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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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원의 길, 좁은 문으로

▲ⓒ크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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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3-24)”.

23절의 질문은 유대인만 구원을 얻고, 다른 민족은 버림 받는다는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이 깔려 있습니다. 그들만이 선택된 구원의 사람이라는 뜻에서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이후 26-27절 말씀에서 주님은 “구원이란 외적인 사실에 있지 아니하고 내적인 회개와 믿음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출석해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한다 해도,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죄악을 일삼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4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 얻을 사람들의 수에 대한 질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시며, 질문이 잘못됐음을 지적하십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구원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좁은 문’과 ‘넓은 문’을 대조시켰는데(마 7:13), 여기서 그런 대조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구원(救援)이란 ‘어떤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입니다. 우리 기독교(개신교·천주교)에서 요구하는 의미로는 ‘인류를 고통과 죄악과 죽음에서 구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말씀하는 좁은 문이란, 들어가지 못할 만한 문이 아닙니다. 들어갈 수 있도록 열린 문입니다.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좁은 문에 대한 뜻을 정확히 알면, 좁은 문이지만 넓은 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이 좁은 문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생명 최우선, 생명의 절대성을 의미합니다. 즉 좁은 문이란 생명 되게 하는 문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영생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 앞부분의 “주 예수를 믿으라”에서 ‘주’는 단수로, ‘선생들(주들)’에 대한 대구적 대답입니다. 즉 “우리(바울과 실라)가 ‘주들’이 아니고, 예수께서 주님이시다”는 의미입니다. ‘믿으라’는 ‘어떻게 해야’에 대한 대구적 말씀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에서 ‘네 집’이란,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2천 년 전에는 지금처럼 개인주의가 만연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개개인은 가정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세례도 온 식구가 함께 받았습니다. 때문에 영아에게도 세례가 행해졌을 것입니다(행 16:15 참조).

사도행전 16장 15절의 ‘내 집에 들어와’라는 말씀은 초대교회만의 특징입니다. 초대시대 가정교회는 지역 핵심 신자, 리더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가정교회의 예로 예루살렘에 있는 요한의 어머니 마가의 집(행 12:12), 에베소에 있는 아굴라 부부의 집(고전 16:19), 라오디게아에 있는 눔바의 집(골 4:15),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집(몬 1:2) 등이 있으며, 가정교회와 가정예배의 기초가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배 때나 가정에서 곧잘 부르는 찬송가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가사에도 있듯,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니, 우리 몸에 지워 있는 그 더러운 죄짐을 하나 없이 벗어놓고 힘써서 들어갑시다’. 1-3절 가사가 은혜 넘치고 많은 위로가 되는 찬양입니다.

오늘 주제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인 계산 속에, 그 어떤 무게나 부피, 길이와 높이, 넓이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 받은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입니다.

구원의 문은 세상에서 말하는 ‘대세’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좁은 문은 반드시 주인이 닫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시작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사람의 계산으로는 측량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복음은 반드시 큰 역사를 성취합니다.

제자들은 각자 하나님 나라 복음의 결과를 계산하고 예측하며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계속 부딪히는 반대 세력들로 인해 제자들의 기대는 많이 축소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생각이나 계산으로 예측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매우 작아 보여도, 시작되면 큰 열매를 거두는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세상이지만,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은 신앙인들이 자주 사용하지만, 아주 잘못된 말은 아닙니다. 천국이 실제로 그런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죽으면 가서 살게 되는 하나님 나라라면, 이해할 수 없는 비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너희가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씀을 복음으로 전하셨을까요?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니, 회개하여 그 나라 백성이 되어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 요단강을 시작으로 광야를 거쳐 마지막 예루살렘을 향한 노정에서 만난 각 성과 마을, 병자들과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 고통받는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예수님처럼 소외되고 가난하며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편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한 알의 겨자씨와 작은 누룩에 비교하셨습니다. 씨앗 중에서 아주 작은 겨자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웅장한 나무로 자랍니다.

또 누룩은 적은 양이지만 많은 양의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여 변화를 가져옵니다. 바로 그 과정이 십자가를 향한 길이요,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나 누룩처럼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 학교나 직장, 그리고 몸담고 있는 어떤 장소, 그리고 가정과 교회에서 자신의 역할이 비록 초라해 보여도, 전체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넓은 문을 선택하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좁은 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시기와 질투, 욕심이 없고, 오롯이 영의 양식을 먹고 사랑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순절 넷째 주간을 맞이합니다. 과연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부탁하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지요?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고 있는지요? 지금 세상 한가운데서 움직이는 크리스천들의 희망 없는 행동을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란 매우 어렵게 보입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중직자들은 말씀을 외면한 채, 타성에 젖어 안주하며 말씀을 멀리하고 세상에 심취해 좁은 문을 잊은 채 큰 문을 찾아 사방을 헤매고 있습니다.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비춰야 하는데, 온갖 권모술수와 비열한 행동으로 오히려 세상을 혼탁하게 합니다. 성도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온갖 거짓 술수와 꼼수만 가르치고 있으니,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교회의 위기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성도들에겐 꿈과 비전, 감사와 찬송이 사라지고, 사랑이 식은 곳에서 좁은 문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위해 이번 사순절에는 영적 말씀을 먹고 회개함으로써 좁은 문으로 입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고, 다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받는 존재로서 기쁨을 갖되, 보여주신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빛으로 나아가는 은총의 사순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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