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목사. ⓒPCUSA

아시안계로는 최초로 미국장로교(PCUSA) 총회장을 역임했던 이승만 목사(Rev. Syngman Lee)가 14일 오전(현지시각) 향년 83세로 소천했다.

미국장로교 총회 선교부 부디렉터, NCCUSA 회장 및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이승만 목사는, 유니온신학교에서 아시아아메리칸목회센터 소장을 맡기도 했다.

조지아 디케이터에 위치한 컬럼비아신학대학원 근처에 거주하는 자녀와 가까이 지내고자 최근 애틀랜타로 이주한 이승만 목사는, 남·북한과 미국 교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존경받는 목회자이자 이민목회 현장의 산 역사로 평가받는다고 한미목회연구소 측은 전했다. 또한 고령에도 불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치고 돌보고자 하는 대단한 열정으로 컬럼비아에서의 새로운 사역을 계획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교단 부의장인 그레이디 파슨스 목사는 “이승만 목사님은 예수님의 지치지 않는 제자였다”면서 “그는 한국전쟁으로 희망을 잃은 땅에서 날아와, 선교에 있어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겸손한 영혼을 가진 믿음의 거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암이 급격하게 번지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던 이승만 목사는, 매일 지나온 삶과 교회, 사역, 많은 관계들과 경험들에 대해 깊은 감사를 나타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또한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정의와 평화, 화해를 위해 세상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을 이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평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덧붙였다.

유가족으로는 아내 해선, 자녀 애나, 피터, 미나 씨가 있다. 향후 장례 일정은 교단을 통해 공지될 예정이다.

이승만 목사는 1931년 3월 25일 평양에서 태어나 장로교회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고 평양 성화신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모와 네 명의 누이들은 북한에 두고, 남동생과 함께 남한으로 피신했다.

이후 서울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도에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1964년도에는 예일대학교 신과대학에서 신학 석사학위, 1971년도에는 시카코신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고, 1960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목사는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소식을 모른 채 지내다, 1978년 누이들과 연락이 닿았다. 이미 모친은 8년 전 소천하고, 아버지도 공산당원들에게 잡혀 옥사한 뒤였다. 이런 뼈아픈 경험은 그가 인생 전반에 걸쳐 평화와 화해, 특별히 남과 북의 평화 논의를 이끌어 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