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만에 완공된 헤롯 성전, 7년 만에 무너져
성전 건축 1만 8천 노동자, 완공 후 직업 잃어
완공 후 ‘메시아’ 기대감에 폭동, 진압돼 멸망

통곡의 벽 헤롯 성전 예루살렘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모습을 그린 그림.

6. 헤롯 성전의 최후

헤롯 성전이 최종적으로 완공된 것은 A.D. 63년이었습니다. B.C. 20년부터 A.D. 63년 완공될 때까지 모두 82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완공된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고, 오히려 후유증이 훨씬 더 컸습니다. 이 성전이 완성되고 나서 불과 7년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2천여 년 동안 나라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1) 일자리의 상실

82년간 진행된 성전 건축은 비록 많은 세금이 들어가는 대공사였지만, 동시에 많은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약 1만 8천 명의 노동자가 성전 건축에 종사했는데, 이는 마치 1920년대 미국 대공황 때 뉴딜 정책으로 불황을 극복한 것처럼 열악한 경제 환경에 처해 있던 가난한 유대인들에게 고마운 일자리를 제공해 줬습니다.

그러나 A.D. 63년 성전이 완성되자 안정된 일자리는 사라져 버렸고, 일자리를 잃어버린 수많은 유대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구걸은 물론 도둑질이나 강도질까지 서슴지 않게 됐습니다.

나아가 무리를 지어 상인들이나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큰 사회 불안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런 혼란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배경이 됐습니다.

2)유대인에 대한 박해

유대인들은 독특한 종교 관습으로 인해 로마 제국 내 거의 모든 민족으로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을 ‘무신론자’라고 주장했는데, 유대인들은 오직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체적 분위기는 각 민족들이 자신들의 신은 물론 다른 민족들의 신도 인정하고, 각종 종교 행사에도 함께 참석해 축하하고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의 종교 행사에만 참석하고 일체의 다른 종교 행사에는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유대인들을 ‘많은 신들을 부정하고 오직 한 신만 인정하는 무신론자’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런 인식이 지중해 지역에 퍼지자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게 됐습니다.

또 로마 황제 네로는 낙후된 로마 도시 재건을 위해 방화 사건을 일으킵니다. 집을 잃은 로마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하자, 네로는 당시 화재 피해를 보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음모라며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황제의 후궁이던 유대 여인의 계략으로, 유대인들 대신 기독교인들이 박해의 제물이 됐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 대한 미움은 계속됐으며,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 사이의 관계는 점점 악화됐습니다.

헤롯 성전 예루살렘 이스라엘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모습 추정 그림.
3)메시아 사상의 확산

B.C. 63년 로마 제국에 의해 하스모니아 왕국이 무너지자, 이스라엘에서는 메시아 사상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국가였던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출현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칭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고(행 21:38), 많은 유대인들이 적극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반로마 정서 속에서 성전의 완성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곧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층 키웠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자그마치 82년이나 걸린 성전 완성에 하나님의 뜻이 포함돼 있다고 믿었으며, 이는 곧 메시아 출현이라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4) 전쟁의 진행

이처럼 로마 제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또 메시아에 대한 소문이 점점 퍼져 나가면서, 유대인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유월절이었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A.D. 66년 유대-로마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있었던 유월절에는 전세계에서 26만 명이라는 엄청난 유대인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 숫자를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이 단순히 순례만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점점 커져가는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것은 분명합니다.

마침내 유월절 순례는 거대한 폭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고, 이 폭동은 곧 이어 제1차 유대-로마 전쟁(A.D. 66-70)의 도화선으로 작용합니다.

유월절 시위를 로마 제국이 강경하게 진압하자 이는 폭동으로 진화했고, 폭도들은 예루살렘에 있던 로마 수비대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들은 곧 유대 전역에 있던 외국 군대까지 몰아내면서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티토 개선문
▲티토 개선문에 새겨진 예루살렘 성전 기물 약탈 모습 부조.
이에 네로는 이 폭동을 로마 제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장군과 그의 아들 티토(Titus)를 보내 무력으로 진압하게 했습니다.

우발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처음부터 유대인들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박해로 인한 군중들의 흥분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통일된 지휘부가 없는 상태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이 시작되자 열심당원이나 에세네파 등 여러 계파들이 서로 주도권을 주장하며 전쟁에 임한 결과 결코 잘 훈련된 로마 군인들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5) 전쟁의 결과

약자에게 전쟁은 끔찍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준비 없이 전쟁을 시작한 유대인들의 참상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성전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두 번째로 불타고, 큰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솔로몬 성전이 소실된 후 이스라엘에서 유대 왕가의 전통이 끊어졌다면, 헤롯 성전이 소실된 후 유대인들은 2천 년 가까이 나라 없이 떠도는 민족이 됩니다.

헤롯 성전이 무너짐에 따라 유대인들의 종교 형태도 크게 변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제사장들이 중심을 이루던 사두개파가 역사에서 사라지고, 구전 율법(예수님은 이를 ‘장로들의 전통’이라 표현함)을 강조하는 바리새파가 이스라엘 종교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성전은 불에 타 없어지고 제사장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성전 중심의 기존 제사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율법 해석과 기도에 초점을 맞추는 바리새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가 지금까지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 형태가 되고 있습니다.

헤롯 성전 예루살렘 이스라엘 바위 돔 이슬람 무슬림 유적
▲성전터 위에 세워진 바위 돔. ⓒ픽사베이
7. 바위 돔(Dome of Rock)

현재 예루살렘 성전 터 위에 자리잡고 있는 황금색 건물은 유대 성전이 아니라 이슬람의 ‘바위 돔(Dome of Rock)’입니다.

지름 18m의 원통형 구조물로 되어있는 이 돔은 ‘바위 돔 사원’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원이 아니고 일종의 기념물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인 이 돔이 있는 알 악사 사원 지역은 메카, 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 3대 성지로 불립니다.

A.D. 70년 헤롯 성전이 무너진 후 로마 제국과 기독교는 이곳에 이방 신전을 짓거나 이곳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유대교 성전의 파괴를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A.D. 691년 이슬람 칼리프 말리크에 의해 아브라함이 이삭(이슬람에서는 이스마엘)을 바친 자리 위에 바위 돔이 지어졌습니다.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진 이 돔의 기능과 목적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슬람이 유대교와 기독교보다 우월함을 보여주기 위해 보석 같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건물인 성묘 교회와 경쟁하기 위해 웅장한 규모와 호화로운 장식을 가진 건축물로 지은 것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황금 돔’이라고도 불리는 이 돔 지붕은 원래 검은 색깔을 입힌 납으로 만들어졌는데, 성묘 교회의 지붕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이에 지붕을 구리로 만들었고, 분명히 성묘 교회 지붕보다 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황금색을 띈 구리 지붕이 효과를 보자, 아예 1993년 650만 달러에 상당하는 순금 80kg으로 지붕을 덮어 진짜 ‘황금 돔’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기적으로 단장할 필요 없이 늘 황금색으로 빛을 발하는 이 돔은 현재 예루살렘 구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됐습니다.

이곳이 무슬림 성지가 된 것은 무함마드가 알라의 마지막 계시를 받기 위해 천국으로 갈 때, 메카에서 말을 타고 이곳에 와서 여기에 있는 바위(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던 바위 즉 솔로몬 성전 터)를 밟고 하늘로 올라 갔다는 전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후에 ‘무함마드의 40일간의 밤 여행’으로 각색되고, 다시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많은 무슬림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왔습니다.

성전 있던 곳, 현재 황금 돔 있는 이슬람 성지
유대 종교지도자나 정치인 방문 시 매우 민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 3차대전 우려

제3성전 예루살렘 이스라엘
▲예루살렘 제3성전 모형도.
8. 제3성전의 추진

바위 돔이 위치한 성전 산은 현재 그 지역을 통제하고 있는 무슬림은 물론, 유대인과 일부 기독교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성지입니다.

이곳은 한 때 유대교 성전이 있던 장소로 유대교에서 가장 거룩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일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제3성전’, 즉 이스라엘 마지막 성전이 건설될 것이라고 믿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1) 성전 건립 의지

특히 현재 바위 돔을 부수고 그 위에 제3성전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한 그룹은 극단적 유대인 그룹인 하레디(Haredi)들입니다.

폐쇄적이며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 터만이 율법에 맞게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나아가 이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으니, 성전도 복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성전 산에 얽혀 있는 복잡한 정치 역학 관계를 해결한 후 새 성전을 지을 것이라 믿고 있지만, 이들 강경파는 제3성전을 완공해야 메시아가 올 것이라며 이미 성전 건축 준비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현재 공공연한 비밀이 돼 있지만 분향단, 떡상, 등대 등 성전에서 쓰일 기물들이 성경의 고증을 거쳐 모두 만들어져 있고, 성전에서 제사를 진행할 제사장 양성 학교도 운영 중입니다.

2) 법궤 추적

이와 더불어 B.C. 586년 이후 그 행방이 묘연한 법궤를 찾으려는 노력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이나 헤롯 성전에서는 법궤가 없이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현재 법궤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로 몇 곳이 거론되고 있는데, 성전 산 지하 동굴, 느보산, 에티오피아, 바벨론 등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 곳은 바로 성전 산 지하 동굴입니다. 전쟁 중 크기가 적지 않은 법궤를 적군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외부로 옮기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보다 미로처럼 복잡한 성전 산 지하 동굴 어느 곳에 밀봉돼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이 높은 곳은 느보산입니다. 외경(가톨릭에서는 ‘제2경전’)인 마카비2서 2장 5절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법궤를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보려고 올라갔던 산”, 즉 느보산에 감춰뒀다고 기록했습니다. 현재 이 지역에 대한 많은 탐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됐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3성전 예루살렘 이스라엘
▲제3 성전을 위해 실제 크기로 제작된 순금 등대.
3) 첨예한 대립

제3성전이 솔로몬 성전 터 위에 건축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전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즉 이곳에는 이미 1,300년 넘는 동안 이슬람 성지 역할을 해온 ‘바위 돔’과 ‘알 악사 사원’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없애지 않으면 그 위에 성전을 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제3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곧 이슬람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입니다.

1967년 있었던 6일 전쟁(제3차 중동 전쟁) 때도 성전산을 폭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①이슬람 국가 자극 ②성전 지하 발굴 기회 무산 등이었습니다.

또 이곳을 점령한 유대 군인들도 성전 산에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성소에는 오직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다는 율법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전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성전산만큼은 팔레스타인 당국에게 자치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경합하는 장소이다 보니 무슬림들은 성전 산에 대한 음모, 특히 유대 종교지도자나 정치인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이곳을 허물고 제3성전을 건축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특히 2,000년 이스라엘 샤론 총리가 이곳에 방문했을 때는 5년 여에 걸친 엄청난 반발(제2차 봉기, Second Intifada)이 뒤를 이었습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이 방문은 전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이 지역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곳이 됐습니다.

성전 건재하면 평화와 부흥, 무너지면 고난이
영원불변 아냐, 실체 가리키는 그림자 불과해
참 성전 되신 예수님 부활체만 영원히 함께해

통곡의 벽 헤롯 성전 예루살렘 이스라엘
▲오늘날 예루살렘 통곡의 벽 모습. ⓒ픽사베이
9. 마치는 말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전이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과 함께 영욕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성전이 건재하면 이스라엘도 평화와 부흥을 즐겼고 반대로 성전이 무너지면 이스라엘에게 견디기 힘든 고난의 시간이 왔습니다. 헤롯 성전이 무너진 지 2,0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성전은 아직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성전의 존재가 영원불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헤롯 성전이 사라진 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부 유대인들은 다시 제3성전을 꿈꾸지만, 설혹 그 성전이 지어진다 해도 결코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 위의 것들은 다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전은 영원불변의 실체를 가리키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참된 성전이라면 영원불변이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 하시면서, 헤롯 성전보다 상위에 두고 있습니다(요 2:21-22).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처럼 헤롯 성전도 곧 없어질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3일 동안 일으키실 성전은 부활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부활체는 기존의 그림자 성전과 달리 다시는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성전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진 솔로몬 성전이나 헤롯 성전은 그 존재가 유한했지만, 참 성전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체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체를 보여주신 것은, 제자들의 증거를 믿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영원한 부활체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입니다.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는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오역이 나오고 성경의 내용에 공감하는 정도가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