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시리아 지진
▲지진 피해가 심각한 튀르키예 아디야만의 임시 거처 앞에서 아슬리(가명, 9세)가 인형과 앉아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대지진 이후 1년이 지난 가운데, 세이브더칠드런은 6일 “현재까지도 아동 3명 중 1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아동과 가족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대규모 지진과 여진으로 5만 6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약 620만 명의 아동이 피해를 당했다. 당시 튀르키예에서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인구는 약 24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66만 명이 아동이었다.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튀르키예에서는 아동 20만 5천 명을 포함, 이재민 76만여 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튀르키예 아디야만에 거주하는 아슬리(가명, 9세)는 “엄마와 아빠와 텐트에 살고 있다. 지진이 나서 우리 집이 무너졌다. 때때로 텐트는 정말 덥거나 정말 추워진다. 그래서 좋지 않다. 샤워 시설은 밖에 있다. 저는 우리 집을 다시 갖고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좋겠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튀르키예 정부가 정식 거주지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절반 가까운 이재민 35만 명이 비인가 거주지에서 지내고 있다. 대부분 주차 공간 만한 작은 텐트나 컨테이너에 거주하며, 일부는 7평 남짓한 공간에서 온 가족이 지낸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해 말 지진 피해 가정 441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60%가 기본적인 위생 용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재민 가정 자녀의 대다수가 학교로 돌아갔으나, 부모 중 30%는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세이브더칠드런 튀르키예 사무소장 사샤 에카나야케는 “이제는 지진이 대서특필 감이 아닐 수도 있으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전히 아동 3명 중 1명은 작은 텐트와 컨테이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집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한때 경험했던 삶이 무너진 것이다. 국제사회는 튀르키예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지진 생존 아동은 경기 침체와 분쟁으로 가중된 위기를 겪고 있다. 학교와 의료 시설의 피해가 심각해 기초적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지진 피해 지역에서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활동이 중단되며 식량과 대피소 없이 살아가는 인구가 수천 명에 달한다. 올해 시리아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90%에 달하는 1,670만 명에 달해, 13년 전 시리아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의 원조 수요가 예측된다.

시리아 북부에 거주하는 마라(가명, 12세)는 분쟁과 지진으로 두 번의 피난을 경험했다. 마라는 “폭격, 포탄, 지진을 피해 도망쳤다. 학교는 엉망이 됐고 어두워서 칠판을 볼 수 없었다. 선생님이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칠판이 떨어졌다. 끔찍한 장소였다. 지금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친구들과 놀 만큼 상황이 나아졌지만, 폭격과 지진으로 학교에 1년 넘게 가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러한 지진을 경험한 아동의 심리적 고통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시리아 정부 통제 지역에 거주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아동이 슬픔을 경험한다고 했으며, 30%는 악몽을 꾸는 등 수면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또한, 장애 아동의 85%는 지진을 경험한 뒤 가족, 친구, 교사와 교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튀르키예에서도 조사 가구의 절반(51%)이 지진 이후 자녀의 심리나 행동에 변화가 있다고 했고, 49%는 불안의 징후를 보였으며, 21%는 공격적 행동을 보였다고 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시리아 사무소장 라샤 무레즈는 “시리아는 설상가상의 위기에서 싸우고 있다. 지진, 분쟁, 경기 침체가 겹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었다. 아직 회복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인도적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 아동과 가족이 잃어버린 삶을 재건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 전 세계 어린이의 구호활동을 목적으로 에글렌타인 젭이 창립했다. 에글렌타인 젭은 미션스쿨인 ‘성 베드로 중학교’(St. Peter's Junior School)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곳곳의 어린이들이 직면한 빈곤을 보며 교사는 자신의 사명이 아님을 깨닫고, 이후 자선 단체 협회에 참여,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성 조지 공동묘지에 묻혔으며, 그녀의 비문에는 성경구절인 마태복음 25장 40절의 인용문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