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과학자들 지지하던
플로지스톤설, 증명하려다 화학 혁명 유발해
우리는 태양계조차도 대부분 알지 못한 상태

지구 위성 우주선 공간 대기권 밖의 우주 인공위성 정거장 궤도 스테이션
▲ⓒ픽사베이
플로지스톤설이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었다. 이 이론은 17세기 그리고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지지하던 이론이었다.

이런 지지가 이루어진 그 배경에는 당시 시행되었던 대부분의 실험들이 이 이론과 부합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과학사와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는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플로지스톤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오랜 기간 동안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았던 플로지스톤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일까?

플로지스톤의 어원은 ‘불에 탄’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phlogistón으로부터 유래되었다. 플로지스톤설은 당시에 수행되었던 여러 화학반응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플로지스톤설이 주장된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플로지스톤설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인정되어, 당시에 유명 학자들 대부분은 그들의 실험 결과를 플로지스톤설을 이용하여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출 정도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플로지스톤설도 여러 학자들에 의한 변종들이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지스톤설은 오랜 기간 동안 전혀 틀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이론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플로지스톤설이 버림받게 된 결정적인 시발점은 플로지스톤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 일련의 실험들 때문이었다.

라부아지에와 일련의 화학자들은 새로운 실험을 수행하였고, 그 실험들은 플로지스톤설의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실험들은 플로지스톤설과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새로운 실험결과가 플로지스톤설을 버리게 한 화학혁명을 유발시킨 것이었다.

이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상황을 살펴보자. 19세기 후반, 그리고 20세기 초반 과학계는 과학이 이루어낸 업적들을 자랑하기 바빴다.

에디슨이 전구를 보급하고 이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일들은 전기와 자기에 대한 이해로부터 얻어졌다. 열역학에 대한 이해는 내연기관의 발전을 이끌었고 이에 따라 자동차를 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자연스럽게 우주에 대해서조차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심으로 가득 찬 생각이 그 당시 과학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에 가장 유명헀던 과학자의 강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세기 말에 시카고 대학에서 행해진 강연에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우리는 우주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란 정확도를 소수점 6째 자리까지 높이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펼칠 시기에, 그를 포함한 학자들 대부분은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우주에 대해 형편없는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자. 우리 모두는 우리 은하계가 우주의 수많은 은하계 중 하나임을 안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유명학자들 대부분은 우리 은하계가 우주에서 유일한 은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은하계가 우주의 수 많은 은하계중 하나임을 알게 된 것은 발전된 관측 장비를 통해 우주에 우리 은하계 말고도 많은 은하들이 있음을 관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백 여년 동안 관측장비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 우주를 상대적으로 발전된 관측 장비만으로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볼 필요가 있다.

관측 장비의 발전이나 위성기술의 발전이 있었지만, 우리 우주의 규모나 구조에 대해 솔직히 모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거의 매일 새로운 관측결과가 유명 과학저널에 실린다.

좀 더 솔직해져보자. 우리는 우리 은하계의 정말 작은 부분인 태양계(비유로 말하면 축구장이 우리 은하계라면, 그 축구장 안의 개미보다도 작은)도 모두 가본 적도 없다.

현재 우리의 수준은 지구에서부터 태양계 끝까지 한번 지나가 본 정도이다. 아주 최근에 이루어진, 태양계의 행성들에 대한 구체적 탐사는 기존에 사실이라고 했던 것들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 태양계조차도 우리는 대부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우주에는 앞에서 언급한 축구장 같은 은하계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우리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 있고, 그리고 이 이론은 절대로 틀리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 주장이 믿을 만할까? 그리고 성경에서 그 이론과 합치하지 않는 부분은 다른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주장일까?

모든 과학이론은 실험적 증거에 의해 지지되거나 폐기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경우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주장되는 과학이론은 현재까지의 실험이나 관측결과 안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보다 정교한 실험 또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실험, 관측 결과들은 기존 이론을 송두리째 뒤집을 수 있다.

이제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욥기 38장에 유명한 말씀이 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욥기 38장 1-3절, 개역개정)”.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한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이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것이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권영헌 교수
한양대학교 응용물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