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5장 특정공포증의 이해

공포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공포증이 불안과는 달리 두려움을 유발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으로, 특정공포증은 특정 대상에 의해 유발된다. 이는 공포증에서도 특정한 대상만 대하면 공포감이 유발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증가하면 병리 증상을 만들고, 그에 따른 공포증 환자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특정공포증이 어떤 것인지를 고찰해야 한다.

1. 특정공포증의 기초 이해

특정공포증은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과 아울러 3대 공포증에 해당한다. 우리는 광장공포증에 대해 이미 다뤘다. 이제 특정공포증에 대해서 다룰 차례이다.

1) 특정공포증의 정의

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은 특정 대상에 의해 공포감이 유발되는 증상이다. 이 공포증은 불안장애의 하나로 특수공포증 혹은 단순공포증이라 부른다. 특정공포증은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두려워하여 피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은 대개 동물이나, 높은 곳, 천둥, 어둠, 비행, 폐쇄 공간, 특정 음식물 섭취, 피나 상처를 보는 것, 주사를 맞는 것 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정공포증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공포의 대상도 달라지는데 예전의 악마공포증이 사라지고 방사능 공포증이나 AIDS, 성병, 환경오염 등 과거에 없던 대상이 추가되고 있다. 이런 특정공포증에 대해 유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동물에 의한 것, 자연환경에 의한 것, 도구에 의한 것, 상황에 의한 것, 일정한 공간에 의한 것, 기타 등이다. 동물에는 파충류, 쥐, 벌레, 고양이, 개, 곤충에 대한 공포 등이, 자연환경에는 폭풍, 높은 곳, 물 등이, 도구에는 혈액-주사-손상형으로 피를 보거나 주사를 맞거나 기타 찌르는 검사에 대한 공포 등이, 상황형에는 공중교통수단, 터널, 다리, 엘리베이터, 운전, 또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공포 등이, 기타 유형에는 다양한 형태의 공포증이 해당한다.  

2) 특정공포증의 특징

특정공포증은 일정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특정공포증의 유형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동물형 공포증은 그 대상이 동물이나 곤충이다. 이는 다른 공포증에 비해 대체로 아동기에 발병, 일찍 시작되는 편이다. 인지발달 단계상 아동이 동물이나 곤충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포증이 매우 강렬하고 아동의 일상적 기능을 방해하거나 6개월 이상 지속되면 공포증이라고 부른다. 또 천둥이나 번개, 물, 높은 장소 등 자연환경이 공포 대상인 자연환경형 공포증도, 동물형과 마찬가지로 아동기에 발병한다. 상황형 공포증은 대중교통이나 터널, 교각, 엘리베이터, 비행, 운전, 폐쇄된 공간 등 특수상황에 의해 유발되는데 주로 아동기와 20대 중반 두 시기에 나타난다.

특히 상황형 공포증은 공황장애 등 심리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가 하면 혈액-주사-상해형 공포증은 혈액이나 부상을 경험하거나 주사 등 의학적 처치를 받을 때 나타난다. 이 유형의 공포증 환자는 종종 기절하거나 기절 직전의 경험으로, 의사를 피하려 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의학적 조치마저 피하려 한다. 공포증은 예전에 개인 성격으로 돌렸다. 실생활에 지장이 초래될 만큼 적잖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공포증 환자는 홀로 고민에 빠져야 했고, 남에게 이야기하면 이상한 성격을 지녔다는 인식만 남겼기 때문이다.

3) 공포의 대상에 따른 구분

특정공포증은 공포대상에 따라 세분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정공포증에서 다음과 같은 공포증은 잘 알려진 것들이다. 동물공포(Zoo-phobia)는 특정 동물(예: 개, 뱀, 거미)을 두려워하는 경우, 폐쇄공포(Claustrophobia)는 폐쇄된 공간(예: 엘리베이터, 터널)을 두려워하는 경우, 고소공포(Acrophobia)는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경우, 물공포(Aquaphobia)는 물을 두려워하는 경우, 질병공포(Nosophobia)는 AIDS와 같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불결공포(Mysophobia)는지저분한 것에 대한 두려움, 시험공포(Examination phobia)는 시험을 보는 상황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경우 등이다.

이처럼 피하는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상황이나 대상에 접하게 되면 광장공포증이나 사회공포증과 마찬가지로 공황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또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나 상황이 평상시에 흔히 접하는 것이 아니거나 두려워하는 정도가 경미하면, 공포증이 환자의 직업이나 사회활동, 다른 일반적인 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이 심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물’ 공포증의 경우, 목욕이나 샤워는 물론 이를 닦는 일마저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4) 특정공포증의 일반적인 경향

특정공포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미국이 많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각종 천재지변이 많아서 두려움이 유발되는지 모른다. 미국정신의학회의 특정공포증 진단기준표(DSM-Ⅳ)에 따르면 미국인들 중 10-11.3%가 특정공포증 증세를 보인다. 이런 비율은 미국인 10명 중에 한 명이 공포증 환자임을 보여준다. 1986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제시한 DSM-Ⅲ에 따라 역학조사가 실시된 한국에서는 100명 중 5명 꼴로 증상을 보였는데, 서울(5.35%)이 지방(4.67%)보다 더 많은 증세를 보였다. 이 조사가 거의 20년 전에 실시된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은 더 증가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공포증은 구체적이고 갑작스런 위험에 대한 반응인 공포와는 전혀 다르다. 공포는 위험이 항상 미래에 일어나기에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공포는 일상적이고 피하기 어려운 생활의 일부분이기에, 일상생활 속에서는 공포가 합리적이고 적절한 반응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런 공포는 생존의 차원에서 매우 필수적인 것이다. 인간에게 공포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옛날 원시시대에 살아남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공포란 원시시대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사람이 놀랐을 때 눈썹이 올라가는 것은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망막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한 기능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최상의 행동을 계획할 수 있다. 이런 것은 공포의 감정이 인간의 생존과 관련되어 유발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5) 특정공포증의 보편적 성격

공포증은 특성상 보편적인 측면이 있다. 개인에 따라 정도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한두 가지 상황에 대해 누구나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행기 사고가 언론에 대서특필된 날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누구나 어느 정도 공포를 느낄 수 있지만, 그런 두려움이 비행기를 타지 못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비행공포증 환자는 비행기로 몇 시간에 갈 거리를 자동차로 며칠씩 운전해서 간다든가, 목적지에 갈 생각을 포기할 정도로 심한 경우에 해당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큰 비행기 사고라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공포나 불안감이 사라지기 마련인데, 비행공포증 환자는 좀처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으며 비행기가 안전하다는 정보에도 아랑곳 없이 공포감이 좀처럼 감소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지 못해 위독한 부모를 찾아뵙지 못하거나 좋은 일자리를 제안을 받아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공포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과학은 공포증을 진화론의 산물로 해석한다. 원시시대엔 힘이 센 짐승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강할수록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이런 기억은 진화과정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인간의 대뇌 속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공포증의 대상 가운데 뱀·악어 등 파충류가 유독 많다는 점을 그 증거로 내세운다. 사람은 파충류에 대해 유달리 공포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인간의 보호본능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보호본능은 자동차 사고 등 문명의 이기에서 비롯된 각종 사고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유명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계단공포증에 시달렸고, 시저는 어둠공포증이 있었으며, 셰익스피어는 고양이 공포증을, 파스칼은 광장공포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위대한 사람들이 공포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공포증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대변해 준다.

2. 특정공포증의 유형과 분석

특정공포증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정 대상에 의해 유발되는 공포증은 이미 그 대상이 다양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유형 중에서도 일정 기준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유형들은 특정공포증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많이 경험되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유형에 대해 사례적으로 분석하면, 특정공포증의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특정공포증의 유형적인 사례

‘프렌치 키스’라는 로맨틱한 영화의 첫 장면은 코믹하고도 인상적이다. 여주인공은 비행기 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지만, 비행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상담소에서 모의비행을 하게 된다. 모의비행기 안에서 비행기가 마치 이륙하는 듯한 움직임과 소음을 느끼자 그만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비행기 문을 뜯어내고 나오게 된다. 그녀의 행동은 흥미롭지만, 정작 비행공포증 환자에게 그 두려움과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이런 특정공포증의 유형에 대하여 우리는 사례적으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폐쇄공포증의 사례이다. 폐쇄공포증에 시달리는 남자대학생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폐쇄된 장소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종종 다락방과 지하실에 내려가 놀고 옷장 속에 숨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신입생이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혼자 갇힌 일이 있었다. 마침 토요일 오후였고 엘리베이터가 도서관 구석에 있어 경보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는 몇 분이 지나자 심한 불안 상태에 빠져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도 가빠지면서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그에게 마치 자신이 숨 쉴 만큼의 충분한 공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러다 질식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기절할 것 같았다. 20여분 후에야 사람들이 와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그를 구출해 주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비롯해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아파트의 19층에 살고 있는데도, 이후 한 번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걸어 다녔다. 혹시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있어도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면 핑계를 대고 피해버렸다.

둘째로 비행공포증의 사례이다. 비행공포증이 있는 이 직장여성은 광고회사에 다니는 커리어우먼인데, 최근 실장으로 승진했다. 그녀의 새 일은 전에 했던 일에 비해 출장이 잦았다. 이로 인해 그녀는 큰 고민에 빠졌다. 국내와 해외의 광고촬영을 위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1시간이건 10시간이건 비행기 타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다. 지난 6년 동안은 비행기 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탔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녀는 비행기를 타기 한 달 전부터 안절부절 못 하고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고, 일주일 전부터는 비행공포증으로 어떤 일에도 오래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의 모든 생활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비행기를 타야할 시간이 다 되었을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다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승진 기회를 포기해 버리겠는가. 그녀는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게 될까 두려웠고, 비행기의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거의 기절할 정도로 무서워했다. 자신의 이런 두려움이 지나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비행기를 탈 때는 좀처럼 자신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셋째로 운전 공포의 사례이다. 30대 남성이 운전 공포로 시달리고 있다. 그는 중소기업 과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대학교 시절 아버지에게 운전교습을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운전했는데, 운전이 미숙해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 차와 거의 정면으로 부딪칠 뻔 했다. 그는 너무 놀라 가슴이 심하게 뛰었고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그는 또 온몸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아버지가 옆에 타지 않았더라면 정면으로 충돌했을 것이다. 그 후로 그는 운전면허 따는 것을 계속 미루다 주위의 성화에 못 이겨 20대 후반에 면허를 땄다. 간신히 면허는 땄지만, 막상 거리에서 운전을 하려 하면 맞은편 차와 충돌할 것 같아 자꾸 차도를 벗어나게 되고 운전을 못했다. 마침 그는 새 직장으로 옮기려 하고 있는데, 다른 조건은 마음에 들지만 운전을 자주 해야 되는 일이라 망설이고 있다.

넷째로 거미 공포의 사례이다. 두 아이를 둔 40대의 주부는 거미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거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라면서 점점 더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학 시절 매우 저렴하고 편리함에도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못했다. 그녀가 기숙사를 신청하려 할 때, 친구들이 장난삼아 욕실에 거미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녀는 집에서도 지하실이나 정원에 잘 가지 않았으며, 방에 들어갈 때도 벽부터 살폈다. 그녀는 거미를 발견하면 비명을 지르고 남편에게 죽이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비명에 맏딸이 심하게 놀란 적도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거미가 있던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거미가 죽지 않고 도망을 가버리면, 잡을 때까지 며칠 밤이고 잠을 설쳤다. 그런 날이면 거의 매번 거미에 관한 악몽을 꾸게 된다.

다섯째로 상해 공포의 사례이다. 스물여덟 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두려움 때문에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버지에게 문병을 가지 못했다. 그는 신체적 상해를 입거나 병에 걸리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다. 심지어 상해나 질병과 약간이라도 관련되면 피했다. 수혈은 생각조차 할 수 없고, 병에 걸린 사람들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프거나 고통스러울 때도 의사를 찾아가지 못하고, 친구나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문병을 갈 수 없었다.

5년 전부터는 육식은 전혀 안하고 채소류만 먹었다. 그는 고기 종류만 보면 가축이 살육당하는 장면이 생각나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은 그가 아홉 살 때, 여자 담임선생님이 다리수술 받은 것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불안한 마음이 심하게 들고 어지러움을 느꼈으며, 땀이 매우 많이 나더니 결국 기절해 버렸다. 그 후로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무척 힘들었고, 병원만 떠올려도 가슴이 심하게 떨렸다. 또 아주 가벼운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대해 듣기만 해도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

최근 그는 길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이 많이 아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서 정신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다른 심리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최선을 다했으며, 아내나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2) 특정공포증 유형의 분석

특정공포증 가운데 혈액-주사-상해형은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고 피한다. 이 밖에 거미나 개 등의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고, 페쇄된 곳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으며, 운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공포증은 어떤 식의 생각과 행동을 유발하는 증상이다. 이런 공포증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불안이나 공포는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종의 동물들도 경험하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이다. 공포경험은 미약한 불편감에서부터 심한 공포와 공황발작에 이르기까지 정도도 다양하고,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공포부터 계속되는 상태까지 지속 기간도 다양하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공포는 인간 생활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약하다는 의미이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공포를 경험한다는 점에서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험장에 들어갈 때나 한밤중에 혼자 있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때, 약간이라도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공포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감정이다. 공포는 심리학적으로 사람이 위험을 지각했을 때 일어나는 투쟁/도피 반응이다. 이것은 위험을 지각했을 때 공포를 느낌으로써 위험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갈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기에 진화적으로 볼 때 적응적 가치의 감정이다.

공포의 목적 중 하나는 유기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원시인들이 맹수와 마주쳤을 때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맹수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다행히 사람들은 공포심을 느끼기 때문에 도망가거나 맹수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게 된다. 공포의 이런 적응적 기제가 꼭 원시시대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필요한 기제이다. 개인이 길거리를 걷고 있을 때, 큰 트럭이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온다고 상상해 보자. 공포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죽게 될 것이다. 다행히 개인은 투쟁/도피 반응을 하게 되어 안전하게 길 옆으로 피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포의 목적이 유기체를 보호하려는 것이지 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공포는 선천적이며, 인간의 발달 초기에는 보호 기능을 수행한다. 낯선 사람이나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기본 규칙은 처음에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항상 절대적이고 일반화되며 보호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자라면서 이 같은 절대적이고 과잉일반화 된 공포에 대한 원래의 규칙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배워가면서, 미숙한 공포가 현실적 공포로 변화하며 보다 적절하고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규칙으로 바뀌어 간다. 따라서 낯선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규칙(모든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은 환경이나 낯선 사람의 위협적인 면과 비위협적인 면, 자신과 낯선 사람의 상대적인 힘 등을 고려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미숙한 상태의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잠재되어 우리가 취약한 상태에 있을 때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3. 특정공포증의 진단 기준

특정공포증은 일정한 특징을 갖는다. 그 본질적 특징은 명확히 판별 가능하고 제한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현저하고 지속적인 공포이다. 공포 자극에 대한 노출은 거의 예외 없이 즉각적인 불안반응을 유발한다. 이는 특정공포증의 특징을 시사하는 것이면서 특정공포증의 본질을 먼저 이해하고, 그 진단 기준이 필요한 이유이다.

1) 특정공포증의 본질

공포증 환자들은 자신의 두려움이 과도하고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상황이나 대상이 실제로 위험할 때 적절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보고 특정공포증을 가졌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범죄가 많은 도시의 슬럼가를 걸으면서 강도를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공포증이라 할 수 없다. 반면 동물원에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동물들을 두려워하거나 높은 고층건물 안에서 닫힌 유리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면서 추락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비현실적 공포이다.

일상적인 두려움이 아닌 공포증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회피나 공포 혹은 예기불안이 개인의 일상생활과 직업, 사회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하거나, 개인이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하게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혼잡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불편해하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고 다음 번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으면 공포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기 위해 15층까지 걸어서 다닌다든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으로 직장을 옮긴다면, 그 사람은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해서 이들이 두려운 대상이나 상황을 항상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때에 따라 대상이나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감내한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 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때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지만, 매우 불편해하고 약을 먹기도 한다. 유사하게 어떤 사람이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를 탈 수 있지만, 날짜가 다가오면서 여행 몇 주 전부터 걱정하고 잠을 못 잔다면 그 사람은 공포증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공포증이라고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공포 대상과 상황을 피하거나 두려움을 가지고 감내하지만, 두려움이 심각한 불편감을 일으키고 그 사람의 생활을 방해해야 한다. 또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IV)의 기준에 맞아야 한다.

2) 특정공포증의 진단 기준: 특정공포증의 진단 기준은 DSM-IV에 의거한다.

A. 특정 대상이나 상황(예: 비행, 고도, 동물, 주사맞기, 피를 보는 것)에 직면하거나 그러한 대상과 상황이 예견될 때,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인 두려움이 현저하고 지속적으로 유발된다.
B. 공포자극에 노출되면 예외 없이 즉각적으로 불안반응이 유발되며, 이런 반응은 상황과 관계가 있거나 상황이 소인이 되는 공황발작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소아는 불안이 울음, 떼스는 것, 얼어붙는 것, 칭얼대는 것으로 나타난다.
C. 개인은 자신의 두려움이 과도하거나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아에게는 이 양상이 없을 수 있다.
D. 공포 상황을 회피하거나 심한 불안이나 고통을 지닌 채 견디어낸다.
E. 회피, 예기불안, 두려워하는 상황에서의 고통이 그 사람의 정상적인 일상생활, 직업적(또는 학문적) 기능, 사회적 활동이나 관계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또는 공포증이 있는 것에 대해 현저한 불편감이 있다.
F. 18세 미만의 경우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G. 특정 대상이나 상황과 연관된 불안, 공황발작, 공포에 의한 회피반응이 강박성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또는 이별불안, 사회공포증, 광장공포증을 동반한 공황장애, 공황장애의 병력이 없는 광장공포증 같은 다른 정신장애로 더 적절하게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4. 정리: 공포증과 단순한 불안의 차이

지금까지 우리는 특정공포증의 이해에 대하여 기술했다. 공포증에는 여러 가지 공포증들이 있다고 했다. 공포증이 불안과는 달리 두려움을 유발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으로 특정공포증은 특정 대상에 의해 유발되는 공포증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포증에서도 특정한 대상만 대하면 공포감이 유발되는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이 증가하면 병리적 증상을 만들고, 그에 따른 공포증 환자로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특정공포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몇 가지로 구분하여 고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