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 학년이 1,200명이나 되는 광주상고에서 수석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불가능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성적은 전교에서 60등 정도, 때로는 80등까지 밀리곤 했습니다. 60등에서 80등을 오가는 중간치 성적으로 전체 수석까지 된다는 것은 꿈에서나 일어날 듯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광주상고는 말이 상고일 뿐이었습니다. 전교 1등부터 20등까지는 가난해서 광주상고에 온 것일 뿐, 머리는 수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골이나 섬 지방 중학교에서 수석을 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호남의 명문 광주서중에서도 광주일고에 진학하지 않고 광주상고를 온 학생도 10-20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가난한 수재들이 20-30등 이내에 포진한 상태에서 중간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제가 수석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 뒤로 있는 80등이나 200등까지도 평균 3~4점 범위 이내에 몰려있는 중간 보통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형편이었습니다. 밤에 잠을 안 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면서 중간치기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면 20등 근방까지 갈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석을 하는 것은 턱도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라는 말을 믿었습니다. 믿고 정말로 미친듯이 공부하였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면 “선생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아로새겨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나의 눈과 정신을 선생님께 집중했습니다. 성문종합영어(당시 정통종합영어)라는 영어 참고서를 매일 몇 장씩 뜯어서 들고 다니며 학교를 왔다갔다 하는 동안 외워버렸습니다. 새벽 기도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기도의 힘이 있어서인지 잠은 4-5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피곤치 아니하였습니다. 새벽에 기도하고 교회 계단을 내려오면 새벽 미명에 무등산에서 밝아오는 햇살 사이로 천사들의 축복하는 찬송가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증인이 두 명 있습니다. 바로 제 동생들입니다. 바로 밑의 동생 송영천(현재 서울고등법원형사7부장판사)은 동성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 밑의 동생 송영길(현재 민주당 3선의원)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우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큰형이 하는 것을 흉내내면서 따라다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우들이 하도 큰 형이 공부와 기도를 열심히 해 대니까 자신들도 그래야 하는 줄 알고 그 행동을 따라오다 보니 모두 잘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70년 역사의 광주상고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공부를 잘한 사람이 더 잘 할 수 는 있어도 중간치기인 학생이 전체 수석을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제가 해내고 만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라는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공부한지 1년4개월… 저는 광주상고 전체에서 수석을 하였습니다.

송하성 박사는

고등학교 시절 예수를 영접하고 ‘인생역전’의 신화를 이룬 인물. 성균관대 경제학과, 서울대학원 행정학 석사, 파리 소르본느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미대사관 시절 조지타운대에서 국제변호사 자격을 따기도 했다.

22회 행정고시에 합격, 경제기획원 공보담당관, OECD 68차 경쟁법 정책위원회 한국대표, 주미대사관 경제외교관,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을 거쳐 현재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3선의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