서 보내면 곧장 답장을 써야 한다.” “네, 선생님…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Mar 13, 2012 04:30 PM KST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0)

내일 다시 오라고 했던 이시가와는 면회를 시켜주지 않았다. 분하고 억울하여 매일같이 엄마는 날이 새기 무섭게 군청으로 쫓아가곤 했다. 그러나 이시가와는 딴 사람이 된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내가 언제 무슨 약속을 한 적 있느냐고 칼로 자르듯 계속 딴 말만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난 밤. 기적처럼 아버지는 각혈이 심해지셔서 짐수레에 실려 나왔다. 엄마는 식…

크리스천투데이=김은애 기자 | Mar 06, 2012 03:42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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