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인천새로운교회).

11월은 1월부터 10월까지 열 명의 동생들을 돌보고 막내동생 12월까지 챙겨야 하는 맏형 같다.

한 해의 끝은 분명 12월이다. 그러나 12월은 한 해의 끝을 선포하는 각종 모임과 성과들에 대한 행위로 부산을 떤다. 정작 성찰은 11월 끄트머리쯤에 하는 것이 훨씬 나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11월은 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소유해서는 안 될 것들을 소유하려 한 탐심들을 묶어, 회개의 그릇을 여는 달이다.

하나님의 물질을 제 목구멍에 넣은 목회자들, 여성도를 벌거벗긴 음란의 목회자들, 자식에게 교회당을 대물림한 목회자들, 머리 기름 바르고 명예 권위 찾아다니며 호방한 웃음 터뜨린 목회자들 모두,
한 줌 재로 화할 화장장의 인생인 걸 깨닫고 회개의 그릇을 제 손으로 열어야 할 시간이 11월이다.

12월이 되면 육신의 세상 행사와 이름만 조금 다른 각종 연례행사를 나다니는 목회자들이 많아, 진정으로 회개의 무릎을 꿇게 될 심령은 기대하기 어려울 터. 고요한 침묵으로 11월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통곡 한판 벌임은 어떨지?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에게서 발병된, 타락이라는 암세포가 성도들의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와 같다.

타락한 목회자들은 더 이상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타락한 목회자들의 움직임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타락한 목회자 자신은 사회의 지탄 대상인 줄 모를 수 있다. 타락한 목회자임에도 과거의 명성을 기득권 삼아, 자신의 이득을 노리는 또 다른 타락의 무리들이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당을 나서면 성도는 없다’는 조롱은 이제 낯설지도 않다. 한국 교계의 총체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을 모색하기 위한 각종 모임들이 분주한 모양이다. 매우 쉽고 지극히 간단한 일인데, 너무 부산을 떤다.

물질을 토설하면 된다. 하나님의 물질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된다.

11월은 마지막 잎새가 매달려 있는 나무처럼, 희망을 영글 수 있는 12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는 달이다. 낙엽과 함박눈 사이의 정적인 숨결이 그윽하기에, 사무치게 가슴 아리다. 단풍놀이를 끝낸, 앙상한 나뭇가지가 주는 고독함은 오히려 정겨움이다.

그래서 11월 끄트머리에 다가서면, 기차를 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오늘은 열차를 꼭 타야겠다.

목회자는, 곧 죽어도, 물질 축적은 말아야지, 이놈들아!

천국 열차의 규칙적 운율을 만드시고 차창의 풍경을 조화롭게 하신 이의 동행이 거칠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