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크리스천투데이 DB
지난 2월 93세의 네덜란드 드리스 판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동시에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보도돼 한국사회에도 안락사 문제가 조명된 바 있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은 “인위적인 삶의 연장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존엄사가 아니”라며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이 생을 주관하겠다는 안락사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샬롬나비는 27일 논평에서 “2년 전, 한국인 호주 교민이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일이 한 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에 소개되었었다. 그때 받은 생소하고 충격적인 느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2024년 2월 네덜란드 93세의 드리스 판아흐트 전총리 부부가 동시에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저명 인사였고 가톨릭 신자였던 동갑내기 부부의 동반 안락사는 유럽에서도 아직 생소한 죽음 문제로서 조명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를 통해서 ‘살 권리’와 ‘죽을 권리’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막 열리기 시작했고, 국민 76%가 안락사 혹은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찬성한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죽을 권리’, ‘자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내가 생명을 조종하겠다는 안락사, 또는 조력사라는 죽음의 형태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안락사 논쟁은 이제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인간의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라고 했다.

이들은 “예전과 달리 100세까지 생명이 연장되어 살아갈 환경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 자체보다도 죽어가는 과정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실정”이라며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질병과 질병이 심화될 때 나타나는 고통에 대해서 우려하게 된다. 자신의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을 인위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좋은 죽음’이 아닐까 생각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로 “안락사는 회복의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사망케 하는 의료 행위로서 의사 조력 자살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존엄사는 기계장치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존엄사는 인간 생명의 인위적인 연장을 거부하는 것이지만, 안락사는 자신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므로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네덜란드는 2002년부터 ‘희망이 없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개인을 위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지난해 7월에는 ‘완성된 삶을 위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이 법안이 위험한 것은 무방비 상태의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쉽게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법제화 단계로 치닫고 있는 안락사 문제는 안락사를 미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죽음 이전에 ‘평소 경험하는 고통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심리학적 차원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며 “고통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의 딜레마는 파괴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창조적인 태도로 반응할 것인가이다. 고통에 대해 파괴적 아니면 창조적 반응의 딜레마 속에 하나님의 편에 서야 승리한다”고 했다.

또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는 2019년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이 되지 않은 채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뇌졸중은 구음장애로 인해 말하기와 보행장애로 인한 몸의 활동이 위축되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없는 불편한 질병”이라며 “심리학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이다. 이러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은 당사자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걸 방해하고, 쉬운 죽음인 안락사로 이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소에 우리는 신앙 안에서 신체와 정신, 마음 단련을 하여 건강한 웰빙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웰빙이 뒷받침될 때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이 있는 웰다잉(welldying)이 가능한 것”이라며 “안락사를 선택한 판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와 호주 교민이 남긴 문제는 바로 이처럼 자신들의 삶에 희망이 없다는 점과 고통을 견딜 만한 영적인 힘을 얻지 못하였다는 점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력사한 호주 교민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배우자를 포함, 남겨진 사람들이 겪을 상실감, 거절감 등을 고려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은 채,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면”이라며 “안락사는 일차적으로 근대사회 이후 신앙심이 없는 가치관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인식적 변화이다. 모든 치유는 긍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생각, 치유와 성장 둘 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을 기다리는 신앙적인 태도를 잊어버린 것이 오늘날 현대인이 당면한 죽음의 문제”라고 했다.

아울러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만날 때에 그것을 도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일 수 있다. 생의 마지막의 고통이 아니라 언제라도 자기가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고통을 만나면 안락사를 선택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라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존엄한 것이기에, 인간 편에서 생을 지배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우리에게 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논평 전문.

안락사는 자신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므로 인위적인 삶의 연장을 거부하는 존엄사가 아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이 생을 주관하겠다는 안락사는 금지되어야 한다.

  2년 전, 한국인 호주 교민이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일이 한 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에 소개되었었다. 그때 받은 생소하고, 충격적인 느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2024년 2월 네덜란드 93세의 드리스 판아흐트 전총리 부부가 동시에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저명인사였고, 가톨릭 신자였던 동갑내기 부부의 동반 안락사는 유럽에서도 아직 생소한 죽음 문제로서 조명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를 통해서 ‘살 권리’와 ‘죽을 권리’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막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 76%가 안락사 혹은 의사조력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 입법화에 찬성한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안락사 논쟁은 이제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인간의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평생 살아오던 정든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삶을 마감하였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병원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더 나아가 ‘죽을 권리’, ‘자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내가 생명을 조정하겠다는 안락사, 또는 조력사라는 죽음의 형태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죽음은 나의 삶의 일부로서 도피가 아닌 ‘좋은 죽음’에 대한 권리로서 안락사를 주장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1. 좋은 죽음,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삶의 질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질과 인간다움의 질이 향상되었는가에 대해선 의문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전과 달리 100세까지 생명이 연장되어 살아갈 환경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 자체보다도 죽어가는 과정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질병과 질병이 심화될 때 나타나는 고통에 대해서 우려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을 인위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좋은 죽음’이 아닐까 생각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안락사는 회복의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사망케 하는 의료 행위로서 의사 조력 자살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존엄사는 기계장치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둘을 혼돈하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의 사례에 등장하는 안락사 주인공과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의 죽음은 의사의 조력에 의한 안락사이다. 즉 의사 조력 자살이다. 우리나라도 2022년 6월, 연명의료결정법의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의술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지양하고, 자연스런 죽음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안락사와 구별되는 존엄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안락사와 존엄사를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존엄사는 인간 생명의 인위적인 연장을 거부하는 것이지만, 안락사는 자신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므로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2. 법제화 단계로 치닫고 있는 안락사 문제는 안락사를 미화시킬 수 있다.
안락사를 논의할 때 윤리적 규범을 고수하며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외면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있을 수 있다. 또한 경직된 윤리적 도그마가 죽어가는 이들에게 비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자율적인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세계적으로 어느새 법제화로 치닫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부터 ‘희망이 없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개인을 위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지난해 7월에는 ‘완성된 삶을 위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이 법안이 위험한 것은 무방비 상태의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쉽게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교회는 영국 내 안락사 합법화 압력에 저항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이 향후 4년 안에 바뀔 것을 예상하는 전망이 있다. 최근 뉴스에는 프랑스의 마크롱 총리가 ‘조력 사망’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소개되었다. ‘조력 사망’은 조력 자살과 같은 의미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윤리적 관점이나 법적인 입장에서 ‘죽을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생명을 끝내는 자율성은 용인하지 않는 입장 속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런 국제적인 파고의 영향력에서 예외일 수 있을까?

3. 고통에 대해 파괴적 아니면 창조적 반응의 딜레마 속에 하나님의 편에 서야 승리한다.
죽을 권리와 자율성의 문제 이전에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가 있다. 우리는 죽음 이전에 평소 경험하는 고통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심리학적 차원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심리학과 기독교의 통합에 힘썼던 ‘인격 의학’의 선구자인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가 언급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창조적인 태도는 ‘수용’이다. ‘수용’이라는 의미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고, 고통이라는 악과 투쟁하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의 딜레마는 파괴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창조적인 태도로 반응할 것인가이다. 그는 고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하나님 편에 설 때이며, 이로써 고난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고난은 물론 육신과 정신의 고통을 포함한다.

4. 우울증은 하나님 편에 서는 걸 방해하고, 쉬운 죽음인 안락사로 이끈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는 2019년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이 되지 않은 채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뇌졸중은 구음장애로 인해 말하기와 보행장애로 인한 몸의 활동이 위축되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없는 불편한 질병이다. 이런 육체적 고통에 따른 심리적 고통이 그들에게 무기력증을 가져왔을 것이다. 동갑인 아내 역시 고령으로 남편의 문제를 감당하기에 힘들었을 것이고, 두 사람이 다 우울증을 겪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인위적인 죽음을 선택하고, 그들이 당면한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심리학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이다. 이러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은 당사자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걸 방해하고, 쉬운 죽음인 안락사로 이끈다.

5. 웰다잉은 평소의 신앙 안에서 건강한 웰빙을 바탕으로 가능하다.
그들은 가톨릭 신자였지만 우울증으로 인해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에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고통’이라는 ‘악’과의 투쟁에서 져서 고통에 파괴적으로 반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울증은 이처럼 모든 좋은 것을 삼켜버린다. 평소에 우리는 신앙 안에서 신체와 정신, 마음 단련을 하여 건강한 웰빙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웰빙이 뒷받침될 때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이 있는 웰다잉(welldying)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루기 힘든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떤 태도로 임하여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폴 투르니에는 고통 안에는 고통의 크기만큼 고통을 이겨낼 에너지도 들어있다고 말한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칼 융(Carl G. Jung) 역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일컬어지는 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나면서 창조성이 함께 잉태된다고 말한다.
신앙인이라도 늘 깨어있지 못하거나 찾아온 우울증을 방치하게 되면, 고통을 극복할 에너지와 창조성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고통이 심하면 고통을 빨리 끊어내고 안식하고자 하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안락사를 선택한 판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와 호주 교민이 남긴 문제는 바로 이처럼 자신들의 삶에 희망이 없다는 점과 고통을 견딜 만한 영적인 힘을 얻지 못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6. 안락사의 부정적인 측면은 이기주의, 고통 도피, 인간 존엄성 상실이다.
조력사한 호주 교민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배우자를 포함, 남겨진 사람들이 겪을 상실감, 거절감 등을 고려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은 채,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면이다. 안락사는 일차적으로 근대사회 이후 신앙심이 없는 가치관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인식적 변화이다. 모든 치유는 긍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생각, 치유와 성장 둘 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을 기다리는 신앙적인 태도를 잊어버린 것이 오늘날 현대인이 당면한 죽음의 문제다. 프랑스에서는 “안락사가 마치 존엄한 삶을 위한 선택인 것처럼 미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저항”이 있으며, “고통스럽더라도 지속적인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안락사와 조력 자살이 마치 ‘현대판 고려장’처럼 악용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또한 네덜란드의 안락사 옹호론자인 버트 키이저 박사도 “안락사는 건강하고 병약한 이들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문을 여는 것”이라고 반성하였다. 또한 유엔인권위원회의 마졸리 사무관은 “안락사를 중단하고, 삶의 끝자락에 놓인 이들을 위한 고통 완화 치료를 개선하는데 자원을 사용해야” 하고, “모든 이들의 고유한 생명권을 보호하고, 모든 이들의 존엄과 생명을 보호해 줄 것을 국가들에게 요구”하였다. 이런 자세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나타내주는 성서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7. 안락사가 가지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자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만날 때에 그것을 도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일 수 있다. 그 도피의 방법이 고통을 완화시키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재는 의학 발달로 자신의 삶 자체를 마감하는 안락사를 선택하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마지막에서 만나는 고통에서도 주인이심을 깨닫고 고통의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찾아야 하겠다. 고통을 피하고 싶어 안락사를 선택하게 된다면, 인간들은 생의 마지막의 고통이 아니라 언제라도 자기가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고통을 만나면 안락사를 선택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존엄한 것이기에, 인간 편에서 생을 지배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우리에게 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2024년 5월 27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