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12) 스승의 날에
어느 날
삶의 모든 경우에,
살아가는 모든 날에
나는 항상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묻기로 결심한 날부터
모든 것은
나에게 스승이 되었다
선교를 결정하고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던 나에게 어머니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식이 있지.
가까이 있는 착한 자식과 멀리 있지만 자랑스러운 자식이 있지.
너는 자랑스런 자식이야.’
그때부터 나는 얼떨결에 자랑스런 자식이 되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월급 대신 성미를 주던 가난한 시절
시골 교회 사모님이 말했다. ‘난 가난이 싫어.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살아야지 뭐.’
가난한 사모님은 나에게 가난이 우리에게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제자됨의 한 표지임을 가르쳤다.
그때 가졌던 가난한 목회자의 꿈은 내가 어디를 가든지 따라 다녔다.
아직은 어린 중학생 시절
우연히 나간 새벽기도에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정장을 하고 제단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은명기 목사님을 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은 그가 삼선개헌 반대운동으로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투옥되던 날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행동과 존재, 행동하는 양심과 기도하는 묵상, 그리고
선구자의 외침과 수도자의 기도가
우리의 신앙안에 항상 같이 있어야 함을 배웠다.
신학교 3학년때 만난 이중표 목사님,
나는 그에게서 교회의 존재과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민족과 영혼에 대한 연민,
그리스도에 대한 지고 지순한 사랑,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눈물을 배웠다.
그가 아직은 더 살아야 할 나이에 ’할렐루야‘ 하며 홀연히 세상을 떠났을 때
아직도 미련이 남은 내 목회를 떠나는 것과
아프리카에서 작은 섬김으로 남은 생을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신 희생에 비해 지극히 작은 것임을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배웠다.
신자들은 삶으로 나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늘 말만 하고 그렇게 살지 못한 나에게
신자들의 말없는 실천과 치열한 삶은 매번 나를 부끄럽게 했다.
신자들은 다만 설교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없는 침묵과 삶으로 설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뒤부터
나는 차라리 내 설교를 내려놓고, 그들의 삶에서 우러러 나오는 진정한 설교를 듣고 싶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감사는
교회마다 하나님이 내 목회의 스승들을 많이 예비해 놓으신 것이다.
자연은 침묵의 소리로 말하는 스승
나는 가끔 내가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때 하늘의 별을 보고
가끔 내가 너무 외롭다고 느낄 때 들에 핀 작은 꽃을 본다.
자연은 소리없는 아우성, 장엄한 서서시, 위대한 웅변
나는 매일 걷기를 통해
매번 만나는 나무와 사람과 들풀을 통해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을 통해
작은 소리로 크게 말하는 스승의 소리를 듣는다.
자녀는 나에게 고마운 스승
나는 그들이 어릴 때 부모였고
그들이 자랄 때 코치였고 그들이 장성한 후에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나의 스승이었다.
그들의 고통을 통해 나는 내 젊은 날의 고통을 기억하고
그들의 슬픔을 통해 내 부모도 나를 위해 얼마나 술퍼하셨는지
그들의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보면서
하나님도 나를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도 그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고
내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세상의 다른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한 가지 기도가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어떤 경우에도, 삶의 모든 순간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보다 슬픈 일이냐 기쁜 일이냐 보다,
내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를 먼저 묻는 것과
그때마다 배운 것을 작게 나마 실천하는 것
그리고 일생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나에게서 끊이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 기도가
나와 같이 기도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이루어지기를.
2024년 5월, 스승의 날에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