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그 누구도 인간이 갖고 있는 욕심의 끝을 예단할 수 없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은 마치 파열된 브레이크와 같다. 통제된 적당한 욕심은 인생을 발전시키고 도약시킨다. 그러나 욕심을 통제하는 게 무진장 어렵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니까. 

브레이크가 파열된 탐욕이라는 열차는 끝없이 질주하다, 결국 죽음이라는 정류장에서야 멈춘다. 문제는 그렇게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잃어버리는 게 너무 많다는 게다.

최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외제 승용차를 비롯한 차량 4대를 굴리고 고급 아파트에서 호화롭게 사는 30대 중반의 남성이 있다. 그는 4개의 PC방을 운영했다. 전략적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입대를 앞둔 청소년들을 많이 고용했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 22명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여 5,400여만 원의 돈을 착취했다.

근무 초기에는 수습 기간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시급마저 지급하지 않았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연차수당 등도 지급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무단결근하거나 지각할 경우 임금을 삭감한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피해를 당한 학생들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부 학생은 임금체불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공과금까지 못 낸 경우도 있었다.

약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두둑이 채워 배를 불리며 만족을 누리려 하는 인간의 욕심의 끝은 과연 어디인지.

그래서 성경은 경고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되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렇기에 돈의 노예로 추락시키는 욕심을 제어하고 스스로 족하게 여기며 살라고 촉구한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 13:5)."

욕심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욕심의 분량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욕심이 방향만 잘 잡으면 욕심 덕에 오히려 삶에 의욕이 생기고 더 나은 인생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갈 수 있다.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세속적인 욕심을 절제하며 살아간다. 욕망의 노예로 사로잡혀 세상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

다른 한편으로 거룩한 욕심을 계발하며 살아간다. 영적인 사람은 거룩한 욕심을 더 갈망한다. 날이 갈수록 더 기도하고 싶어하고, 말씀을 더 갈망한다. 더 사랑하고 싶어하고, 더 헌신하고 싶어한다. 날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통치권 아래 살아가려는 깊은 갈망이 일어난다. 경건서적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이루고 싶어하고, 거룩한 습관을 길들이고 싶어한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 영적인 유익을 얻기를 원한다.

우리가 좇아야 할 거룩한 욕심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 예수님을 알고 싶어서, 그동안 자신을 유익하게 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간주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살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분이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65일 생각해도 부족하다. 올해는 24시간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고 싶다. 눈을 그리스도에게 고정시켜 두고 싶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겠지. 내 성질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통제된 인생.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생. 내 삶의 비전을 따라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삶의 모델을 따르는 인생. 그렇게 하다 보면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2014년 3월 14일, 왕십리 방향으로 향하는 분당선 지하철 안에서였다. 한 취객이 구토를 했다. 그때 한 청년이 맨손으로 취객의 토사물을 쓸어 담았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눈살을 찌푸리며 뒷걸음치던 승객들은, 그 자리에 멈춰 청년의 모습을 지켜봤다. 청년의 옷엔 취객이 쏟아낸 토사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잠시 후, 20대 여성이 휴지를 들고 다가왔다. 이어 승객 5-6명이 더 모여 함께 토사물을 치웠다. 잠시 뒤 술에서 깬 취객이 청년에게 이름을 묻었다. 그러자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냥 '예수 믿는 청년'이에요."

대단하게 크게 떠벌리지는 않지만, 있는 곳에서, 조용히, 매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크나큰 프로젝트를 갖고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지는 않아도,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 안 나게 작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 그러기 위해 마음의 그릇에 예수님의 마음을 가득 담고 싶다. 

심히 부패한 인간의 마음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드러나길 소망한다. 아픔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애간장이 타던 예수님의 마음.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