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경에서 찾아 본 가데스 바네아와 호르 산의 위치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부터 모압 평지까지 진을 친 장소는 모두가 31군데로 민수기 33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진을 친 장소들의 위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출애굽 경로 및 가데스 바네아와 호르 산의 위치를 밝히는 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에 대해 나름대로 검토해 볼 수 있는 정보를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우선 먼저 가데스 바네아와 호르 산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근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창세기 14장 7절의 기록에는 엘람 왕 그돌라 오멜의 연합군이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을 치고, 하사손 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쳤다는 내용이 있다. 엔미스밧은 “사막의 샘” 또는 “심판의 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가데스(Kadesh)라고도 불렀다.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창 14:7)

이스라엘이 에시온 게벨 다음에 “신 광야(Wilderness of Zin)의 가데스”에 진을 쳤다. 그리고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 보고한 곳도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이다. 이처럼 “가데스 바네아는 바란 광야(Wilderness of Paran)와 신 광야 (Wilderness of Zin)에 걸치는 넓은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

“에시온게벨을 떠나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을 치고”(민 33:36)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민 13: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신 9:23)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민 13:26)

이스라엘이 바란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의 백성들에게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올라가서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차지하라고 명령하셨다(신 1:20-21). 그런데 백성들이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할지, 우리가 갈 그 성읍들이 어떤지 가서 보고 오게 하자고 하여, 모세가 각 지파의 수령급에서 한 명씩 12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으로 보냈는데, 그들이 “바란 광야”에서 출발하여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다.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민 13:21-22) 

그러나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올라가 차지하는 일에 반대하자, 백성들이 두려운 나머지 원망을 터뜨리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죄를 저질렀다. 자신들의 판단을 앞세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여 명령을 거역한 죄의 대가로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할 것이고, 더불어 1세대 자손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신 9:23)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민 14:32-33)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내일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너희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 싸움에서 패할 것이라고 경고를 하셨기 때문이다.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민 14:25)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신 1:40)

그러자 뒤늦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를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올라가 싸우겠다고 나서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하신다.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지만, 아말렉인과 가나안인 등에게 패하여 “호르마”까지 쫓겨 왔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가데스 바네아”에서 “네겝 광야를 가로질러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빠른 길”을 놓쳐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죄의 대가로 정탐일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간의 기나긴 광야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다.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민 14:43-45)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 14:34)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빠른 길.

참으로 고되고 힘든 광야생활을 마무리하는 40년이 되는 해의 첫째 달에 “신 광야의 가데스 므리바”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부족하다고 또다시 불평을 한다. 이에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이 많이 솟아나게 하여, 백성들과 짐승들에게 먹이게 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죄로, 역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는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민 20:12-13)

그 후에 모세가 “에돔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 바네아”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당신의 땅 가운데를 지나는 큰길(왕의 대로)”을 통과시켜 달라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했다.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 하리이다 한다고 하라 하였더니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민 20:16-18)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데스”를 떠나 “에돔 땅 변경에 있는 호르 산”에 이르렀을 때, 모세와 아론이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의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백성의 목전에서 나타내지 않은 죄로 아론은 출애굽 후 40년 5월 1일이 되는 날에 호르 산 정상에 올라가 죽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의 죽는 모습을 산 밑에서 보고, 그를 위하여 30일간 애곡했다.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가데스를 떠나 호르 산에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 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르시되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민 20:22-2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14)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백이십 삼 세였더라”(민 33:38-39)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30일 동안 애곡하였더라”(민 20:29)

한편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사로잡는 바람에, 이스라엘이 그 보복으로 아랏 왕을 쳐서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한 사건이 일어났다. 따라서 “호르 산은 가데스 바네아와 아랏 사이”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민 21:1-3)

▲가데스 바네아에서 아다림 길을 통해 아랏으로 간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의 가데스”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고 하신 명령을 거역하는 바람에 “아다림 길”을 통해 “네겝 광야를 가로질러 가나안으로 가는 빠른 길”을 놓쳐 버렸고,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돔 왕의 거절로 “호르 산에서 돌이켜”, 힘들게 지나왔던 “크고 두려운 바란 광야(The great and terrible wilderness of Paran)”의 “홍해 길”로 들어가 이제 다시 지나가야 한다고 하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상한 것이다.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민 20:21)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민 21:4)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틀림없이 아주 힘든 여정이었을 광활한 “바란 광야의 홍해 길”로 들어가 다시 그 광야를 지나간다. 그리고 “아라바 광야 남단 근처의 세일 산지”로 들어가 그곳에서 여러 날 두루 돌아다닌다. 그곳 “세일 산”에서 다시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을 지나고, 에돔 땅 오른편으로 나 있는 “광야 길(사막 길)”로 들어가 가나안을 향해 북쪽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방향을 돌려…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신 2:1-5)
“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신 2:8-9)

▲에시온 게벨에서 가데스 바네아를 거쳐 모압 평지까지의 출애굽 경로이다. 초록색은 호르 산에서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통과해 왕의 대로로 가기를 원했던 경로이고, 붉은색은 호르 산에서 홍해 길로 돌이켜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을 지나 광야(사막 길)로 들어가 모압 평지로 가는 머나먼 경로이다.

▣주: 세일 산(Mt. Seir)은 원래 이 산지의 원주민이었던 호리 족속의 땅이었으나,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Esau)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에돔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세일은 ‘털이 많은’, ‘관목이 우거진’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에돔 사람들이 살았던 산악지대로서 저지대인 아라바 광야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사해 끝에서부터 남쪽으로 아카바 만까지를 잇는 광활한 지역을 통틀어 “세일 산지”(산맥)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길이는 자그마치 160km 정도나 된다. 세일 산지에서 제일 높은 산은 해발 약 1,700m 정도나 되며, 대부분이 높은 산들로 형성되어 있고, 붉은 바위가 많이 널려 있는 산악 지대이다.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으로서, “페트라”(해발 900m)와 “자발 하룬”(해발 1,440m)도 이 산지 내에 있다.

“에돔은 세일 산지”를 중심으로 에서와 후손들이 호리 족속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창 25:30, 36:1-8)이고, 에서와 그 후손들이 세일 산지(에돔 산지) 높은 바위틈에 살았다.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말씀 하시니라…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옵 1:1-3)

그리고 “에돔의 남쪽 경계선”은 “에시온 게벨”의 아카바 만까지였다.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 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왕상 9:26)

이처럼 이스라엘이 38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은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여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였다. 그 기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맹세하신 대로 1세대 중 20세 이상의 모든 군인은 죽임을 당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신 2:14-15)

▣주: 개역개정 한글판에서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고 번역하여 혼동을 주고 있다. 여기에서 38년의 기간은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해 광야 생활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다고 약속한 땅의 남쪽 경계선이 “사해 끝–다말-아그랍빔 언덕 남쪽–신 광야-가데스 바네아 남쪽 므리바 샘–하살아달–아스몬–애굽 시내-대해(大海)인 지중해”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고, “에돔의 경계가 신 광야(Wilderness of Zin)까지” 접근해 있었음을 다음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남쪽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쪽이요”(겔 47:19)
“갓 경계선 다음으로 남쪽 경계선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바 가데스 샘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겔 48:28)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 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민 34:3-5)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수 15:1)

▲가나안 정복 후 이스라엘의 경계를 나타낸 지도.

나아가 성경에서는 바위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페트라를 히브리어 셀라(Sela)로 표현했다. 유다 왕 아마샤(Amaziah: BC796~BC781)가 에돔과 전쟁을 하여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셀라(Sela)까지 차지했다는 기사에서 페트라(셀라)는 분명히 에돔의 영토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일부에서는 셀라(Sela/Selah)가 페트라(Petra)가 아닌 다른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라틴어 성경인 벌게이트 역본(Latin Vulgate Bible)에는 셀라(Sela)가 페트라(Petra)로 번역되어 있어 셀라가 페트라임을 확인해 준다(사 16:1, 42:11, 삿 1:36, 옵 1:3).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날까지 그러하니라”(왕하 14:7)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대하 25:11-12)
“pse percussit Edom in valle Salinarum decem milia et adprehendit Petram in proelio vocavitque nomen eius Iecethel usque in praesentem diem” (Vulgate 2 Kings 14:7) 

여기까지 가데스 바네아의 위치와 호르 산의 위치에 관련된 기록들을 성경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가데스 바네아와 호르 산의 위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이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①가데스 바네아는 바란 광야와 신 광야에 걸쳐 있고, 신 광야는 바란 광야의 오른쪽에 있다.
②신 광야는 네겝 광야와 인접해 있고, 에돔의 경계는 신 광야에 인접해 있다.
③에돔에 큰길(왕의 대로)이 있고, 그 길로 지나가면 에돔의 가운데를 통과한다.
④호르 산 정상에서 아론이 죽는 것을 회중이 바라보고, 그를 위해 30일간 애곡했다.
⑤호르 산은 가데스 바네아와 아랏 사이에 있고, 에돔의 경계에 있다.
⑥네겝 광야에는 아랏과 호르마가 있고, 가나안 지방에 위치해 있다.
⑦므리바의 물은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있다.
⑧호르 산에서 돌이켜 바란 광야의 홍해 길로 가면 에돔 땅을 우회한다.
⑨세일 산에서 돌이켜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을 지나서 광야 길로 들어가 북으로 나아간다.
⑩하나님께서 세일 산은 에서(에돔)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다투지 말라고 하셨다.
⑪이스라엘의 남쪽 경계가 사해 남쪽 끝에서 왼쪽으로 다말, 아그랍빔 언덕 남쪽,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샘, 그리고 에돔의 경계에 인접한다.
⑫에돔 자손은 세일 산지의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산악 지역에 살았다.
⑬에돔의 북동쪽 경계는 세렛 시내까지이고, 남쪽은 아카바 만까지였다.
⑭셀라는 페트라이고 세일 자손이 거주하는 에돔 땅에 속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요세푸스 측이 내세운 페트라 지역이 가데스 바네아이고, 자발 하룬이 호르 산이라는 주장을 가지고, 성경의 출애굽 사건에 연결시켜 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①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미디안 왕 레겜이 통치하는 바란 광야의 페트라(가데스 바네아)에 들어갔다. 
②바란 광야의 페트라(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냈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이 페트라(가데스 바네아)에서 미디안 및 아라비아인들과 약 38년간을 보냈다. 
③기나긴 광야생활이 끝나가는 40년 1월에 신 광야의 페트라(가데스 바네아)로 갔을 때 미리암이 그곳에서 죽었고,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하자 모세가 반석을 갈라 신 광야 므리바의 물(아인 무사)에서 백성들에게 물을 먹였다. 
④에돔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인 페트라(가데스 바네아)에서 큰길(왕의 대로)로 통과를 요청하는 사신을 에돔 왕에게 보냈다. 
⑤신 광야의 페트라(가데스 바네아)에서 자발 하룬(호르 산)으로 갔을 때, 40년 5월 1일에 아론이 그 산꼭대기로 올라가 죽었고, 그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30일간 애곡했다. 
⑥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땅 남방에 사는 아랏 왕이 이스라엘이 자신의 나라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 몇몇을 사로잡은 탓에, 이스라엘이 아랏 왕의 사람과 성읍들을 다 멸하고 그곳을 호르마라 했다.
⑦자발 하룬(호르 산)에 머물 때, 에돔 왕에게서 큰길로의 통과를 거절당해 우회해야 했으므로 마음이 상했고, 자발 하룬(호르 산)에서 돌이켜 바란 광야의 홍해 길로 들어갔다. 
⑧홍해 길에서 가까운 세일 산에 머물다가, 홍해의 아카바 만 북단에 있는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을 지나 광야 길로 북상했다.
⑨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 때, 모압 왕이 미디안의 12장로들과 점술사 발람을 포섭해 바알 브올 사건을 일으켜 이스라엘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미디안인들과 그 성읍들을 멸하고, 5명의 미디안 왕도 함께 죽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레겜 왕이었다.

그리하여 성경에서 찾아본 가데스 바네아와 호르 산의 위치에 대한 근거들과 요세푸스 측이 내세운 주장을 가지고 검토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페트라는 바란 광야와 신 광야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라바 광야를 서쪽에 끼고 있다. 그러므로 페트라는 바란 광야와 신 광야에 걸쳐 있는 가데스 바네아가 아니다.
②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이 페트라의 지리적 여건상 미디안인 및 아라비아인들과 같은 지역에서 약 38년간을 보낼 수가 없다. 그리고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낸 곳은 페트라가 아니라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이다.
③미리암이 죽은 곳은 페트라가 아니라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이고, 므리바의 물 사건이 일어난 곳도 페트라 인근의 와디 무사가 아니라 에돔의 변경에 있는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이다.
④에돔 왕에게 큰길(왕의 대로)로 통과를 요청하는 사신을 보낸 곳은 페트라가 아니고, 에돔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인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이다. 그리고 요세푸스 측의 주장대로라면 에돔의 중심도시인 페트라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들어가 있어, 에돔의 가운데로 통과 요청을 할 필요가 없다.
⑤아론이 죽은 호르 산은 에돔의 중심부가 아닌 에돔의 서쪽 경계에 있고, 가데스 바네아와 네겝 광야의 아랏 사이에 위치해 있다.
⑥아론이 꼭대기로 올라가 죽은 산은 자발 하룬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발 하룬(해발 1,440m)은 높아서 아론이 죽는 모습을 산 밑에 있는 온 회중이 바라볼 수가 없고, 산 밑은 가파르고 물이 없어 200만이 넘는 인구가 그를 위해 30일간 체류하며 애곡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⑦자발 하룬은 페트라에서 남서쪽이라, 아랏 왕이 거주하는 방향과 다르다. 따라서 가데스에서 호르 산으로 갈 때, 그로 하여금 놀라서 사건을 일으키게 할 필요가 전혀 없다.
⑧에돔 왕에게서 큰길(왕의 대로) 통과를 거절당해 우회하면, 자발 하룬에서는 바란 광야의 홍해 길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절당한 큰길(왕의 대로)로 들어가는 모순이 생긴다.
⑨자발 하룬에서 홍해의 아카바 만 북단에 있는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을 지나가려면 왕의 대로로 들어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또다시 그 길로 올라와야 한다.
⑩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세일 산을 에서(에돔)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다투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세일 산은 출애굽 당시 분명히 에돔의 영토였다. 그래서 에돔 땅은 여호수아의 정복전쟁 때에도 무사했고,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도 제외되었다.
⑪ 페트라는 성경의 셀라이고, 세일(에돔) 자손은 대대로 바위틈에 거주했다. 유다의 아마샤 왕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자손 만 명을 죽였고, 셀라(페트라)를 취했으며, 유다 자손이 에돔 자손 만 명을 사로잡아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 떨어뜨려 몸이 부셔져 죽게 했다.  
⑫미디안 왕 레겜이 아라비아 수령들의 우두머리로서 페트라를 건설하고 스스로가 미디안 왕이라고도 했다는데, 출애굽 당시에 페트라는 분명히 에돔의 영토에 속했고 그 중심 도시였다. 그리고 레겜 왕이 이스라엘에게 대적하기를 원했으면 모압 평지에까지 올라갈 필요 없이, 이스라엘이 페트라에 머물고 있을 때 충분히 그들을 도모할 수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왜 모압 평지 오른쪽의 미디안 성읍까지 올라가서 죽음을 자초했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검토해 본 바와 같이, 가데스 바네아가 페트라이고 호르 산이 자발 하룬이라는 요세푸스 측의 주장에 다소 문제가 있고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정보와 맞지가 않는 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요세푸스 측도 자신들의 주장에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왜 요세푸스 측은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을까?

요세푸스 측이 내세운 주장에 대한 배경을 찾기 위해서는 앞에서 논외시킨 가데스가 브에롯 브네야아간(신 10:6)이라고 기록된 성경구절에 한 번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브에롯(Beeroth)은 복수로 샘들이라는 뜻이 있고, 브네야아간(Bene-Jaakan)은 야아간의 아들들이라는 뜻이 있어, 브에롯 브네야아간은 야아간 자손의 샘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의 족보를 살펴보면 야아간은 에셀(Ezer)의 셋째 아들(대상 1:42)이고, 에셀은 세일(에서)의 여섯째 아들(대상 1:38)이다. 그러니까 야아간은 세일(에서=에돔)의 손자이다. 나아가 세일은 호리 족속이고, 세일의 아들들은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의 자손 중 호리 족속의 족장들(창 36:20-21)이다. 그러므로 호리(Horite)는 동굴에 거주하는 자(Cave Dweller)를 의미하니까, 의미상으로 브네야아간은 동굴에 거주하는 자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에돔 땅에서 가장 많은 동굴이 있는 페트라를 브네야아간이라고 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게 유추하다 보니까 페트라가 브네야아간이고, 브네야아간이 가데스이므로, 페트라가 가데스라는 주장이 나왔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다. 나아가 가데스 바네아를 페트라로 설정하다 보니, 가데스 바네아 다음에 진을 친 장소는 호르 산이므로, 페트라 인근에 있는 산을 하나 골라 호르 산이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요세푸스 측이 가데스 바네아가 페트라라고 한 주장은 인명과 지명의 의미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탓에 빚은 결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성경이 말해 주는 가데스 바네아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참작(參酌)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의 전체 내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페트라를 레겜과 연결시키기 위해 출애굽 당시 모세에 의해 죽임을 당한 미디안 왕 레겜을 끌어들인 것은, 어떤 자료나 물증도 없이 지나치게 논리를 비약시킨 결과로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계속>

저자: 강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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