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비유컨대, 말씀은 인터넷의 아이콘(icon)과 같다고 할까요? 아이콘을 클릭하면 아이콘 너머 그것의 실체와 연결되듯, 말씀은 우리를 말씀 너머에 있는 영적 세계와 연결시켜 줍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 다만 활자로 된 말씀에만 접촉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실체와도 연결되어 영적 세계들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오감(五感)으로 경험되거나 실증되지 아니하는 것은 모두 부정되는 무신론적 경험주의(empiricism)를 배격하게 할 뿐더러, 그것의 상대개념, 곧 오감으로 초월적인 세계를 체험하려는 유신론적 경험주의인 신비주의(mysticism)에서도 성도들을 건지며 그들을 건전한 영적 체험으로 이끕니다.

천지창조의 지식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을 클릭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획득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현장에 가본 적도 없고, 창조과학의 도움도 받지 않았는데, 창조기사를 읽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가 믿어집니다.

창조에 대한 과학적 논증 같은 것이 무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미 믿고 거듭난 성도들을 지적으로 무장시키고 기독교를 변증하는 데는 도움을 줄 뿐, 그 자체가 신앙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3).”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과학, 이성의 논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천지창조의 말씀(창 1:1)을 읽을 때 믿음으로 알려진다는 말입니다.

천국 지옥의 지식 역시 마찬가집니다. 소위 직간접의 영계(靈界)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획득됩니다.

그곳에 직접 가본 일도, 꿈에서도 본 적이 없지만, ‘나사로와 부자(눅 16:19-31)’ 같은 천국 지옥에 대한 말씀을 클릭할 때 독자들을 그 세계로 이끕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천국 지옥을 직접 보든지, 아니면 최소한 천국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이라도 들어야 그것의 존재를 믿겠다고 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

천국과 지옥은 그것을 경험한 자의 권위 서린 권면으로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천국과 지옥을 말해주는 전도자(설교자)의 권면으로 알려진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세계도 오직 복음을 통해 경험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클릭할 때 성령으로 믿음의 세계가 경험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려질 때 성령으로 믿음의 세계가 경험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믿음의 말씀(딤전 4:6)’이라고 한 것도, 말씀이 믿음의 원천임을 말한 것입니다.

자유주의(liberalism) 신학자들은 신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논증이 뒷받침돼야 하며, 그것이 결여된 곧, ‘성경에서 시작하여 성경에서 마치고, 성경으로 전제하고 성경으로 논증하는’ 순환적 추론(Circular Reasoning) 신앙은 미신적이라고 경원시합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의 가르침대로, 참된 신앙은 성경 자체의 논증과 성령이 증거로만 생겨납니다. 이는 공격자들의 말처럼, 성경 논증의 한계 때문이 아닌, 신적 계시인 성경의 독특성 때문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이는 ‘오직 그의 기름 부으심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기’때문이다(요일 2:20, 27). 이 증거와 성령의 가르치심이 없이 다른 모든 논증은 구원하는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Thomas Vincent, 1634- 1678).”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믿음을 고무하기 위해 수사학(修辭學, rhetoric)적인 말의 지혜보다는 십자가의 복음(고전 1:17)과 하나님의 능력(고전 2:5)에 의지했던 것이나, 터툴리안(Tertulian, 155-240년경) 이나 루터(Martin Luther)가 이성을 경원(敬遠)하며 성령의존적 신앙 태도를 견지했던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또 믿음은 이적(miracles) 표적(a sign)에 의존되지 않습니다. 흔히 이적, 표적으로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되면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나, 동시대인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마 16:4; 12:39)’고 책망하신 데서도 알 수 있듯, 표적이나 이적이 참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설사 이적, 표적 위에 일시적으로 믿음이 세워졌다 해도,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된 것이 아니기에 유성처럼 반짝하고 소멸돼 버립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 역시 말씀에서 경험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확신은 공격자들의 말처럼 단지 신학 교리의 맹종이 아닌 체험적 지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담보해 줄 만한 개인의 윤리성 확보나 혹은, 로마교에서 말하는 '신적 언질(divine pledge)'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롬 3:28, 30; 5:1, 갈 2:16; 3:24)’는 칭의의 말씀들을 클릭(clik)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확신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죄, 의, 심판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가 의요, 예수 안 믿는 것이 가장 큰 죄이며(요 16:8, 고전 1:20), 인간을 의롭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에겐 여전히 부패성이 남아있고, 자주 넘어지고 만족할 만한 성화의 확증을 내어놓지 못할지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신칭의’의 확신에 이릅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경륜을 말씀을 통해 이루신다는 점을 말하므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의 뜻을 다 성취하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시행자입니다. 다음 구절들은 그 예시(例示)들입니다.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시 147:18, 19)”.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사 9:8).”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 사람이 아닌 ‘은혜의 말씀’이며, 그가 더 이상 성도들을 가르치지 못해도, 전에 그들에게 가르친 말씀들이 그들을 든든히 세워 기업을 얻도록 할 것이라고 확신(행 20:32)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의 역사이며,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성령으로 모든 은혜와 영적 세계를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경륜과 역사를 말씀과 성령에 위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과 성령만으로 온전한 신앙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첨언하고자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말씀’과 ‘성령’만으로는 신앙생활이 부족한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는 성령 충만해지고, 능력 있는 성도가 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에 뭔가를 첨가하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유랑합니다.

이는 그들이 성령은 복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시고, 모든 은혜와 능력이 복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신비주의나 종교다원주의의 덫에 걸리는 사람들은 복음 밖 곧 표적, 은사, 능력에서 성령 체험을 구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영계의 아이콘(icon)이 되게 하여, 복음을 클릭하면 영계에 접속되도록 하셨습니다.

성령체험을 원하십니까? 복음에 올인하십시오. 성령은 복음을 증거하기위해 오신 분이기에 복음을 말하거나 복음에 연루되면 성령 체험은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나가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외쳐보십시오. 성령의 임재가 여러분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으로 말미암은 성령체험은 더 넓은 삼위일체 하나님 체험으로 확장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이 단지 신학자들의 탐구 주제가 아닌 신앙의 현재적 체험임을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