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금요일입니다. 에리트레아의 제1 항구 도시 아싸브(Asab)에서 맞는 아침입니다. 나라 이름 ‘에리트레아’(Eritrea)는 ‘붉다(紅)’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리트레아’(Erytrea)에서 따온 말입니다. 에리트레아에 처음으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중앙 아프리카의 피그미 족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지역으로 유입한 나일 강 유역의 함 족 사람들과 섞이게 되었고, 그 후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주한 셈 족과 혼합되어 여러 종족으로 나뉘었습니다. 기원 2천년 경에는 서쪽의 나일 강 저지대에 거주했던 누비아 족과 동쪽 홍해 건너에 살던 아랍 족과 긴밀한 접촉과 교류가 있었습니다. 에리트레아의 도처에서 발견된 유적지는 악숨 문명 이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사 이래 에리트레아와 더불어 에티오피아, 지부티, 소말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the Horn of Africa)은 외부 세계가 군침을 흘리고 바라보았던 지역이었습니다. 홍해와 인도양이 만나는 이 지역은 인도와 극동을 지중해와 이집트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무역 고리 역할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지역의 유일한 이점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왕)들에게 ‘신들의 땅’ 또는 ‘푼트의 나라’로 알려진 이 지역은 가지각색의 수많은 귀중한 물자를 한없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 노예, 타조 깃털, 영양, 상아, 흑단 등 이 모든 품목들은 외국 선박에 실려 이 지역-오늘날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및 예멘- 지역의 항구로 수송되었습니다. 그때가 기원 전 2920년부터 2649년 사이였던 제1왕조와 제2왕조 때였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에는 오늘날 에리트레아에서 50km도 채 되지 않는 티그라이에 강력한 악숨 왕국이 건국하였고 동시에 기독교가 전래되어 악숨 왕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북부지방이 그 당시 악숨 제국의 영토입니다. (*악숨 제국과 기독교 전래에 관한 글은 #21과 #22를 참조하십시오.)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여행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아끼지 말고 잘 먹는 일입니다. 거지처럼 자고 왕자처럼 먹으라고 했습니다. 어제는 우유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종일 물만 마시고 굶었습니다. 게다가 차에서 그 뚱뚱보 여자에게 서너 시간 시달림을 받은 탓이었는지 몸이 무겁고 나른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딘가에 가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싶었지만 수중에는 에리트레아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나는 환전을 하기 위해 쏜살같이 은행으로 뛰어갔습니다. 아싸브 은행은 개업시간이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이며,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점식과 휴식(낮잠) 시간, 그리고 오후 4시부터 저녁 7시까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인 다나킬 지방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싸브는 연 평균 기온이 섭씨 30도(한여름은 평균 45도)이므로 아싸브 시민들은 불볕 더위를 피하기 위해 모두 집에서 낮 시간에 잠을 잡니다. 따라서 직장인들은 하루에 두 번씩 출퇴근을 하는 셈입니다.

은행에서 100$를 에리트레아 돈으로 환전하니까 1,350나그파(Nagfa)였습니다. 아스마라의 암달라 시장에서는 100$에 2천 나그파까지 바꿀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거의 두 배를 받는 셈입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터미널에 들러 다음날 출발하는 아스마라 행 버스 승차표를 미리 매입했습니다. 오늘 하루 순례자가 지출한 돈의 액수가 얼마 쯤 될까 궁금하지요? 우리나라 돈으로 한번 계산해 보면 가난한 에리트레아의 화폐 가치가 얼마나 낮은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 방세(호텔비): 50Nfa, *아스마라 버스비: 117Nfa, *자전거 운송비(아스마라): 70Nfa, *아침식사비: 10Nfa, *물(광천수 2리터): 15Nfa *점심식사비(콜라 포함) :23Nfa,
*저녁 식사비: 20Nfa, *비스킷: 11Nfa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