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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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그가 한서 남궁억의 삶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새벽 남궁억은 뭉이의 부축을 받으며 유리봉으로 올랐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소나무들이 가벼이 흔들리며 청아한 솔향을 뿌렸다. 그 중엔 남궁억이 오래 전에 심었던 어린 묘목이 우람하게 자라나 하늘을 향해 푸른 잎을 흔들고 있기도 했다.…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남궁억, 수감된 후 수의 거부하고 알몸으로 지낸 이유

“취조관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나쁠지 모르지만, 우리로서는 그렇게 해야 하므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오. 나는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 말이 법에 저촉된다면 어떤 처분이라도 받겠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에게 그런 불온스런 말을…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남궁억 ‘십자가당 사건’의 전말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이 일을 ‘십자가당(十字架黨) 사건’이라고 이름붙이고 상세히 보도했다. 그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십자가당의 회원은 홍천군 보리울에서 민족교육과 민족정신 고취에 힘쓰고 있던 한서 남궁억의 영향을 받은 사…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이번에는 반역죄에 휘말리다

한민족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듯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는 한민족에게 큰 시련을 더해 주었다. 신사참배뿐만 아니라 일본의 4대 국경일에는 꼭 일장기를 달라고 강요했다. 그것은 치욕스런 일이었으나 그런 동시에 …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더 이상 빈부귀천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한 번은 백정 일을 하는 조천만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교회에 인도되어 나왔다. 남궁억은 그를 위해 기도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조천만 씨는 오늘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정성껏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남궁억,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 담은 뜻

백발의 소년 같은 남궁억 교장은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들고 불기 시작했다. 흰 수염을 휘날리면서 흥취를 돋우면 아이들은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둥실둥실 춤을 추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힘을 낼 필요가 있었다. 기가 죽어 움츠러들면 더…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무궁화, 남궁억에게 단순한 식물 아닌 하나의 고귀한 생명

무궁화 묘포는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오직 보리울 한 곳에밖에 없었다. 남궁억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무궁화 묘목을 전국 각지의 학교와 애국단체, 교회나 절 등으로 보급했다. 수십만 주의 무궁화 묘목이 우편배달부의 자전거에 실려 한반도 곳곳으로 퍼져 나갔…
소강석 목사

사람들 사이로 퍼지는 난향(蘭香)

내 사무실 창가 한쪽에는 크고 작은 난(蘭)들이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청정해지는 화분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받은 소중한 식물들이다. 그동안 나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저명인사들로부터 난…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남궁억, 무궁화를 구심점으로 삼다

일본은 총칼의 폭압만으로는 3·1운동으로 분출한 우리 민족의 저항을 막을 수 없었으므로 겉으로나마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조금 완화하여 유화정책을 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이라고나 할까. 문화생활이나 교육 등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을 …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남궁억의 보리울 모곡학교, 3.1운동 이후 인가를 받다

남궁억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의 허연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학생들도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참 동안 창문만 바라보고 있던 남궁억이 말했다. “3·1운동이 시작된 이후 3개월 동안 피해 상황을 대강 어림잡아 보면 이렇습니다. 집…
소강석 목사

외로운 담비를 위하여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 있는 우리 교회 기도원은 해발 500미터 높이에 세워졌는데,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사시사철 청정계곡에 맑은 물이 흐른다. 그 계곡 위에 원두막을 지어놓았는데 거기에 앉아 있으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나의 귀를 씻고, 피톤치드 …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보리울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보리울에도 그런 독립만세의 함성이 봄바람을 타고 울려 왔다. 남궁억은 즉시 만세운동의 준비에 들어갔다. 제자들과 마을 사람들을 모아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시위 당일엔 모두 머리띠를 두르고 흰 옷을 입도록 지시했다. 준비가 되자 남…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고종의 죽음, 분위기는 일촉즉발… 남궁억은 성주 목사로

1905년에 남궁억은 고종의 부름을 받고 다시 경상도 성주의 목사(牧使)로서 관직에 올랐다. 성주에는 이용구라는 사람이 일진회 성주지부장을 맡아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남궁억을 궁지에 빠뜨려 일을 방해했지만 평소에 …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남궁억, 탑골공원을 만들기로 하다

한 번은 초소를 순시하다 보니 보초가 자리에 없었다. 포졸을 시켜 알아보게 했더니, 남궁억도 잘 아는 마을의 어떤 노인이었는데 집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얼마 후 그 노인을 불렀다. 그러고는 술을 한 잔 대접하면서 남궁억은 말했다. “위급한 시기에 보초가…
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기미년… 남궁억, 고종 황제와의 인연을 회상하다

기미년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남궁억은 보리울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고종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일본 자객이 암살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았다. 남궁억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한 나라의 황제로서 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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