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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본문: 요한복음 8:17-18절

주님의 증언이 계속되는 장면입니다. 주님이 바리새인에게 판단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판단이 옳다는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려 합니다. 그런데 계속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판단과 사람의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나와 아버지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혼자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하였으니(17절)”. 주님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인정합니다. 반율법주의자가 아님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증언이 정당함을 주장합니다. 그런데도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논쟁의 중점은 하나입니다. 수의 개념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 눈에는 분명히 주님이 혼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혼자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율법에서 발견되는 원칙의 적용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서로의 전제조건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전제조건은 어떠한 일이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 앞서 이루어져야 하는 성격입니다.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전제조건은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다”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제조건은 “단순히 눈앞에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한다”입니다. 이렇게 전제조건이 서로 다르니, 유대인들이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명백히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전제조건은 율법에 예언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주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2. 존재가 다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을 사람과 동일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18절)”.

주님은 자신을 위해 증언해도 됩니다. 주님은 사람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겉으로 사람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내면으로는 신적 특성을 갖고 계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주님이 신성(神性)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특성인 인성(人性)과 신적 특성인 신성(神性)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근거가 있습니다. “너희의 율법에는 두 사람의 증언을 인정한다”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율법에는 두 사람의 증언을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이 유대인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존재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다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영적인 눈이 감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신성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사람 혼자서 증언하는 것이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스스로 증언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람처럼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변적인 사람과 다른 영원한 ‘진리 그 자체’입니다.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성경학자들은 주님이 자신의 신성한 자의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갖고 계시던 속마음을 꺼내어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신성을 인정하게 되면, 주님의 말씀이 명쾌하게 인정이 될 것입니다.

3. 둘이서 증언한다
아버지와 함께 증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18절)”. 여기서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는 삼위일체론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기독교에서 중심교리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하나님이 셋이 동등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하나의 동질성(본질)을 공유합니다.

별개의 세 위격은 “각각 완전하고 온전한 하나님이시다”는 의미로, 1215년 제4차 라테란공의회에서 결정했습니다. 이 회의는 1213년 4월 교황 인노센티오 3세에 의해 소집되어서 1215년 11월 11일 로마의 라테라노궁전에서 열렸습니다. 이 공의회에서 아버지인 성부(聖父), 아들인 성자(聖子), 진행하시는 성령(聖靈)이십니다.

삼위는 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합니다. 하나의 본질은 신이 무엇인지를 정의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해’, ‘성령 안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삼위의 신성한 세 위격이 공유하는 단일적인 활동으로 간주됩니다.

셋이 하나라는 사실은 머리로 따져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 경험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신앙 정신이 하나로 집약된 교리의 이해입니다. 따져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을 만나 신앙의 교리가 의심 없이 믿어지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사람만이 아님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이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