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4~21)

할렐루야~

여러분 세계적인 발명품 전시회에 비행기, 자동차, 텔레비젼, 컴퓨터 이런 것들이 나왔는데 이런 것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세계적인 발명품에 뭐가 하나 나왔냐면 지우개가 나왔습니다. 지우개. 우리가 볼 때 지우개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왜 지우개가 나왔느냐. 지우개가 있었기 때문에 작곡가는 5선지에 음악을 작곡하다가 틀리면 그 종이 전체를 찢어버리지 않고 지우개로 지워서 새로 할 수 있고, 데상을 하는 사람은 데상을 하다가 잘못 했으면 지우개로 지워서 새로 데상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문장이 틀리면 그 전체를 찢어버리지 않고 지우개로 지워서 새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우개가 인류 문화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발명품 속에 지우개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지우개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데 용서입니다. 용서가 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의롭고 착한 일만 하는 사람 누가 있어요? 그런 사람 제가 오늘 특별히 상을 줄 테니까 한번 손을 들어 보세요. 다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지우개인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용서인 것입니다. 용서가 바로 지우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고 그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늘 가정생활도 되고 형제간에 서로 대화하고 교제하면서 살 수도 있고 이웃 간에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짐은 용서를 통해서 청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찬송가 487장 한 장 불러 보십시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서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세상 사람들의 삶에 비유해서 다른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성경에는 악을 이기는 길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집안에 부부간에 싸울 때라도 남편이 부인의 오른뺨을 탁치면 부인이 왼빰까지 돌려대면서 왼뼘도 치십시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대 때리면 같이 때려야지.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했습니다. 속옷을 달라는 왜 내 겉옷까지 줘? 속옷을 달라면 속옷만 주고 말지. 그렇게 할 것인데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까지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까지 가라. 그런 어리석은 행동이 어디 있습니까? 오리 가자는데 십리까지 따라가서 얼마나 다리가 아프겠어요?

또한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 안 믿습니다. 받는 자가 주는 자보다 복이 있지 무슨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나를 비우면 충만하게 되고, 내가 죽으면 영원히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사는 삶과 대단히 틀립니다.

<본론>

1. 축복하기 위한 생활

첫째로, 축복하기 위한 생활을 그리스도인들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박해하는 이조차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누가복음 6장 27절로 28절에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엄청나게 어려운 요구를 주님이 하십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 서서 설교하면서도 과연 내가 이것 하겠는가 안 하겠는가 퀘스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성령께서 오늘 이것을 설교하라고 하니까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아버지 뜻이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참된 신앙생활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줘라.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줘라. 엄청나게 어렵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분이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김구 선생을 죽이려고 권총을 가지고 김구 선생을 만나러 오다가 독립군에게 잡혔습니다. 독립군이 이 청년을 죽이기 전에 김구 선생에게 알려야 되겠다고 뛰어가서 김구 선생에게 알렸습니다. “당신을 죽이러 온 한국 살해자를 붙잡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일어나서 맨발로 그 청년에게 뛰어가서 그 청년을 얼싸안고 “이 객지에서 또 우리 조국 동포를 만났군요? 반갑습니다. 이 김구를 만나러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너무나 감사합니다.” 자기를 죽일 줄 알았는데 맨발벗고 뛰어나와 가지고서 외국에서 동포를 만났으니 반갑다고 끌어안고 뺨을 비비는 김구 선생을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이 크게 감동했어요. 그래서 그날로 김구 선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었습니다. 원수가 친구가 되었어요. 죽이러 온 사람이 김구 선생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실천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 원수를 사랑하라. 죽이러 온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 어렵지만 실천하면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 땅에서 복 받고, 영생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저주하지 않고 살면 우리의 삶속에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놓은 삶을 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장 15절인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라. 남이 잘되어서 즐거워 기뻐하면 마음에 시기하고 질투해서 다함께 즐거워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즐거워하는 자에게 가서 같이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 우는 자와 함께 울기는 쉽습니다. 왜, 남이 어려운 고통을 당해서 울면 가서 “아이구 내 팔자야.” 내 팔자가 생각이 나서 쉽게 울지요. 그러나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자와 기뻐하는 것은 어렵지만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은 쉽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살아오면서 가만히 경험한 것을 돌아보니까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은 참 편안하고 좋더라구요. 그런데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기는 힘이 들어요. 왜냐, 너는 좋은 일을 당했는데 나는 좋은 일을 안당했으니까. 너는 기뻐하지만 나는 같이 기뻐해 주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사실 살아가 보면 다 불쌍합니다. 이 세상에 불쌍하지 않는 사람 누가 있어요? 모두다 이 부귀 영화 공명을 얻었다고 해도 세월이 흘러가면 다 사라지고 구더기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느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다 불쌍히 여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가 행동으로써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 하는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 이것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 모릅니다. 사랑과 행복을 내가 가지고 있는 만틈 이웃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자. 서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나누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은데 두며 지혜있는 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너보다 낫다. 오만하고 교만하고 고개를 흔들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조금 잘나면 굉장히 목을 흔드는 사람 많습니다. 잘난 체하는 사람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 앞에서 보통 사람은 굉장히 좌절감을 느끼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남을 높게 여기고 낫게 여기고 남을 존경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3장 7절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야훼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며 남을 언제나 나보다 낫게 여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잘나면 남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고 거만하게 행할 때가 많습니다. 지혜있는 체하지 말고 겸허하게 사는 것이 참 하나님께 축복받은 일입니다.

1960년대 흑인 해방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두움은 어두움을 쫓아낼 수 없고 빛이 있어야만 사라집니다.”

캄캄한 어두움에 어두움을 가지고 어떻게 쫓아냅니까? 어두움을 쫓아내려면 촛불이라도 켜야 어둠이 없어지지. “이와 같이 미움은 미움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아주 내가 미운 놈을 보고 저놈을 그냥 막 한 대 먹여버리면 좋겠다. 벼락을 맞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그 미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미움을 해결하려면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미움을 쫓아낼 수 있어요.” 참 이 세상 사는 것이 공평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운 놈을 같이 미워한다고 하면 해결이 안돼요. 더 적게 미워하는 사람을 더 많이 미워하고 그 놈을 이기기 위해서 더 많이 미워하고 그 놈을 이기기 위해서 더 많이 미워하면 3차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가정 생활에도 남편이 미우면 그것을 미워하면 남편은 그보다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아내를 더 미워하고 더 미워하면 원수 갚으려고 아내는 남편을 더 미워하고 아 이것봐라~ 여자가 이런 건방진 일이 어디 있노? 남자가 더 미워하고 그 집안은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미운짓 했으면 아내가 꾹 참고 사랑해줘야지. 그러면 남편이 그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녹아져요. 내가 왜 사랑해? 여러분 진짜로 원수 갚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원수 갚는 것입니다. 왜, 남편이 변화가 되는 것이니까. 미워하면 더 자기를 타당화하고 대결하기 위해서 마음을 굳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미안한 생각이 생겨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에요. 인생을 70년 살아보니까 여기 계신 여러분 보다 되게 내가 오래 산 사람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구요. 내말 믿으라구요.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삶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악은 악으로 절대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악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청산하지 말고 모든 일에 선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하고 굶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지금 쌀이 넘쳐나서 감당을 하지 못하고 금년도에도 크게 풍년이 들어서 쌀을 갖다 넣어 놓을 창고가 없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의견이 갈라졌어요. 이럴 때 북한에 쌀을 좀 도와주는 것이 좋다. 밀가루라도 도와주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은 고약한 놈들, 항상 미운짓만 하는데 왜 사랑을 베풀어? 안 주는 것이 좋다. 성질만 고약하게 만든다. 이놈들 저렇게 흉악하게 때만 되면 남한이 도와주더라. 그렇게 해서 도움만 받으려고 한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참 입장이 곤란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해주기 싫지요. 그러나 그렇게 나가면 영영 대결되고 말아요. 미운 놈에게 떡하나 더 준다고. 할 수 없이 밀가루라도 강냉이라도 남아가는 쌀이라도 이때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내 의견은 우리 대통령님 의견하고 틀립니다. 내가 전번 주일날 우리 대통령님하고 식사를 같이 했는데 우리 이명박 대통령님께 “북한 어떻게 할래요?” “괘씸해서 도와줄 수가 없어요. 이 천안함을 이렇게 비참하게 침몰시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빼앗아놓고 난 다음에 안 그랬다고 딱 모른체 하고 국제적으로 변명하는 이런 고약한 놈들에게 뭘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너무나 울분이 생겨서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타당한 말입니다. 옳습니다. 맞았어요. 이론적으로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라고 말 안했습니다.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는 내가 갚아 줄 테니까. 너희들은 사랑하라. 그런데 대통령님 바로 옆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하는데 너무 분노를 하셨기 때문에 소화 안 될까 싶어서 내가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제 강단에 서서는 바른말을 해야지요. 틀림없이 텔레비 보고 계실 것입니다. 대통령님 미안합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들지만 그러나 그것이 미움을 이기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함

둘째로, 최선의 선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축복을 해주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둘째는, 최선의 선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 악을 악으로 청산치 말고 선을 행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7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했습니다.

시편 37편 1절로 2절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저는 이 시편 37편 1절로 2절을 굉장히 많이 외웠습니다. 언제나 북한이 미울 때마다 시편 37편 1절로 2절을 외웠어요. 제가 하나님 왜 북한 같은 나라를 살려 두고 있습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나라 중에서 가장 악한 나라 아닙니까? 가장 불통이 된 나라 북한을 왜 살려줍니까? 그럴 때마다 시편 37편 1절로 2절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행악하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지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풀은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야훼를 의지하고 선을 행하라”. 이 말을 생각할 때마다 제가 입이 막히고 할 말이 없어요. 저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해 질것이니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북한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푸른 채소 같이 시들어지고 쇠잔해져 가는 것입니다. 어찌할 도리없이 쇠잔해져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로 11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디모데전서 6장 18절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그러므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사람보고 복을 빌고, 참아야 되는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복을 빌라고 예수를 믿도록 하나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복비는 사람이지 저주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복을 빌지 욕하는 사람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악을 행하더라도 우리는 복을 받으세요. 하나님께 복을 받으세요. 그러면 그 복이 가서 그 사람에게 있을 곳이 없으면 빈 사람에게로 돌아와요. 복이 날개가 있어서 복을 빈 사람에게 가서 앉으려고 해도 앉을 자리가 없으면 복을 빈 사람에게로 돌아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복을 많이 빌수록 여러분이 복을 많이 받습니다. 왜냐, 복 받을만한 사람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복 빈 사람에게 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진짜에요.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러운 자로써 복을 많이 빌고 선을 많이 행해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많이 받는 사람이 되고 그로써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3절로 11절 우리가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훼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야훼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아멘!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악한 자는 사라진다. 악한 자가 이 세상에서 흥할 줄 알아도 나중에 두고 보면 악한 자는 망하고 만다. 온유한 자는 마음이 부드럽고 착하고 순진한 사람인데 짓밟혀서 죽을 것 같지만 나중에 땅을 차지한 사람은 누구냐 알아보니까 그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 이 세상에 축복받고 승리하고 사는 사람은 결국에 온유한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악한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참고 기다려라. 하나님을 의뢰하고 참고 기다려라. 그냥 기다려서는 소용이 없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3. 모든 사람과 화목함

셋째로, 모든 사람과 화목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하나님으로 우리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심판하고 멸망시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아야 될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고 매달려서 몸 찢고 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갈보리 산에 매달린 십자가를 볼 때 언제나 거기에 달린 예수님이 예수님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거기에 매달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대신해서 여러분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신분으로 매달린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매달려서 다 이루었다. 다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6시간 동안 고난 당하시고 다 이루어서 청산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을 것이 없이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화목하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로 11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아~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종교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모든 선하고 착한 일을 해야 구원받는다고 해서 온갖 행위를 다하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노력과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노력과 행위를 하는데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행위를 해야 구원받는 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인간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실히 알아요. 왜냐, 예수님이 확실하게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매달려서 몸 찢고 피 흘려서 내가 다 이루었다. 청산했으니 확실해요. 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구원받은 것이 확실해요. 내가 구원 받았나 안 받았나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입으로 구주라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으면 구원을 안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은즉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구원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거짓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화목한 우리들은 할 수만 있는데로 이웃하고 화목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했은즉 나는 화목하는 사람이 되야지 분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도 상호간에는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했었습니다. 형제간에는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부부간에는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은 우리 삶속에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화목의 사신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20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제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난 다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화목의 사신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제 이웃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세요. 그저 예수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새사람 되세요. 우리가 권면하는 화목의 사신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직책을 주셨습니다.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웃에 나가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전도하는 이 직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으므로 이 일을 끊임없이 우리는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평안이 있습니다.

시편 37편 37절에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화평하는 자는 평안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희락이 있습니다.

잠언 12장 20절에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야고보서 3장 18절에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원수가 많은데 어떻게 화목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원수가 집안 식구라고 했는데 집안 식구중에 원수가 있는데 밖에 나가서 경쟁사회에서 원수가 없을 수가 없지요.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경쟁을 하면서 사는 사회니까 자동적으로 내가 원수를 안 만들려고 해도 이웃이 나를 원수로 대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원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로마서 12장 19절로 21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러분께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라고 했었습니다. 원수니까 주리는 것 나는 밥 안준다. 목마른 것 원수 이놈아 나는 물 안준다. 그렇게 하지 말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셔라. 그래 놓으면 그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 놓는 사람의 머리 위에 숯불을 피워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머리서부터 타내려 오지요. 입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먹이고 마시우면 머리에 숯불 쌓아 놓는 것이다. 그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일에 스트레스 걸리고 마음에 고통 당하지 마십시오. 원수는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하나님이 갚아 주십시오.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갚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보십시오. 다윗은 무고하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원수를 자기 손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아비새가 사울을 죽일까요? 왜냐, 다윗하고 아비새가 동굴에 들어와 있는데 사울이 배탈이 나가지고서 뒤보러 왔어요. 그러니 동굴 깊은 곳에 다윗하고 아비새가 숨어 있는데 거기에 와서 바지 내려 놓고 뒤보고 있는데 그것 칼로 탁 찍어 버리면 단칼에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다윗에게 아비새가 말하기를 “장군님, 지금만 내가 단칼에 죽일 수가 있으니까 죽일까요?” 그러니까 다윗이 말하기를 “아니야.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에게 네가 손대지 말라.”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야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야훼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삼상 26:9~10)

네가 손대지 않고 야훼께서 그를 죽일 것이다. 다윗은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회개를 하지 않으니까 마침내 하나님께서 진노해서 사울이 전장에서 엎드러져 죽고 만 것입니다. 그 참 다윗은 그 점에 대해서 위대해요. 여러 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안 죽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끝까지 다윗을 죽이러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울이 다윗의 손에서 죽지 않고 전장에서 다른 사람의 손에 죽었습니다. 다윗이 자기가 죽였으면 늘 꺼림할 것인데 자기가 안 죽였으니까 꺼림하지 않지요.

<결론>

우리가 행위의 대가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가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서 마음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관계 속에 변화가 다가옵니다. 아무리 변화가 안다가 온다 해도 변화가 다가와요. 구원을 받으면 서서히 서서히 변화가 다가옵니다. 단번에 변화가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천사가 안 된다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빨리 천사가 되나요? 천사가 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지. 그러니까 여러분께서 인내를 하면 이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고 성령님이 들어오시고 아버지가 들어왔는데 변화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서서히 서서히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어요. 자기 자신이 변화된 것을 자기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김익두 같이 큰 강패도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평양 시내에 나가서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이 깡패 김익두가 예수 믿고 변화 되었습니다.” 그렇게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도 새것이 되고 이웃도 새것이 되는데 단번에 되지 못하고 오래 시간이 걸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든 변화는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의지하고 감사하면서 새사람이 되어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 믿는 사람은 어찌하든지 보통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은 남을 축복해 주는 사람이요, 화목을 가져오는 사람이요,
이 세상에 원수를 갚지 않는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살아서 우리가 변화되고 우리 이웃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므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성령으로 오늘 도와주시옵소서. 변화를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