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큰 기쁨의 좋은 선물
본문: 누가복음 2:10-14

분당우리교회 성탄절 2020년
▲이찬수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유튜브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최근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접종이 시작된 것을 뉴스를 통해 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이 백신을 구하려고 정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기에 큰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세계 각국이 백신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고 안 해본 게 있습니까? 거리두기를 하면서 식당도 학교도 문을 닫아보고 수능 시험을 연기해 보고 다들 얼마나 지금도 애를 쓰고 있습니까? 집에서 나가지 말아달라고 광고를 하지만, 하나도 좋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점점 확산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만 해도 깜짝 놀랐던 것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얼마나 확산되는지, 하루 2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가 감염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 지금까지 발병된 코로나 확진자 수가 7,800만명이 넘는다는 겁니다.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캠페인을 하고 노력해도 우리 노력으로는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백신을 개발하고 접종하는 일에 모든 나라들이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뻐하며 예배드리는 성탄절 예배를 준비하다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인간적인 몸부림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백신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범죄해서 죄로 오염된 인간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원수가 된 인간의 상태,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 품을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며 길을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가 가치관의 갈등과 혼란이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가정일수록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이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혼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느 지도자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영적 백신,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백신과 치료제 되어주셔서 이 땅에 오신 날, 이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여기 ‘구주’는 헬라어로 ‘소테르’라는 단어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소테르’는 병, 전쟁, 사고, 세속의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존재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당시로 말하면 로마 황제를 가리킬 때도 사용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던 ‘소테르’라는 단어를, 천사들이 이 땅에 오실 아기 예수님의 존재의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죄와 심판의 위험에서 건져 주시는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당시 통용되던 ‘소테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탄절의 의미를 말씀드렸듯 스스로는 죄에 오염된 상태를 죄에 감염된 상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친히 백신과 치료제 되어 주셔서 이 땅에 오신 날이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란 우리 노력 없이 얻게 된 것입니다. 백신 치료제를 우리가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연구했습니까? 누군가 이 짧은 기간 안에 백신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거기에 희망을 두는 것 아닙니까?

죄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원수가 된 문제, 아버지를 떠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너희들의 백신이 되어줄께. 이 날을 선물처럼 기뻐하고 감사하고 감격하며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매 성탄절마다 3가지를 다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머릿속에 담기도록, 단어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수용

미국에서 지금 백신이 개발되어 모든 나라들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정작 미국인들 중에는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답니다. 40% 정도가 백신을 못 믿겠다고 합니다. 놀랐습니다.

왜 이렇게 백신을 거부할까요? 코로나19는 자연적으로 치유하는 병이라는 말이 퍼져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코로나19를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백신을 맞으면 몸에 칩이 박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주사를 거부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친히 오셔서 백신과 치료제가 되어 주신들, 우리가 거부하고 거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용’을 제시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 헤롯을 살펴봤습니다. 로마 제국 전체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알량한 분봉왕 자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지 못한 어리석은 짓을 벌였습니다.

우리도 점검해 봐야 합니다. 교회 오래 다녔어도 진짜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과 영혼의 병듦을 해결해 주시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정말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적 백신, 영적 치료자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수용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근원적 문제가 치료되고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수용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많은 의미가 있지만, 본문 속에서 한 가지만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 ‘주’는 헬라어로 ‘큐리오스’입니다. 큐리오스는 글자 그대로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수용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자기 삶을 온전히 맡기는 것처럼, 이 땅에 오신 백신과 치료제,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신 그 분을 수용한다는 것은 헤롯 왕처럼 내가 영위하는 인생 길이 아니라, 예수님께 내 인생을 그냥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통치자로 삼는 것, 주권자로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수용이라는 단어를 묵상할 때, 내 삶의 통치자와 주권자로 인정해 드리는가? 아니면 헤롯처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가? 이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2. 누림

선물을 받은 사람이 할 일은 그 선물을 수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누려야 합니다. 아무리 선물을 받았다 해도 창고에 넣어놓고 개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로마서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2)화평을 누리자”.

적극적으로 화평을 누리자는 것은,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수가 아니고 내 멋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과 화해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누려야 합니다. 무엇을 누려야 합니까?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어느 소설 이야기인데, 어떤 청년이 현명한 노인을 찾아가 소원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건강, 재물, 미모, 권력, 명예…, 번호를 매겨 가면서 많은 것들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구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누린다 해도, 평안이 없이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네.”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들, 건강, 재물, 미모, 재능, 권력, 명예를 주세요 하지만, 모든 것들을 거머쥔다 해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꿰는 절대적 역할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평안, 샬롬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는데, 물질, 건강, 미모, 권력, 재능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로서 제가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성도들이 교회를 찾아온다 해도, 제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누려야 합니다. 거기서 오는 평안과 샬롬을 누려야 합니다.

이사야 61장 3절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새번역)”.

아무리 수용, 수용, 노래를 불러도, 그것들이 내 삶 속에서 실제 능력으로 나타나야 우리가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래 믿었더라도, 그 분으로 인해 내가 누리는 평안과 기쁨이 없다면 병든 상태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화평을 방해하고 있는지, 성탄절인 오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18-19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전방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아량이 넘치고 넉넉한 여유가 생길 수 있습니까? 내 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이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찬양이 자꾸 흥얼거려졌습니다.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것 물리쳐
주의 사랑 비칠 때 기쁨 오네(찬송가 293장)’.

모두가 바라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그 자리에 기쁨이 넘치도록 하는 것, 이 찬양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후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충만하게 비칠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 사랑’.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치길 원하지 않습니까? 후렴이 말합니다. 그 큰 사랑이 내 마음 속에 충만하게 임할 때,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기쁨이 임하고 찬양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왜 ‘그 큰 사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큰 평안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던지고 못박히셔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들 여기 모여 있었다면, 함께 후렴을 몇 번씩 불렀을 것입니다. 예배 후 이 찬양을 각 가정에서 함께 불러 보십시오.

오늘 이 예배가 바로 능력입니다. 백신과 치료제 되시는 주님이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내면에 주님의 그 큰 사랑이 함께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기쁨이 회복되는 은혜와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3. 나눔

하나 더 점검해야 할 단어가 ‘나눔’입니다.

누가복음 2장 8-10절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두려워 떠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무서워 말고 안심하라고 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치료제와 영적 백신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수용하기까지, 누군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전해줬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 놀라운 은혜를 전해줬기 때문에, 부지불식 간에 이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왜 목사가 되기로 결단했을까요? 어릴 때부터 많은 선생님과 교회 어른들이, 미국에서 방황할 때 만난 목사님과 많은 분들의 사랑 때문에 제가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저도 이것을 나누고자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기쁜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수용과 누림이 있다면, 반드시 흘려 보내야 합니다.

이번 성탄 헌금은 대면으로 모이지 못하지만, 이런 목표를 갖고 이웃을 위해 성탄헌금이 쓰여지면 좋겠습니다. 미자립교회에 난방비와 쌀을 지원하고 선교사님들에게 마스크를 보내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저소득 결식아동을 지원하고 미혼모 후원 물품을 구해주고 섬길 것입니다. 교회 내 어려운 성도들을 위한 이삭줍기 헌금도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이 말씀을 드렸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탄헌금은 이 시간에 드리는데,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어제까지 무려 4억원 넘는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미국 어느 교포 분이 유산으로 받은 것 중 일부를 보내 주셨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너무 감동이 됩니다. 누리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애를 쓰시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어떤 분은 인간적으로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나보다 연약한 이웃들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십니다. 교역자들에게 팀을 만들어서 이 헌금이 한 푼이라도 허튼 곳에 쓰이지 않고 적절하게 쓰여지도록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수용한 모든 영혼들마다, 평안을 위시해서 주님 주시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감격을 가지고 나누고 베푸는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결론을 이렇게 맺길 원합니다. 3가지 단어를 기억하십시오. 영적 백신, 영적 치료제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수용, 누림, 나눔.

설교를 길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아이들과 더불어 기뻐하는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빨리 마치면, 바로 주일학교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더불어 기뻐하는 시간을 갖기 원했습니다. 다함께 모일 수 없는 상황이라도 각 가정에서 교역자들과 더불어 잔치 같은 성탄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을 함께 큰 소리로 선포하고 마치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말씀이 온전히 구현되는 성탄절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