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는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이 약속의 땅이 예표하는 바는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얻도록(빌 3:8) 축복하셨다. 우리가 얻어 누리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지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나안 땅의 풍성이며(신 8:6-10) 성도들은 그 귀하시고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얻어 누리도록 예정된 존재이다(골 1:12).

우리의 모든 환경을 통과하면서 고난과 역경이 유익이 되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선을 이룬다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됨을 말하며 그리스도를 더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는 문제는 다만 장래 천국에서 성도들이 얻을 기업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성도로서 얻는 기업이 있다. 이는 전쟁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믿음과 인내, 그리고 싸움이 필요한 것은 장차 오는 시대가 아니라 현 시대다. 성도들은 이 시대에 더욱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영적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대적은 우리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대적도 공격 대상이고 밖에 있는 대적도 공격 대상이다. 거기에 많은 견고한 성읍들이 존재한다. 고린도후서 10장의 많은 이론들(speculations)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은 다 파해져야 할 대적의 견고한 진들이다(4-5절).

이 시대에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기업의 땅을 얻기 위해 전쟁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신약의 바울같이 악하고 견고하게 사탄이 세워놓은 많은 진들을 파하여 그리스도께 돌리는 자들이다. 그 기업의 땅을 다만 개인적으로만 적용하는 것은 부족하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의 영적 전쟁과 그 기업의 땅을 얻는 문제를 개인이 얻고 체험하는 그리스도에 국한하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당시 여호수아가 그 땅을 취할 때 그것은 단체의 문제였다.

고린도 교회를 보라! 그들 가운데도 그 기업을 얻지 못하도록 좌절시키는 많은 요소들이 들어왔다. 그것은 많은 육체의 일들과 죄들과 혼란시키는 비(非)진리들이었다. 바울은 교회가 그러한 것들에 사로잡혀 실패할 위기에 처할 때 여호수아같이 기업의 땅을 취하도록 돕는 사역을 한 것이다(고전 6:9). 당시 골로새 교회 안에도 많은 가나안의 대적들이 들어와 성도들로 그 기업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철학과 문화와 율법주의와 천사 숭배 사상 등이었다. 요한 서신이 씌어질 당시에는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다 성도들이 응당 얻기로 된 기업을 찬탈하기 위해 사탄이 교회에 침투시키는 병기들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특별히 성도들이 얻을 기업의 분깃이 빛 가운데서 얻는 것이라고 했다. 교회에 교묘하게 들어온 율법주의와 금욕주의 등은 어둠의 요소들이다. 철학과 영지주의도 어둠이다. 교회가 어두울 때 이런 것에 미혹되고 그 가운데 떨어져버린다. 그 결과는 기업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여호수아와 신약의 사도들과 같은 빛의 사자들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들은 일어나서 성도들이 잃어버릴 위기에 있는 약속의 기업을 얻도록 가르치며 격려하며 인도한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런 영적 전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한 바 되고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앉힌 바 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 이것이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이다. 그 이후에라야 그들은 가나안 전투에 돌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거듭거듭 길갈로 돌아가야 했는데, 그 길갈은 전쟁을 위한 휴식과 재충전의 장소였다.

그곳은 요단강 바닥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세운 곳으로서 신약으로 말하면 로마서 6장 11절의 위치와 같다. 또한 에베소서 2장 6절의 위치이기도 하다. 믿는 이들이 견고하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위치에 서 있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길이 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이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기업을 얻는 길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갖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요점을 정리해보겠다.

2. 여호수아서는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는 문제를 다룬다. 이 일의 인도자는 여호수아이다. 여호수아는 이 일을 위해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하여 모든 율법과 규례를 지켜 행하라는 명령을 받으며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권면을 받는다.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문제는 다만 물질적인 가나안 땅을 얻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 약속된 유업의 땅에 들어왔을지라도 그곳을 영구한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장막에 거하며 장차 올 것을 바랐다고 기록한 데에서도 알 수 있다(8-10절).

그러면 이 땅을 신약에서 실제로 무엇에 적용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리스도이다. 그분 자신이 약속의 땅이시고 우리는 구원받을 때 그분을 풍성히 얻도록 정해졌다(요 10:10下). 시편에서도 ‘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요 내 잔의 소득’이라고 했다. 바울은 이 그리스도 한 분을 더 알고 더 얻기 원했다(빌 3:7-8).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땅이며 신약에서 그리스도 외에는 그 무엇도 그 땅으로 예표될 만한 것이 없으며 신자들이 얻어야 할 그런 위대한 목표도 없다.

3.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얻는다고 말할 때 그것이 매우 참되고 올바른 해석이라 할지라도 추상적이게 된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얻는가? 어떻게 더 풍성히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각주를 신약에서 보아야 한다. 신약의 몇 구절을 보기로 하겠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 5:5)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7-21)

이상의 구절들에서 우리는 신약의 저자들이 약속의 기업을 얻는 문제를 다룬 것을 볼 수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신약의 우리가 만일 어둠 가운데 행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며 죄악 속에 자신을 둘 때 결코 그 나라의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 기업은 결국 빛과 생명과 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