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제단을 쌓고 우선적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그 이듬해 이월 그러니까 근 5개월에서 6개월만에 드디어 성전지대를 놓고 본격적인 성전 재건공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에스라 3장 12절을 보면 이 때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여기 보면 두 가지의 소리가 나옵니다. 한 소리는 통곡하는 소리요, 다른 한 소리는 기뻐하여 즐거워하는 소리입니다.

통곡하는 사람들은 왜 통곡을 할까요? 12절에 보니까 그 이유를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족장들 중 여러 노인들은 솔로몬의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모두 울었습니다. 이 눈물은 결코 감격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화려했던 거에 반하여 초라한 지금의 성전이 마음 아파 우는 눈물이었습니다.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었습니다. 회한의 눈물이었습니다.

왜 솔로몬 성전이 무너져야만 했던가… 왜 우리가 다시 이 성전을 지어야만 했던가… 그것은 모두 그들의 '죄'때문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죄가 가져온 비참한 실상을 떠올리며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한편에서는 기뻐하여 즐거운 소리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영광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전의 규모와 화려함을 본 일이 없습니다.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전을 지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벅찬 감격을 숨길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왜 노인들이 우는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젊은이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젊은 사람들을 너무 속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면서 최상의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소리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내 죄를 바라보면서 통곡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내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오르신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흐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내 죄를 아무리 바라보고 또 아무리 십자가를 묵상해 봐도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토록 메마른 나의 영생 때문에라도 울어야 합니다.

이렇게 십자가 아래서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하셨다면, 그래서 내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멀리 옮겨지는 은혜를 경험하셨다면, 주홍빛 같던 내 죄가 주님이 흘려주신 보혈을 만나 깨끗하여 진 것을 경험하셨다면 이제 그 은혜와 영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 감격, 그 기쁨, 그 넘치는 환희를 가슴에 품고,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내 삶의 터전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두 가지의 소리… , 하나는 죄 앞에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흐느끼는 통곡의 소리,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빽빽하던 죄의 먹구름이 걷히는 그 은혜와 감격을 가슴에 품고, 이 좋으신 주님을 사람들 가운데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창원 목사(새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