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길선주의 『만사성취』 삽도
길선주, 천로역정 서사 차용해
‘해타론’ 이어 ‘만사성취’ 발간
한국인 입장 천로역정 재해석
삽화 11점 줄거리와 의도 설명
구한말 벽안의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한반도 전역에 복음이 널리 퍼져갔다. 그들은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을 짓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신문화를 보급하였다. 게일 선교사의 『천로역정』도 그런 시대적 배경 아래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기독교 전파에 획기적 기여를 했다.
한국인 중 『천로역정』을 감명 깊게 읽은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삶 자체까지 송두리채 바꾼 사람도 출현하였다. 바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 기독교 역사에 획을 그은 길선주 목사(1869-1935)였다.
길선주는 친구 김종섭이 선물한 『천로역정』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눈물로 책장을 넘겼다고 한다.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던 셈이다. 길선주는 지금까지 추구해 오던 도교(道敎)와 관성교(關聖敎)를 버리고,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천로역정』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뚜렷했던 것 같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의 삶을 형용한 『천로역정』 서사구조를 차용하여 그는 한국인 최초 기독교 저작인 『해타론』(懈惰論)(1904)을 집필하였고, 이어 『만사성취』(1916)를 발간하였다.
『만사성취』는 『해타론』의 증보판으로 ‘연초(煙草)’와 ‘해타의 행동’ 사이에 ‘아편(鴉片)’을 새롭게 추가하였다. 한국인 입장에서 『천로역정』을 새롭게 해석한 책을 펴낸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챕터 구별이 없던 것을 28개 장으로 나눈 다음 소제목을 붙였으며, 11점의 삽화를 넣어 책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11점의 삽화는 전통 산수화에서 볼 수 있음직한 모습을 취하고 있거니와 정자, 누각, 성문 등 전통적인 건물이 등장하고, 복식은 김근중의 풍속화에서 만나는 재래 복식과 함께 관을 쓴 인물도 볼 수 있다.
누가 삽화를 그렸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서툰 표현으로 미루어 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 같지는 않고 지인에게 의뢰하여 제작하였을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추측은 길선주 자신이 직접 그렸을 가능성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길선주 목사가 일찍이 문화 목회에 관심을 기울였고 3남 길진섭이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귀국하여 활약한 인물로, 집안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심증에 그칠 뿐, 이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현재로선 부족하기에 확증할 수는 없다.
책의 내용과 성격에 관해 여러 연구물이 나와 있으므로, 삽화에 대해서만 약간 설명을 하기로 하자. 먼저 『만사성취』의 삽화는 『천로역정』처럼 글과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였다. 이미지는 장식으로 기용되었다기보다 내용을 보완하고 설명하는 용도로 제작되었으며, 줄거리를 함축함으로써 저자의 의도를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가령 ‘사로(思路)’를 보면 주인공이 갈림길에서 주저앉은 채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만일 ‘사로’에서 ‘취주로’, ‘연락로’, ‘음란로’, ‘자만로’, ‘이심로’, ‘급심로’ 로 빠질 경우 낙오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길선주는 ‘정로’(正路)로 들어서서 ‘모안로’에서 게으름을 극복하고 ‘고난산’을 넘어감으로써, 지상에서의 최종 목적지인 ‘성취국’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저 멀리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을 배경으로 들판에 주저앉은 인물을 포치시키는 것은 일반 산수나 인물화에서는 볼 수 없는 구도이다. 그림 제작자는 전승된 동양화 전통에 얽매이기보다, 책의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삽화 ‘사로’를 보면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뀔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같은 양상은 <다수산>에서도 점검된다. ‘다수산’에 오르는 사람마다 졸음에 취해 잠에 빠지게 된다. ‘산의 경치’에 마음에 빼앗긴 인물로 미루어, 안목의 정욕 내지 세상 영화에 심취된 상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수산’ 주위에는 나무와 개천, 꽃이 피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망리수’를 뜻하는 나무의 바람을 맞으면 참 이치를 잊어버리게 만들고 ‘무기천’이라는 물을 마시면 기운이 없어져 움직이기 어렵게 되며, ‘혼미화’라는 꽃의 냄새를 맡으며 정신이 혼미해지게 된다. 저자는 시험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갖는 안락과 여유가 자칫 타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만사성취』는 내용상 게으름을 멀리하고 세상의 유혹을 멀리할 것을 촉구하는 등,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작품이 나온 시기는 외세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한반도가 저들의 전쟁터로 전락하고 일제의 경제침탈, 을사늑약, 고종 폐위, 군대해산, 한일학병, 일제의 무단통치, 105인 사건 등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앙드레 슈미드(Andre Shumid)는 이 안타까운 상황을 ‘격류를 헤쳐가는 연약한 배’로 묘사한 바 있다.
한일합방은 길선주에게도 큰 아픔을 안겨주었다. 선천의 신성중학교 교사였던 장남 길진형은 ‘105인 사건’으로 일경(日警)의 모진 고문을 받아 후유증으로 사망하였고, 길선주 목사 역시 민족대표 중 한 명으로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 책은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춘 것만은 아니었다. 이 점은 제2장 ‘소원성’ 삽화에서 엿볼 수 있다. 단층 누각과 성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일군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박정세 교수는 이 그림이 당대의 정치적 상황은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고 분석하였다.
그림을 보면, 무단 식민정책을 폈던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穀)로 추정되는 인물이 막강한 힘을 과시하듯 다리를 꼬고 있는데 비해, 화면 우측에 조선 관복을 입은 순종(純宗)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공손히 두 손을 모은 포즈와 대조된다.
권력의 중심에 선 데라우치와 달리 권력을 잃은 순종의 시선은 넌지시 데라우치 쪽을 향해 있다. 주위에 밭을 갈고 농부, 망치질을 하는 대장장이, 선비를 등장시켜 국권을 잃어버린 당시의 상황을 환기시킨다.
책이 발간된 시기는 망국의 통한과 무단정치가 자행되던,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런 소망을 갖지 못하던 때였다. 나라는 쇠잔해졌고 그 가운데 개인의 삶조차 온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풍전등화의 현실 앞에서 자학, 폭음, 속임수 등 자멸의 길로 빠져들었고, 어디에도 억울함을 달랠 길이 없던 사람들은 자포자기에 빠지기 일쑤였다.
길선주 목사는 이러한 처지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으로써 기독교가 겨레에게 희망을 주고 태평건곤(泰平乾坤, 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 없고 평안함- 필자 주)을 이루는 반석이 되기를 바랐다.
『만사성취』가 영적 순례를 담은 작품이면서 우리 동포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고난을 극복해 민족 구원에 이를 수 있을지 밝혀주는 책자로 생각되는 이유이다.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