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교회를 개척하고 섬겼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은 교회가 전부였습니다. 부모님께서 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배웠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 보니 부모님이 걸어가신 그 신앙의 발자취는 목사인 저도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초대 한국교회 성도들과 사도행전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기독교 100년사 한국교회 예화집을 보면 훌륭한 신앙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 많은 신앙인들 대다수가 배움은 물론 신앙의 학벌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신학교가 없었습니다. 신학서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무했습니다. 그리고 문맹인들이 교회에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전라도 000 같은 섬에는 70% 이상이 문맹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구제와 선교를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청년들과 성도들의 신앙수준은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순수하였고 헌신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한국교회 지적수준은 모두가 풍부합니다. 각종 성경공부와 집회와 세미나를 통해 많은 지식이 쌓였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점점 더 부흥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인들을 찾아보기가 점점 희박해저 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저는 많은 고민도 해 보았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직까지도 명쾌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말씀으로 위로를 받을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분들은 주와 및 복음을 위해서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도 초대 한국교회처럼 완성된 신구약성경책도 없었습니다. 체계적인 신학교도 없었습니다. 당시 로마시대는 황제가 신입니다. 하나님(예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우리에게 참 진리와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라고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무엇인지도 확실히 체험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성도들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얼마 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요즈음 학생들 입에서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무엇이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제 머리에서 “개독교”란 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목사님 하면 세상 사람들이 존경했습니다. 비록 예수는 믿지 않아도 신앙인들을 대우해 주는 시대였습니다. 불과 30년도 안되어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었다면 교회 지도자들과 신앙인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될까 많은 신앙인들이 걱정을 합니다. 교회 부흥과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총동원주일로 전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행사보다는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신앙인들이 이웃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직 복음전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이방종교처럼 인간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기 위해 헌금하고, 봉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속에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하는 헌신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때문에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신자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 4:8)”

코로나19가 우리의 신앙에 절대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독수리처럼 더 성장케 하는 고난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고난을 통해서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욥기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보내어 하나님 백성답게 훈련하기 위해 광야에서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신 8:3)”신앙의 참 가치는 고난 속에서 핀 아름다운 꽃이 되어야 합니다. 참 신앙은 아름다운 꽃과 열매로 가정과 이웃에게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