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스 아바바 체류 기간 중이었던 3월 어느 날 순례자는 두캄(Dukam)과 비쇼프트(Bishoftu)의 중간 지점에 있는 쿠르쿠라(Kurkura)라는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어느 조그마한 마을의 요하네스 아드마수 촌장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젊은 촌장으로부터 밤 늦은 시간에 나는 주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종교와 종족 이야기를 듣다가 그 마을의 120년 된 아카시아 나무 <아드바르>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쿠르쿠라 지방의 주민들 일부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정교회 신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 초능력자이심을 알고 있는 기독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드바르>가 모든 우환질고(憂患疾苦)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무, 돌, 늪 등의 정령(精靈:Galla)의 활동이 인간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믿어 갖가지 방법으로 보호를 받고 화를 피하기 위해 자연을 숭상했던 정령 숭배자들(Animists)의 자손으로, 말하자면 원시종교와 접목된 기독교 신자들인 것입니다.

이튿날 촌장의 안내로 나는 아카시아 나무 <아드바르>를 순례했습니다. 촌장에 따르면 <아드바르>는 ‘보혜사“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 아카시아 나무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모양과 크기가 펼친 우산처럼 생긴 높이 20여 미터 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아드바르> 밑둥에는 한 젊은 부부가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병든, 헐벗고 굶주린 에티오피아의 전형적인 극빈자들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정령 숭배자들은 1백년 이상 된 아카시아 나무에는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영이 있다고 믿는다.

아드마수 촌장은 아카시아 나무 아래로 기도하러 온 젊은 하일레 네구쎄 씨 부부를 나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다 쓰러져가는 토담집을 방문했습니다. 슬하에 어린 세 자녀를 둔 30대 중반 나이의 네구쎄 씨는 오래 전에 사고로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는 몸이었고, 그의 아내는 고질적인 부인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방안은 어두웠고 환기가 되지 않아 고리타분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세 아이들의 얼굴은 영양실조로 핏기를 잃었지만 그들의 유난히 큰 눈동자는 새벽별처럼 총총 빛났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말인가를 조잘거리고 있었습니다.

▲실직과 불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하일레 네구쎄 씨 부부와 영양실조에 걸린 자녀들(맨 왼쪽은 아드마수 촌장이다).

“배고파요, 배고파요. 먹을 것을 좀 주세요!“
내 귀에는 그런 말로 들렸습니다. 조금 후에 침대에 누워있던 예닐곱 살 쯤 된 남자아이가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내게로 왔습니다. 병명을 알 수 없는 피부병을 앓고 있는 소년은 무릎을 꿇고 내 무릎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자기 동생들처럼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습니다.

“가려워요. 아픈 건 참을 수 있지만 가려운 건 참을 수 없어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죽으 면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다지요?!”
내 귀에는 또 그런 말로 들렸습니다.
굶주리고 병들어 초췌하기 짝이 없는 네구쎄 씨 가정의 참혹한 모습을 보자 순례자의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주님, 죄 없는 이들에게 왜 질병과 배고픔의 고통을 안겨 주십니까? 이들을 왜 이렇게 버 려두십니까? 이들과 왜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속으로 비통해 하고 있을 때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내 영혼의 귀에 들려 왔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내가 병들 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에게 행하였던 것처럼 너희도 가서 그와 같이 하 라”(마태복음 26장 10절, 누가복음 10장 37절).

나는 네구쎄 씨에게 구제 비상금으로 준비한 100비르(약 12,000원)와 종합 비타민 한 병과 비스킷 한 봉지를 주면서 그들을 위해 이렇게 중보 기도했습니다.

-사랑의 주님, 네구쎄 씨 부부가 날마다 아카시아 나무 <아드바르>를 찾아가 절하고 기도
드리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노여워하지 마시고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이들은 아 카시아 나무가 주님의 피조물임을 잘 알면서도 그 나무를 찾아가 기도하는 것은 물에 빠 진 자가 살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는 그런 심정에서 입니다. 지금 네구쎄 씨 부부 바로 곁 에 있는 이 소자와 이 소자를 이곳에 보낸 성도들이 그들의 참되고 영원한 <아드바르>가 되어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의 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따금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네구쎄 씨 부부와 그들의 어린 아이들이 생각날 때마다 순례자는 네 해가 지난 오늘날까지 그들을 계속 도와주지 못해 마치 죽은 아카시아 나무나 다름없는 내 자신을 탓하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칠 뿐입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