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다윗 왕과 아합 왕, 성경에 나오는 두 부류의 사람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먼저 다윗에게는 사탄이 이방 세력들을 사주하여 하나님의 나라인 다윗 왕국을 방해했고, 사탄이 직접 나서 이스라엘을 대적해 결국 다윗 왕을 실족케 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구조사 시도를 징벌하십니다. 여기 기록된 인구조사는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다윗은 여기서 그만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에 선견자인 갓에게 명령하십니다. 세 가지 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며 회개했지만, 사흘 동안 전염병으로 7만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시고, 천사에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바로 그때,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 돌이켜 천사를 보고 무서워 네 명의 아들과 숨습니다. 다윗이 나타나 오르난에게 ‘상당한 값으로 지불할 테니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하고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러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고 합니다. 오르난은 재빨리 다윗 왕에게 ‘왕은 취하소서! 왕 마음대로 가져가소서’라며 소유를 다 내어놓습니다.

다윗은 그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지 않고, 오히려 금 600세겔을 지불했습니다. 곧바로 다윗은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철저한 회개를 보시고,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놀랍게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21장에 나오는 아합 왕은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 이세벨과 공모하여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탈취합니다. 가나안 땅은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아래 각 기업을 분배받았기 때문에, 왕이라도 다른 사람의 땅을 강제로 탈취하거나 거래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합 왕은 악한 우상들의 영향력과 탐심 탓에 나봇을 죽이고 강제로 포도원을 탈취합니다. 나봇은 포도원을 아합에게 줄 수도 있었지만 여호와의 명령을 두려워해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값을 후하게 줄 터이니 자신에게 팔라고 합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을 갖지 못한 탐심으로 마음이 상해 있던 차에, 이세벨의 음모론에 힘입어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세벨은 백성들을 속이기 위해 백성들에게 금식과 기도를 선포하고 모세의 율법으로 위장해 나봇을 처형합니다. 나봇의 죄명은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에 따라 나봇은 돌에 맞아 처형당하고 맙니다.

특히 이세벨은 악한 종교의 영향과 전통에 젖어 있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무서운 음모를 꾸밀 수 있었습니다. 본래 우상의 종교는 근본이 이기적이고 탐심에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와 이기적인 탐심을 가진 자의 끝 날은 비참하다는 것은 늘 좋은 교훈이 됩니다. 당시 아합과 이세벨의 죄상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책망받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나봇 사건은 단순한 권력형 부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무시한 영적 범죄였습니다.

결국 아합 왕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예언대로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이세벨도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개들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다윗과 아합, 이 두 사람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교훈은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지만 철저한 회개를 통해, 공의를 굽게 하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구입을 했습니다. 왕일지언정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공평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진행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왕으로서 품위와 공의를 지키지 않았고, 그저 탐심에 젖어 백성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우상을 섬겼던 탐심의 결과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 교계는 다윗 왕처럼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고 정당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하고 있을까요? 특히 교회 내 모든 조직과 노회 및 총회 등 많은 조직들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고 있을까요? 다윗처럼 값을 치르고 타작 마당을 구입하는지, 아니면 아합과 이세벨처럼 탐심 가득한 우상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요?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들려오는 많은 소문들은 과연 아합과 이세벨 같지 않은지요? 나 자신이 아합이나 이세벨 같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한 회개를 통해 공의를 굽게 하지 말고, 공과 사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 양심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힘 있는 권력자들과 많은 부를 가진 자들이 흔히 횡포를 부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고개 숙이며 그들의 행사에만 귀를 기울이고, 옳고 그름의 분별력을 잃고 일을 그르치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탄의 명령을 받아 일하는 분들 같습니다. 꽤 크다는 교회를 보면, 마치 담임목사는 보스 같습니다. 부목사님들을 하수인처럼 대우합니다. 교회에서 받으시는 도서비, 통신비, 유류비, 목회 활동비 등을 정말 양심에 찔림 없이 사용하고 계시는지요? 이러한 현대판 아합 왕의 모습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나약한 성도들의 말에, 바르게 주님과 교회를 위해 바르게 진언하고 일하는 성도들의 진실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 마음 깊은 곳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사람의 외형과 처지를 보면서 공의를 굽게 하지 말고, 다윗 왕과 같은 믿음과 정의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공사를 분별할 줄 아는 종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다윗과 아합 왕의 교훈을 잊지 말고 부끄럽지 않은 주님의 종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