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나의 구원을 하나님과 나 중, 누가 더 원하는가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갈망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셨다(요일 4:10).

내가 하나님께 관심을 가진 것은 ‘손 넓이만한 내 생애(시 39:5)’ 어느 한 기점이었지만, 하나님은 내가 세상에 나기 전 영원부터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관심을 가지셨다(엡 1:4, 살후 2:13). 따라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할까 안할까, 구원해 주실까 말까 조바심을 내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다.

또 어떤 이들은 ‘내가 구원받고 싶어도 하나님이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구원받길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전적 무능한 인간은 방해 않고 그냥 둬도 자력으론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했을 뿐더러,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고…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종일 그 손을 벌렸다(롬 10:20-21)”. 더 적극적으로는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도록 찾아다니시는 분이시다(눅 15:4)”.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자 중, 거절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마 8:2)”는 문둥병자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 8:3)”고 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눅 18:41)”라는 소경에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8:42)”고 했다. 심지어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으로 ‘겉옷가를 만졌던 혈루증 걸린 여자’는 그 시로 구원을 받았다(마 9:20-22).

죄인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영생을 얻지 못한 이유를 “그들이 영생을 바라면서도 내게 오질 않은 때문(요 5:39-30)”이라고 했다.

‘구원’을 원했지만 거부당한 것처럼 보이는 예들도 성경에 있긴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 대한 세례요한의 ‘세례 거부’이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 3:2)”는 종말 심판의 경고와 함께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을 때, 진노를 피해 세례 받으러 나온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독설하며 세례 주기를 거부했다(마 3:7).

일견 사람들의 ‘구원에의 열망’을 꺾는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그가 그들의 이중성을 간파한 데서 나온 행동이다. 그들이 말로는 구원을 받고 싶다면서도 죄 사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했다.

이율배반이다. 그들은 애시당초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리스도를 믿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는 ‘구원의 좁은 문’ 이야기 역시 명문대학 입시 문처럼, ‘웬만큼의 노력으로는 구원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는’ 도리를 ‘수납하는 이가 적다(마 7:14)’는 의미에서의 ‘좁은 문’이다. 자연 종교(natural religion)에 매몰된 ‘육신의 사람들(the flesh)’에겐 ‘은혜로 얻는 이신칭의’는 도저히 수납 불가하다.

그들에겐 차라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여 얻는 구원’ 도리가 훨씬 받아들이기 쉽다. ‘예수 신앙’은 성령이 아니고선 수납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다. ‘좁은 문’의 역설이다.

◈유업으로 받는 천국

성경은 ‘천국’을 ‘유업(inheritance, 遺業)’이라고 한다. ‘유업’이란 상속자인 아들이 부모로부터 ‘취득(acquisitio, 取得)’하는 ‘유산’이라는 뜻이다. 곧 천국은 개개인의 공로나 실력으로 취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아들’에게 주어지는 ‘유업’이라는 말이다.

성경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고 한 것은 천국은 ‘육에서 영으로 거듭난 자’에게 ‘상속’된다는 뜻이다(요 3:5).

반면 천국이 ‘인간 노력으로 쟁취되는 것’ 같이 들리는 말씀들도 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이 구절들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천국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만을 따른 ‘성 프란시스’, 문둥병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사랑의 사도 ‘손양원 목사님’,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성 테레사’같은 사람들의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언감생심(焉敢生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인간의 노력이나 투쟁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뒤이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5)”는 말씀이 앞의 내용을 명확하게 해 준다.

부자의 ‘천국 입성’이 ‘사람의 손’에만 맡겨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으로’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천국 입성’이 ‘하나님 능력’에 의존됐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요 6:40)”이다.

이를 적용하면 ‘아들을 믿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 모든 말씀들엔, ‘천국 입성’에 ‘인간 공로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천국 입성’의 자격을 논함에 있어, ‘유업(遺業)’과 ‘도덕성(道德性)’이 함께 엮어져, 혼란을 주는 구절들도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

일견 ‘천국 입성’이 ‘유업’과 ‘도덕성’의 합작으로 얻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나, 둘은 함께 병립(竝立)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성화를 칭의의 조건’으로 삼는 로마천주교의 ‘신인협력주의’가 된다.

그렇다고 둘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 하고 다른 하나를 희생시킬 수도 없다. ‘도덕’ 개념만을 앞세우면 ‘아들의 자격’으로 받는 ‘유업’ 개념이 살지 못하고, ‘유업’ 개념만 강조하면 ‘도덕’ 개념이 살지 못한다. ‘유업’의 의미를 살리면서 ‘도덕’ 개념도 함께 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도덕성’이 천국 입성의 ‘조건(condition, 條件)’이 아닌 ‘당위성(should, 當爲性)’으로 의미가 규정돼야 한다. 전자는 엄격하게 ‘객관적인 기준에의 부응’만을 요구하며 ‘변수나 예외’는 상정되지 않는다. 반면 후자는 유연하게 ‘변수와 예외’가 인정된다.

‘변수와 예외’의 도출이 가능한 ‘생물학, 인류학, 경제학, 사회학’ 같은 데선 전자가 중용(重用)되고,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수학이나 물리학’에선 후자가 중용(重用)된다.

이를 ‘구원’에 적용시킨다면, ‘믿음’은 ‘변수와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구원의 유일 조건(condition)’이고, ‘도덕성’은 ‘변수와 예외’가 인정되는 ‘당위(should)’가 된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는 전자(조건)에 해당되고, “극상품 포도나무(the choicest vines)를 심었는데 들포도만을(only bad fruit) 맺고(사 5:2, 고전 5:1)”은 ‘변수와 예외’가 가능한 후자(당위성)에 해당된다.

‘도덕성’이 ‘천국 입성의 조건(condition)’이 되면, “음란, 우상 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질, 탐람, 술 취함, 후욕, 토색(고전 6:9-10)”을 행한 ‘비도덕적인’사람은 ‘천국 입성’에 배제된다. 따라서 노아(창 9:21), 아론(출 32:1-6), 다윗(삼하 11:2-17), 솔로몬(왕상 11:3-8), 베드로(마 26:67-74) 같은 이들의 천국입성이 불가능해진다.

반면 ‘도덕성’이 ‘천국 상속자의 당위(should)’가 되면, 위의 목록들은 ‘천국 상속자’가 해선 안 될 ‘금기 목록(Prohibit Lists)’이 된다. 그것들은 이전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이었을 때나 행했던 것들이며(벧전 4:3),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아들 된 자에겐 엄금해야 할 것으로 수납된다(벧전 1:14-15; 4:3).

아래의 ‘성도가 엄금해야 할 죄의 목록’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곧, 그것들이 ‘천국 입성’의 자격 획득을 위함이 아닌, ‘천국 상속자(heir, 相續者)답기’ 위함임을 명료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1-3)”.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4-15)”.

성도의 모든 죄는 ‘천국 상속자의 자격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닌, ‘천국 상속자답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잘못했다면, 십자가를 붙들고 회개하여 다시 일어나면 된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