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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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을 맞아,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서들을 소개한다.

십자가
십자가
새라 코클리 | 정다운 역 | 비아 | 128쪽 | 9,000원

◈십자가, 사랑과 배신이 빚어낸 드라마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수난이라는 드라마로 초대합니다. ... 수난은 너무나 섬세하고 변혁적인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아는 모든 정의를 넘어서고 전복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성 신학자이자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성경 본문들에서 뽑아낸 10가지 키워드로 십자가 수난에 관해 풀어낸 에세이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3장 '배신'. 부제가 '사랑과 배신이 빚어낸 드라마'일 만큼, 저자 또는 출판사는 '배신'에 주목하고 있다. '한 여인이 보여준 넘치는 사랑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옥합을 깨뜨린 여인)' 바로 뒤에 나오는 이 '배신'의 인물에 대해, 저자는 "수난 이야기에서 가장 문제적 남성 인물"이라고 평한다.

'넘치는 사랑으로 선물을 바쳤던 유별난 여인'과 여러 모로 대비를 이루는 이 남성은 예수의 수난과 영광에서 비롯된 새로운 질서를 믿지 못했고, '300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귀한 나드 향유를 낭비한다'며 이 여인을 강하게 비난한 인물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러나 "성서 안에서 발견되는 유다의 여러 모습, 여러 층위를 살펴보아야 한다"며 "유다에 관한 부정적 묘사들만을 살피면 요한의 복음서가 유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보다 근원적인 면, 보다 미묘하고도 기이한 면을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을 당신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의 일부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유다의 발도 씻으셨고, 유다가 예수님을 넘긴 일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였으며 이루어져야 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면 사랑과 배신은 불가분 얽혀 있습니다. 사랑과 배신이 얽혀 있다는 지독한 역설은 예수의 수난이라는 참혹한 사건을 이루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유다로 인해 예수는 수난 사건으로 '넘겨'질 수 있었고, '넘겨진' 예수는 완전히 수동적인 인물이 되어 자신의 사랑을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신에도 그분의 사랑을 빚으실 수 있으며, 그 사랑을 흘러넘치게 하실 수 있다. 그래서 유다의 진정한 비극은 '배신' 자체가 아니라, 베드로와 달리 주님께서 베푸시는 '흘러넘치는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여기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유다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이 몸서리치는 고통을 겪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에게는 닿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유다와 함께 있는 자'이다.

저자 새라 코클리(Sarah Coakley)의 저작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미국 유학시 그의 지도를 받은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가 쓴 해설을 통해 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예정된 악인 유다
예정된 악인, 유다
피터 스탠퍼드 | 차백만 역 | 416쪽 | 18,000원

◈유다는 뼛속까지 사악한 배신자였을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빼놓을 수 없는 '주연급 조연'이 바로 가룟 유다이다. '악역 없는 드라마'가 없듯, 가룟 유다는 지난 2천 년 간 예수님의 이름이 전해지는 곳마다 멸시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역사를 공부한 영국의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피밭(하켈다마)'에 세워진 성 오누프리우스 수도원을 직접 방문하는 열의를 보이며 그의 모든 것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가룟 유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더 큰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을 조명한 <십자가>의 새라 코클리와 달리, 이 책의 저자는 가룟 유다의 일대기와 지난 2천 년 간 유다를 대하는 기독교의 자세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알파벳 순으로 키워드를 제시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가룟 유다의 사면복권'을 주장하는 책이다.

"과연 유다는 뼛속까지 사악한 배신자일까, 아니면 원대한 신의 섭리에 따라 쓰인 부속품이었을까?"

이 질문이 저자의 집필 의도를 대표한다. 저자는 4복음서와 유다복음, 그리고 고·중세의 각종 문헌들을 제시하면서 유다의 배신은 '악마의 부추김'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위해 예정된 '신의 기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복음서의 '각색'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의 접근 때문에, 새신자들에게는 이 책보다 김기현 목사의 <가룟 유다 딜레마>나 토스카 리의 소설 <유다>를 추천한다.

눈뜬 자들의 영성
눈뜬 자들의 영성
크리스토퍼 휴어츠 | 양혜원 | IVP | 218쪽 | 11,000원

◈가난한 이들, 공동체 중심으로 삼으라

청년 시절 인도 콜카타에서 3년간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선교회'를 도운 경험을 바탕으로 '육신이되신말씀(Wrod Made Fresh)'이라는 단체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역을 평생 이어온 저자가 전하는 영성 이야기. 21세기에 십자가를 묵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에 와 닿게 전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60-70년 전 실재했던 모습들이지만, 아니 지금도 밤이면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청결하고 정돈되고 아름답고 세련된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먹을 것도 입을 옷도 쉴 집도 없는 사람들'의 현실은 너무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영적으로 '눈 먼 사람'들이 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주의를 끌고 붙잡고자 그리스도인들은 영성 계발의 공식을 만들어 복음을 조작해 버렸다"며 "특정한 기도 방법, 복음주의의 요구 사항, 개인 경건의 형식으로 인해 우리는 혼란에 빠지거나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때로 그것들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①자만과 교만 ②개인주의와 독립주의 ③무절제와 과잉 ④권력과 통제 ⑤승리주의와 반항과 저항 등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거인들' 5가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거인들을 쓰러뜨릴 ①겸손 ②공동체 ③단순함 ④순종 ⑤깨어짐 등 '단순한 다섯 돌멩이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책은 이 다섯 가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읽다 보면 우리에게 여전히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조금씩 눈이 떠지는 것이다.

고난주간이라 더 와 닿았던 내용은, 저자의 경험담이다. 대학 4학년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목록을 받았는데, 그가 원하는 것은 32인치 사이즈의 바지 한 벌이 전부였다. 저자 자신도 바지가 한 벌 필요해 44달러짜리 카키색 바지를 주문하려던 참이었기에, 그를 위해 월마트에서 14달러짜리 바지를 하나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하나님이 나의 양심을 움직이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예수님께 드리는 것(잠 19:17)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께 드릴 바지는 월마트에서 사고, 나를 위해서는 그것의 세 배쯤이나 비싼 바지를 주문하려 하고 있었다!"

저자는 깨어짐을 경험했고, 자신이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바지를 선물하기로 했다. 이후 친구들에게도 원하면 동참하라고 제안했는데, 친구들은 다들 비슷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젠 안 입는 그 사이즈의 바지가 있는데, 그걸 주면 될까?" 2장 '공동체'에 나오는 부분이다.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는가? 끊임없이 편안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다가 우리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바꾸어 버리지 않았는가? ... 가난한 친구들이 우리 공동체의 중심이 되면, 우리 마음이 열려 이 세상의 필요에 긍휼로 응답할 수 있게 된다." 책 표지와 띠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예수님의 마지막 7일
예수님의 마지막 7일
한희철 외 | 대한기독교서회 | 64쪽 | 2,000원

◈고난주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묵상하기

종려주일부터 부활주일까지, 고난주간 1주일(8일)간 함께할 수 있는, '하루 3번 펼쳐보는' 묵상집이다. 기독교사상 700호 발간을 기념해 부록으로 제작됐다.

아침에는 각 요일마다 예수님의 주요 행적들을 본문과 함께 제시하면서 생각할 만한 묵상 내용을 담았다. 점심에는 아침 묵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도를, 저녁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읽을 수 있는 시편 읽기 순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YWCA연합회, 한국YMCA전국연맹, CBS, 대한기독교서회가 연합해 모든 성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함께 드리는 고난주간 기도문'을 중간 중간에 수록하기도 했다.

이들은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일과 사건들을 소재로, 그분의 고난을 묵상하고자 한다"며 "이 묵상집을 읽는 모든 분들이 고난주간에 주님의 크신 사랑과 고통을 되새겨보고, 우리의 신앙을 되살피며,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재확인하길 바라고 기도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