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에 대한 욕망: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녹음 테이프의 추억

입력 : 2018.12.02 17:25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보헤미안 랩소디> (上)

보헤미안 랩소디
▲유명밴드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번 주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이민자 출신의 ‘파록버사라’가 보컬을 구하던 로컬 밴드에 들어가면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으로 밴드 ‘퀸’을 이끌게 되는 이야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합니다.

아웃사이더 남성이 전설의 록밴드가 되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11월 30일 기준 540만여명의 관객이 관람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라미 말렉(프레디 머큐리), 루시 보인턴(메리 오스틴), 귈림 리(브라이언 메이), 벤 하디(로저 테일러), 조셉 마젤로(존 디콘) 등이 출연했습니다. -편집자 주

◈파격의 아티스트: 금지곡의 대명사, 보헤미안 랩소디

1980년대, 민주화가 덜 진행된 한국에서는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당시 민중가요는 물론이고, 민주화 색채를 드러내는 많은 대중가요들이 금지곡 목록에 올라 음반에 수록되지 못했다. 해외 음반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저촉되는 제목이나 가사를 담은 곡은 삭제된 채 발매되기 일쑤였다.

때문에 이 시기 중·고교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에게는 이런 금지곡이 담긴 불법복제 녹음 테이프가이 무슨 보물처럼 여겨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지곡 테이프가 한 번 등장하면 학급 친구들 모두가 들어보고자 안달하던 시절. 케이블 방송과 스트리밍 서비스, 그리고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된 2018년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이 시기 금지곡들 가운데 단연 독보적 인기를 차지하던 곡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였다. 1980년대 중·고교 학생들 사이에서 영미권 팝 음악의 위상은 현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지금이야 국내 음반시장에서 K-Pop이라 불리는 한국 대중음악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한국 대중가요 대부분이 아직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영미권의 세련되고 실험적인 팝 음악, 특히 락 음악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조용필이나 유재하 같은 뮤지션들이 시대를 앞선 곡들을 내놓긴 했지만 롤링 스톤즈, 이글스, 레드 제플린, 더 폴리스(보컬 스팅의 밴드), 에어로스미스, 데프 레퍼드, 메탈리카, 그리고 퀸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퀸의 대표곡으로 손꼽히던, 그것도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독특한 구성에 파격적인 가사를 담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 목록에 오르자, 곡에 대한 학생들의 호기심은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가사가 파격적이니, 악마의 노래라느니, 곡에 대한 ‘도시 전설’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사실 이 곡이 금지곡 목록에 오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노래 제목에 등장하는 보헤미아(Bohemia)가 당시 동유럽 공산권 국가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을 가리킨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도시 전설’은 1989년 금지곡 해제와 함께 국내에서도 정식 앨범이 발매되고 나서 수그러들었지만, 당시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질서 아래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던 다수 학생들에게 이런 호기심은 갑갑한 입시생활로부터의 탈출 기회, 소극적인 일탈의 기회로 여겨졌다.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퀸 4집 앨범 ‘A Night at the Opera’의 자켓 이미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제목만으로 1980년대 당시의 향수를 일깨운다. 영화 <원스>(Once, 2007),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3), <라라랜드>(La La Land, 2016)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 웰메이드 음악영화, 특히 뮤지션들의 삶을 담은 영화들은 유독 한국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비긴 어게인>의 경우 영화가 제작된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큰 흥행성적을 거뒀을 정도다. 이처럼 음악영화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에서 1970-80년대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까지 가미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투영된 일탈과 파격의 정서가 3중으로 중첩된 작품이다. 일단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곡 자체가 그렇다. 구성과 가사도 새로울 뿐더러, 한국에서는 금지곡으로서 가히 파격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곡이다.

둘째, 영화에 등장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혈통과 음악 자체가 하나의 파격이다. 인도에서 분리독립한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가정의 공항 수하물 노동자, 그러면서 틈만 나면 당시 대중음악의 주된 흐름을 벗어나는 새로운 곡을 작곡하던 뮤지션, 새로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그의 연애사와 죽음 역시 파격적이다. 당시 유럽과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기 일쑤였던 양성애자였던 데다가 당시로서 생소한 불치병으로 알려진,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두렵게 다가왔던 에이즈에 걸려 사망한 것까지. 출생, 삶, 음악 전체가 기존 주류 질서를 거부하는 요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관람하는 것만으로 마치 시대를 앞서는 예술혼에 동참하는 느낌이다. 평단과 평론가들의 평이 그럭저럭 준수한 수준인 데 반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평은 호평 일색이다.

영화의 서사 자체는 밋밋한 편이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익숙한 음악과 열광적인 무대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특히 이런 감흥은 1970-80년대 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법복제 녹음테잎으로나마 들어보려 애쓰던 오늘날 40-50대들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밴드 퀸의 공연장면. 특이한 무대의상과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비운의 아티스트: 예술가의 명성은 삶의 비참함에 비례한다

미인박명(美人薄命), 천재요절(天才夭折). 어떤 측면으로든 탁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에 비해 험난한 삶을 살고 일찍 죽는다는 말이다. 통계적으로 확인된 속설은 아니지만, 적어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러 유명한 예술가와 뮤지션들에게는 어느 정도 통하는 말인 듯하다.

문학, 음악, 미술, 체능을 막론하고 극히 비극적인 삶을 산 인물치고 전설이 되지 않은 이는 없다. 경매장에서 이런 예술가들의 작품 가치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맞물려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조금 멀게 보면 렘브란트가 대표적인 예다. 세 자녀가 소아 시절 병으로 죽었고, 아내도 젊어 죽었으며, 전성기가 지나 빚을 갚지 못해 경제적으로 빈궁했고, 마지막 남은 아들조차 렘브란트 자신이 죽기 1년 전에 죽었다. 그가 미술의 천재였던 것은 분명하나, 그 비극적 삶이 그의 작품의 가치를, 그의 예술혼에 대한 평가를 더 높여준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 사례는 모차르트, 베토벤, 반 고흐, 툴루즈 로트랙, 이사도라 덩컨, 모딜리아니, 이상, 구본웅, 생텍쥐페리, 존 레넌, 앤디 워홀 등의 경우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의 삶의 고난, 가족의 죽음, 신체적 장애, 천시받는 혈통, 세상의 편견 등으로 인해 평생 고통받다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삶을 마감한 천재적인 예술가들이다.

그런 암울하고 좌절스러운 삶 가운데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새로운 예술의 길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이들 모두는 극한 투쟁의 삶을 살고 간 순교자와 같이 여겨진다.

이런 정서는 조선을 비롯해 근대 이전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일단 예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천시를 받았다. 물론 유교, 성리학의 영향으로 문필가들의 작품은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들의 예술혼 자체가 사랑받지는 않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비참한 삶을 산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 이처럼 서구문화 가운데는 고난스럽고 비극적인 삶을 산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극도로 존경하는 풍조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절개와 충의를 지키려던 선비들의 작품이 큰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예술적 가치 때문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동경 때문인 바가 더 컸다. 예술가들의 괴팍하고 비참한 삶은 ‘천하게 살다가 천하게 죽어간’ 환쟁이, 광대, 기생들의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았다.

국내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요절한 천재 예술가들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볼 수 있다. 일제에의 저항을 포기하고 친일파로 돌아선 예술가들과 달리, 이상, 이육사, 윤동주 등 부조리한 시대에 예술로 저항하던 이들의 민족정신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경우도 사실 예술혼보다는 민족혼, 나라에 대한 충의가 더 높게 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시대에 저항하고 파격을 추구하는, 그런 가운데 비극적 삶을 감내하던 예술가들의 예술혼에 대한 동정과 경의는 동아시아와 국내의 문화전통이 아니라, 서구의 문화전통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서편제>(1993)나 <왕의 남자>(2005), 그리고 중국의 <패왕별희>(1993) 같은 영화는 원래 동아시아의 문화전통이 반영되었다기보다, 서구적 예술문화 정서가 반영된 작품이라 보는 것이 옳다 하겠다.

그렇다면 서구에서 유독 단명한, 비참하게 살아간 예술가들에 대한 동정과 경의의 문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기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시인’으로 명명되던 신화 기록자들을 극히 공경하던 고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예술이란 단순히 삶의 일탈을 담당하는 천한 일이 아니라, 그들이 믿던 신들의 계시와 영감을 얻고 신들을 섬기는 일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어난 삶의 비극과 신체적 장애는 종교적 헌신을 위한 투쟁의 조건으로 여겨졌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의 삶에 대한 고대인들의 시각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많은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전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맹인이었다고 전해진다.

보헤미안 랩소디
▲카타콤에 그려진 로마시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화(orante). 그들의 목숨을 건 신앙에 대한 존경이 이 작품의 가치를 현저하게 높여준다.
서구 사회에서 예술가들의 비참한 삶이 사후(死後)에 높은 평가를 받는 풍조의 두 번째 기원은 기독교의 순교 역사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일단 예수 그리스도부터 지고한 명령을 받들다가 죽음을 맞이하셨고, 사도들과 수많은 초대교회 교인들 역시 신앙을 위해 비참한 삶을 감내하다 목숨을 바쳤다.

이들을 예술가라 부를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남긴 신약성서와 문서, 그리고 로마의 카타콤과 기독교인 거주지 여러 곳에 남긴 벽화 등은 신앙과 예술혼이 조화된 교회의 유산으로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풍조는 기독교 신앙이 예술을 지배하던 중세 시대에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인문주의 문예부흥(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며 경의의 대상이 신앙보다는 예술 자체로 이전되면서, 세속적 예술혼에 대한 동경과 선망이 부각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호평은 이런 문화사적 풍조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대한 선망과 동정은, 원래 종교적 압제와 박해에 대항하던 기독교 순교자들의 삶에 존경과 경의를 표하던 서구의 전통적 신앙정서가 세속화된 변형태라 할 수 있다.

기존 주류 백인중심 문화질서가 자리잡은 영국과 미국에서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 노동자 출신 뮤지션이 당연하게 겪게 되는 난관과 사회적 편견, 잠시의 성공과 화려한 생활에 취해 무너진 삶, 그의 성공에 기생해 그를 이용하려는 주변인들, 엄습한 불치병 에이즈, 그리고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공식 라이브 무대인 Live Aid 무대를 혼신을 다한 힘으로 마무리하는 모습까지. 신앙의 자리에 예술혼을 가져다 놓았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이 영화는 순교자의 삶을 그린 영화라 할 수 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그의 삶의 모든 요소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다만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바는 기독교 신앙이 서구 문화에 준 막대한 영향력이다. 그리고 그런 영향력이 오늘날 다소 왜곡된 형태로 예술계, 대중문화계의 영웅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통찰을 갖고 이 영화를 대한다면, 신앙의 입장에서 보다 냉정하게 오늘날 문화 세태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계속>

보헤미안 랩소디
▲오늘날에는 비극적 삶을 산 예술가의 삶이 예술혼을 위해 투쟁한 영웅의 삶으로 격상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욕설 및 비방 등의 댓글은 사전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