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직장 상사가, 목사님이 나의 가치를 너무 몰라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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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찬장의 가치

▲드라마 <닥터 차정숙> 중 한 장면.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중 한 장면. ⓒjtbc

거실에 있던 브라운 색 찬장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오면서 산 것이다. 처음 선교단체 훈련생으로 또 유학생으로 호주에서 삶이 시작된 우리 가족에게는 값비싼 그릇들이 별로 없었다. 값비싼 그릇뿐 아니라 비싼 가구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사를 하면서 필요한 가구를 몇 가지 구입했는데, 그 중 하나가 브라운 색깔의 찬장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그 브라운 찬장에도 그릇이 가득 들어가 있고, 예전에 없었던 제법 비싼 찻잔들도 몇 개 생겼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브라운 찬장을 페이스북 중고시장에 내놓았다. 구입했던 가격의 절반 가격으로 내놓았는데도, 누군가 훨씬 더 싼 가격으로 구입하려고 오퍼를 했다. 순간 기분이 나빠졌고,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의 가치를 누군가가 깎아내리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살다 보면 위와 같은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똑같이 입사한 친구는 승진을 하는데 상사에게 아부를 잘 할 줄 모르는 나는 계속 승진을 하지 못하면,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절감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고 때로는 엄청 실망을 경험하게 된다. 다른 예를 들면 열심히 노력했는데 노력한 만큼 보수를 받지 못할 때도 가치 평가 절하를 받았다고 생각되어 억울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나의 가치가 인정되지 못하는 경험을 할 때, 우리는 대부분 두 가지로 반응하게 된다. 한 부류는 자존심이 상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부류는 힘들지만 이겨내고 버텨낸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만큼 일터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쉽게 직장이나 일을 그만 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참고 버텨야지 왜 그만 두었냐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 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으로 여겨질 만큼 어쩌면 고통스러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한 직장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타인과 팀을 이루는 법을 배우기보다, 자존심을 지킨다는 이유로 계속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다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도 이겨내고, 불편한 사람과도 일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만큼 좋은 일만 생기거나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다. 때문에 다양한 사람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때로는 타협하고 설득하고 용서하고 다독거리며 살아갈 힘이 있을 때,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해낼 수 있다.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때로 이런 부분에서 다소 약하다. 어려움을 겪으면 힘들어도 참아내는 법을 배우지만, 그렇지 못하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하던 일을 쉽게 그만 두고 다른 일을 찾는다. 이겨내고 버텨야 한다면, 이겨내야 한다.

특히 자아가 너무 팽창돼 있고 성장하면서 한계 설정을 잘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규율과 규칙이 있는 환경에 자신을 순응하고 질서를 따르고 자존심을 굽히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자존감은 높이되 자존심은 굽혀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간단한 예로 결혼 생활에서는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한 번도 자신을 굽히지 않고 내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관계를 쉽게 깨뜨린다면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자존심이 조금은 상해도 이겨내고 참아내는 법을 배울 때, 타인과 어울려 잘 살게 된다.

반대로 평소에 잘 참기만 하고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할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 참고 인내하는 것만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우 자칫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고, 타인을 위해 늘 자신을 희생하는 우를 범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의사 커리어를 포기한 엄마가 늦은 나이에 권리를 주장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것은 많은 엄마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고, 자신이 못하던 것을 주인공이 대신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람은 삶에서 어느 순간 자신이 없는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런 분의 경우 자기 주장을 통해 “더 이상 나의 가치를 절감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 균형 있는 삶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된 오래된 우리집 찬장은 가치를 못 알아준다고 그대로 가지고만 있다면, 결국 팔지 못할 것이다. 정말 팔고 싶다면 그만큼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감정이 상해도 가격을 낮춰서 팔아야 한다.

세상이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낙담하며 포기하며 회피하며 살아갈 수만은 없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날도 많은 세상이기에, 더 나은 삶의 목적을 위해 치사해도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때로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용기를 내 박차고 나와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쓸데 없는 나의 가치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참아내고, 때로는 잃어버린 나의 가치를 찾기 위해 용기를 낼 줄 아는, 균형을 이루는 사람이 되자.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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