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부 중독증의 이해

1. 중독이란 무엇인가
2. 중독의 특징
3. 중독의 원인
(1) 생물학적 원인
(2) 심리적 원인
(3) 환경적 원인

중독증은 약물이나 심리적인 것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적인 문제와도 관련된다. 이런 환경에는 자연적 환경도 있지만 심리적 환경도 있다. 자연적 환경이 주변 여건이나 조건을 말한다면, 심리적 환경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치중한다. 그러나 이런 것을 넘어 여기서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 외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심리적 총체성을 포함한다. 신체 조건이나 유전적 문제가 중독증에서 아무리 중요해도, 주변에서 자극받는 중독자의 마음이 작용하는 현상이나 증상을 도외시할 수 없다. 인간 존재가 ‘환경의 산물’이라는 말은 이를 말한다. 주변 문제가 그들의 마음을 자극해 그런 중독의 문제로 유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환경적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일상의 도피

일상에서의 도피는 중독자들에게 일차적인 문제다. 삶이 반복되고 지루하다고 생각될 경우 탈출 심리가 작동한다. 이 경우 어떤 이유로든 생활에서 활력을 잃고 권태스럽다고 느낀다. 자신의 요구들이 충족되지 않거나 기대감이 무너져 허망하다고 생각되는 상태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탈출·도피 심리가 일어난다. 중독에 빠짐으로써 복잡한 심리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것이다. 중독은 그들에게 유일한 도피적 수단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알콜 중독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우울하고 불쾌한 기분을 전환하거나 기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술을 마신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 역시 현실 불만족과 고통 회피 수단으로, 우울과 권태로움, 외로움을 벗어나거나 줄여주는 수단으로 중독을 이용한다. 중독자들 중 대부분이 현실에서 낮은 자기 존중감과 빈약한 자기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자신에 대한 불만이 많을수록, 자존심이 낮을수록,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반면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해소할 기회나 방법이 부족할수록 중독에 의지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중독에 빠져드는 동안만은 적어도 몰입하고 그 즐거움에 빠져 자신을 괴롭히던 불편한 생각들과 기분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중독에 빠져드는 상황은 처음부터 계획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려다 점차 빠져드는 것이다. 이 현상은 일상의 문제, 현실의 어려움, 그리고 힘이 나지 않는 마음 상태가 바탕이 된다. 실제 중독자들 중에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부터 낮은 자존심과 만성적 심인성 우울증으로 고통받아온 사람들이 많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자신이 부적절하고 열등하며 거절당한 존재라는 경험을 많이 할수록 중독으로 발전할 소인이 높다.

많은 중독자들은 어린 시절을 자기 존중감이 낮고 또래에 비해 사회적 성취와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시절로 회고한다. 특히 도박중독자들의 내면에는 사랑받지 못하고 불행했지만 도박판에서 성공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 열등감과 거절당한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구, 결핍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동시에 잠재해 있다. 도박에는 이 모든 것들을 보상할 마술적인 위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박은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상받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수단이자 통로다.

그런 점에서 도박중독자들은 도박이 부와 성공, 사회적 인정 욕망, 그리고 도피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도박은 그들에게 더 이상 나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는 최상의 수단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도박이 일시적으로 부적절감과 열등감을 경감시키며, 현실에 대한 불만을 소망 충족적인 환상과 기대, 높은 자존감으로 증폭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2) 역설적 희망

중독은 그들에게 역설적 희망을 제공한다. 알콜이나 도박, 약물 등은 다른 세상적 일들을 잊게 한다. 그러면서도 남이 알지 못하는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제공한다. 그토록 많은 좌절과 상처를 안겨준 중독이 그들에게는 최후의 구원으로 비치는 것이다.

알콜 중독자들은 술에 취하면 아무도 그들을 귀찮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술에 취할 때가 가장 좋은 상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내는 남편을 대하기보다 차라리 술에 취하는 것이 더 좋다. 이런 심리는 여자와 남자가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아무래도 남자가 더 빈번하게 술을 접하게 된다.

남자들은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거나 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껴 술에 취한다고 한다. 이런 상태를 두고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C. G. Jung)은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원인”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잘못했을 경우 어머니 품에 안기면 모든 위협과 조롱에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술을 마시면서 동일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 이론이 온당하다면 더 많이 어머니 품에 안기기를 원하는 남자일수록 더 많이 술에 빠져든다는 이해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술 취하는 상태는 적어도 그들에게는 희망이다.

이런 현상은 도박의 경우 더 현저하게 드러난다. 도박 중독자들은 막바지에 이를수록 도박만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카지노 게임에서 돈을 따는 잭팟과 경마, 경륜에서 999배당을 의미하는 큰돈인 999, 수십억을 터트리는 도박자들이 있고, 이렇게 도박에서 한 탕 한다면 잃어버린 돈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과 명예, 자존심을 되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도박판에서 얻을 수 있는 강화나 성공 등 보상의 가능성은 적지만 성공했을 때 값어치는 암울한 현실이나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할 만큼 강력해 보인다. 손실이 누적될수록 크고 화려한 보상에 대한 소망은 더 강렬해지고, 불확실한 ‘대박’의 매력은 점점 더 커진다.

도박자들은 이렇게 화려한 비상 혹은 재기를 통해 도박판에서 영원히 신화적인 존재, 다른 모든 중독자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남는 꿈을 꾼다. 그들은 돈을 잃는다는 사실보다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의 세계에 속해 있다. 그들의 현실은 큰 돈을 딸 수도 있지만 더 큰 돈을 잃을 가능성이 항상 더 높은데도 말이다.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욱 도박에 목말라할지 모른다. 확실성은 체념되거나 정복이 가능하므로, 욕망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확실성은 무제한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는 중독자들이야말로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며 살아가고, 남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도 현실보다 이상 세계를 추구하며, 현실을 넘어 이상향의 세계를 추구하는 일종의 낭만적 특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쉽게 속고 쉽게 믿는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실제 이 가능성의 세계를 정복한 중독자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혼돈하고 있다.

3) 쾌락과 스릴의 추구

중독에는 쾌락과 스릴이 있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중독자는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야릇한 괘감과 스릴을 누린다. 이런 쾌감과 스릴이 그들을 점점 더 유인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쾌락과 스릴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즐겁고 흥분되는 역동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독자들이 중독 습관에 빠지는 이유도 단기간에 쾌락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중독적 행위를 즐기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이런 중독의 쾌락과 스릴에 빠져들다 보니 점차 습관이 돼 버린다. 실제 알콜 중독자들은 취하는 것에, 도박 중독자들은 게임의 묘미와 잃고 따는 아슬아슬한 쾌감에 빠져들면서 서서히 중독된 사람들이다.

쾌감과 스릴이 그 정당성을 넘어 일단 그들에게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된다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금단의 것을 즐기는 마음이 작용한 때문이다. 실제 그들이 특정 중독 행동에 습관적으로 탐닉하는 이유는 단기간에 쾌락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알콜, 마약, 그리고 도박 중독 모두 이러한 유사점을 갖는다.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는 것 외에도 일종의 쾌락과 스릴을 느끼는 것이다.

도박 중독이 대표적인 예다. 도박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게임의 묘미와 잃고 따는 그 아슬아슬한 쾌감에 녹아들면서 도박에 서서히 빠져든다. 도박이란 그들에게 매우 즐겁고 흥분되는 ‘자극적’ 활동이다. 그들은 돈을 잃은 후 자괴감과 후회에 빠지기도 하지만, 후회는 일시적이다. 그들은 여전히 다음 모험을 계획하고 도박 자금을 모으러 다닌다.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수준까지 금전적 손해가 막대해지면 원금 생각에 쫓겨 즐거움을 잃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막바지 위기에서나 발생할 뿐이다.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조차 도박할 때만은 ‘큰 돈을 맞아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복구할 기대에’ 초조해지고 흥분한다. 그들에게는 이런 초조감조차 흥분의 한 요소다.

이런 점은 우리가 도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다. 도박은 극단적인 초조감, 아쉬움, 모멸감과 극단적인 행복감, 만족감을 왕래하는 복합적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도박하는 동안 각성 수준이 증가하면서 ‘정말 살아있는 것 같고’, ‘기분이 고조되며’, ‘낙관적이고’, ‘흥분되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도박이 끝나면 긍정적 기분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기분이 저하되고 앞날이 깜깜하게’ 보인다. 도박자는 승패에 따라 극단적인 감정을 경험하므로, 돈을 잃고 따는 것은 즐거움과 흥분을 증폭시킨다. 돈을 많이 걸수록 쾌감과 스릴이 증폭되기에 도박에 깊이 빠져들수록 거는 액수는 점점 더 커진다.

4) 자기 고양의 수단

인간은 환경에 눌리면 벗어나려 한다. 벗어나는 수단이 현상적으로는 회피나 도피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자기 고양을 시도한다. 이는 중독에서 자기 고양이 중요시되는 이유다. 물론 자기 고양의 문제는 중독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본능적 특성이다. 어느 누가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이라 하는 데 동의하겠는가? 자신이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임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자신을 중요하고 우월한 존재로 느끼고 싶어한다.

중독은 묘하게도 자긍심을 고양시킨다. 도박 중독자들의 경우, 도박판에서 돈을 따면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우수하거나 행운이 따르며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도박할 때 남보다 우월하고 중요한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긍심을 되살리는 대가로 손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도박판에서 자신이 고양되고 능력이 증가되는 느낌을 받을수록 자기 강화의 수단으로 도박에 탐닉할 위험성은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중독은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효과적으로 고양시키는 방법이며, 강화시키는 수단이다. 실제로 알콜 중독자들도 술을 마실 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내성적이고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상호 작용이 수월해질 것을 기대하거나 실제 쉬워지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사교성을 강화하려고 술에 의지하며, 실제 적절한 알콜 섭취량은 사교성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고양의 욕구가 강한 사람은 도박판에서 크게 한 판(big win)을 따면 선망의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돈을 따는 순간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고 부러워할 뿐 아니라, 도박판에서만은 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약물이나 활동 자체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 누리는 포만감이나 각성 상태, 혹은 환상체험에 중독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며 강력하고 찬미받는 존재라는 환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중독은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 자신이 희구하는 변화된 다른 정체감 상태(altered state of identity), 즉 소망하는 이상적 환상 속에 자아를 몰입한다. 모든 중독은 일상적인 자기로부터 분리돼 또 다른 나를 추구한다.

물론 중독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이 결점이 바로 그들을 점차 이상향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러므로 중독은 참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이다. 중독을 통한 자기 고양은 실제적이든, 착각이든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도박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강화하는 주된 수단이 돼 버리면 이전보다 더욱 자주, 오랜 기간동안 중독의 유혹에 직면한다.

일단 자존심이 상하고 우울할수록,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성장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도박에 자꾸 의지한다. 중독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능력을 증대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는 일과 직업에서 길러야 할 기술을 스스로 차단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배워야 할 사교성을 놓치고 친구들과 가족, 배우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실제적인 자기 성장과 자기 고양은 불가능해진다.

5) 일시적 만족

중독증에서 일시적 만족은 매우 매력적인 특성이다. 사회 생활에서 모든 것은 상당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경험된다. 그러나 중독은 행동과 동시에 일시적·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독증을 일종의 쾌락 추구와 관련된다. 중독은 일시적 만족이든 상당 기간 연장을 목적으로 하는 도피이든 그 목적은 다른 것보다는 즐거움을 지향한다. 실제 이들이 쾌락을 찾거나 도피의 수단으로 중독을 이용할 때 효과는 항상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괴로움은 빠르게 사라지고 흥분과 쾌감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일상 생활에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돼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불쾌한 기분을 억제하고 지낸다. 설사 기분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해도 상당 기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갈등을 피할 수 없지만, 중독에서는 그 효과가 언제나 즉각적이다. 일시적으로, 단번에 괴로움을 피하거나 만족감을 얻는데 술이나 마약, 중독보다 빠른 길은 없다.

심지어 그들은 중독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즉시 흥분되고 설레며 가슴이 뛴다. 중독에 빠지는 즉시 쾌감과 스릴이 전달된다. 도박 중독에서는 큰돈을 잃고 빚 독촉에 시달려도 ‘빨리 따서 해결하면 된다’면서 단기간 해결이 가능하다는 비합리적 기대를 만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기대에 부풀려 즉각 괴로움이 가라앉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다만 그들의 만족이 일시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중독자들은 요구를 지연시킬 능력이 낮고 즉각적 만족을 추구한다. 그러나 만족을 늦추지 못하고 즉각적 만족감을 찾게 되면 파국적 결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즉시적 만족은 강력하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다. 처음에는 강력했던 효과가 점점 더 줄어들기 때문인데, 이때 중독자들은 다시 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일시적인 만족을 다시 찾기 위해, 그리고 자꾸 떨어지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시 술을 마고 박판을 찾는다. 술의 양은 증가하고 도박 액수는 점점 더 높아진다. 이들의 욕구 지연 능력은 자꾸 낮아지는데도 즉각적인 만족에는 끝이 없어진다.

6) 잘못된 기대

환경은 때로 잘못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런 현상은 환경을 긍정, 부정으로 판단한 결과이지만, 이런 특성은 때로 중독들로 하여금 잘못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런 기대는 중독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잘못된 기대이지만,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잡을 수 있으며, 누가 뭐래도 확실한 기대일 수 있다. 이런 기대는 그들에게 매우 희망적으로 작용하여 일시적으로 상당한 힘을 제공한다.

도박 중독의 경우 인지적 기대는 도박을 지속하거나 행동을 심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박에 심취할 때 사람들은 흔히 ‘돈을 딸 것’이라 기대하거나 ‘돈을 딸 수 있다’는 불합리한 신념을 갖는다. 돈을 딸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나 희망 없이 도박을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도박판 결과는 언제나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 도박판에는 예측 가능한 법칙이 없으며, 있다면 도박판에서 돈을 딸 확률이 몇 퍼센트인가 하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확률은 자체의 내재적 원리에 의해 작동하므로 원하는 결과가 언제 출현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확률이 지배하는 세계는 근본적으로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 비록 기술과 전략이 작용한다 해도 결과는 언제나 확률에 비해 미미하다. 슬롯머신 버튼을 누르거나 주사위를 던져서 언제 어떤 숫자가 나올지 누가 예측할 수 있는가? 룰렛이나 주사위 숫자를 원하는 대로 나오게 할 능력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런 마법적 능력은 도박에 마치 무협적인 환상을 가미한, ‘도성, 도왕’이라는 미명으로 일상에서는 저능한 존재를 도박판에서는 이상화시킨다.

물론 이런 현상은 도박판을 미화했던 과거 홍콩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도성이나 도왕이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박자들에게는 기묘한 전능감과 마술적 환상에 대한 기대가 잠재해 있다. 그들은 확률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도박판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고, 법칙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거나 냉철한 판단력을 세우려 열중한다.

룰렛에 깊이 빠져든 광적 도박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룰렛에 비결이나 전략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흥분하지 않고 비결을 적용시키면 돈을 딸 수 있다고 믿었다. 돈을 잃은 후 그는 동생에게 돈을 보내달라는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룰렛의 비결을 찾았고 이 비결을 적용하지 못해 돈을 금방 다 잃었다. 저녁에 다시 비결을 따라 했더니 3천프랑을 쉽게 땄다. 이러니 어찌 내 비결이 맞는다고 믿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이런 그의 말에도 룰렛에는 전략이 없다. 룰렛은 0에서 36까지 눈금으로 37등분을 한 회전원반 가운데 주사위를 놓고 원반을 회전시킨 다음 주사위가 어느 눈금 위에 멈추느냐에 따라 금전을 거는 도박으로, 돈을 거는 방식에 따라 1/2부터 1/5까지 당첨 확률이 다양하지만 결과는 수리적 확률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기에 도스도예프스키는 동생이 보내준 돈을 모두 잃고 시계까지 전당포에 잡혀야 했다.

도박 중독자들의 경우는 매우 역설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간혹 상담에서 돈을 딸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끊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경우에도 돈을 딸 수 없음을 진정 자각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며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여전히 잠재해 있다. 심지어 그들은 돈을 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 불합리한 요행과 행운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카지노에서, 경륜과 경마에서, 주식에서 ‘요행으로, 운이 좋아서 대박이 터지지 않을까? 잭팟이 터지지 않을까, 999가 터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딸 수 없다’는 도박자들도 많으나, 그들 역시 도박을 그만두지 못한다. 그 이유는 도박하고 있을 때만큼은 딸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분명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 결코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정확하게 계산해 보지 않은 채 요행을 바라며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에도 마지막 희망이나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도박이 확률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확률을 정확히 계산해 보는 도박자는 드물다. 인간은 결국 선택적으로 정보를 취사 선택해 활용하는 인지적 행동자에 가깝다.

중독자들은 승패를 결정하는 복합적인 요인들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정보나 경험들만을 기억해 내고 활용한다. 도박판에서는 한 번 크게 따거나 조금씩 다른 맛을 들이면 다시 그 기회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과대평가하며, 잃은 기억은 과소평가하거나 망각한다. 이러한 오류는 돈을 따고 싶고 승리하고 싶은 소망과 연관성이 높다.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경제적 위기에 몰릴수록 그들의 소망은 더욱 강렬해지며, 이는 잘못 계산된 기대를 불러 일으켜 희망을 갖게 한다.

중독자의 확신과 희망은 애초부터 잘못 선택한 정보의 왜곡된 추론 과정, 막연한 희망에 기초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독자의 잘못된 기대는 합리적인 계산과 추론에 의거한 것이 아니며, 강렬하고 충동적인 감정과 소망, 중독의 근본 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 사고와 판단 과정의 오류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것이다.

7) 즉각적 만족

즉각적 만족은 중독자들에게 최대의 유혹이다. 일시적이란 것이 오래가지 못하는 점이라면, 즉각적인 만족이란 기대감이 즉각 이뤄진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중독자들이 쾌락을 찾거나 도피 수단으로 중독적 행동을 이용할 때 그 효과는 항상 즉각적이다. 중독 행동에서 괴로움은 빠르게 사라지고 흥분과 쾌감이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즉각적으로, 단번에 괴로움을 피하고 만족감을 얻는데 술이나 마약, 도박보다 빠른 길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중독적 행동을 시도할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설레며 가슴이 뛴다. 그들이 탐닉하는 중독 행동을 시도할 때마다 쾌감과 스릴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알콜 중독자들의 경우 술에 취하면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환상이 일어난다. 도박 중독자들의 경우에도 큰 돈을 잃고 빚 독촉에 시달려도 ‘빨리 따서 해결하면 되니까’하면서 단기간에 해결이 가능하다는 비합리적 기대를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대에 부풀려 즉각 괴로움이 가라앉고 안심한다.

그들의 만족이 비록 일시적이지만 즉각적이라는 점이 그들에게는 매력이다. 파국적 결말을 피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즉각적 만족은 강력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인데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작용할지 모른다. 처음에는 강력했던 효과가 점차 감소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회가 점차 전문화돼 모든 것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시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오랜 노력과 정력을 들여야만 어느 정도 바라는 것을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능력과 기술이 부족한 사람들, 여건이 구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즉각적인 것에 심취하는 특성이 더욱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나 기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즉각 대가가 주어지거나 결과가 나타나는 것들에 심취하기 쉽다.

미국에서 한 달을 기다려 받는 월급(月給)보다는 1주일마다 받는 주급(週給)이 상용되는 것이나 즉석 복권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심리를 활용한 것이다. 인내심이 점차 약화되는 현대인들에게 즉각적인 특성은 중독을 부추길 위험성이 그만큼 높다.

8) 호기심의 산물

중독은 호기심의 산물일지 모른다. 모르는 것에 기대를 갖고 결과를 나름 예측하는 일은 신기하게 느껴진다. 결과를 누구도 알 수 없는 점이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이처럼 인간은 결과를 알려고 하는 호기심이 강한 존재다. 아기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적극적으로 주변 환경을 숙지하려는 생리적 경향을 보인다. 지적 탐색과 숙달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이런 특성이 중독에서도 작용한다. 중독자들은 이런 호기심에 충만해 있는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러나 중독자들의 이런 호기심은 허구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호기심이 사실상 그들을 중독에 묶어버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이유로 알콜 중독자들은 술에서, 그리고 도박자들은 도박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박 중독자들은 대개 돈을 따기 위해, 잃은 돈을 복구하기 위해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도박자의 생각은 정직한 마음도 아니며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돈에 시달리지 않는 도박자, 빚이 없는 도박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딸 경우, 잃을 경우 모두 도박을 계속한다. 도박을 끊지 못하는 것은 도박의 매력이 환상과 욕망, 쾌감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의 사회는 중독을 부추기는 여건들이 주변에 많다. 아동들은 일찍부터 중독을 접하면서 자라는 분위기다. 인터넷의 발달로 게임이 일상화됐고, 화투나 카드 하나쯤 없는 가정은 거의 없다. 물론 외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인터넷 발달로 PC방이나 게임방에서 어른들이 노름하는 것을 아동들이 접하며 자라나기 쉽다는 것을 일깨우고자 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게임하고 도박하는 법을 일찍부터 관찰하고 배우는데, 이는 중독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과 문제까지도 모방한다는 문제가 있다. 옆에서 중독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중독에 대한 억제력이 약화되며, 중독을 즐겁고 긍정적인 행동이나 놀이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10대들의 사이버 머니 도박을 들 수 있다. 10대들의 도박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게임하는 부모나 친척의 도박을 모방한 결과다.

아동과 청소년들은 부모나 또래 집단의 행동을 쉽게 모방한다. 아이들 눈에 부모는 유능하고 올바르며 높은 사람이다. 부모가 재미있게 노름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아동들은 큰 문제라는 의식 없이 도박을 재미있는 놀이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청소년기가 되면 또래들끼리 내기를 걸면서 노름을 즐기기 시작한다.

중독을 일찍 접하면서 성장한 청소년들은 중독의 부분적인 장점인 즐거움과 쾌락만을 인식하거나 인터넷 게임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도박이 얼마나 해롭고 위험한 놀이인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문제성 도박으로 발전할 위험성에 노출된다. 부모의 중독문제가 심하면 심할수록 자녀들도 문제가 심각할 것은 자명하다.

9) 역설의 유혹

중독은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헤어나기보다 더 빠져들기 때문이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는 “잃은 돈이 너무 커서 복구하려고” 혹은 “본전 생각에” 그만두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큰 돈을 떠간 빚을 갚은 후에 도박을 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만일 빚을 갚은 다음, 혹은 운이 좋아 원금을 회복한 다음 도박을 영원히 끊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순수한 의미에서 중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알콜 중독자는 돈이 없어도 술을 마신다. 아니 돈만 생기면 술을 마신다. 그들은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술이 밥보다 좋다. 도박 중독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돈만 있으면 도박판에 간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한다. 그러기에 돈을 잃지 않거나 노름 빚이 없는 도박자는 없다. 다만 얼마를 잃었는가, 노름 빚이 얼마인가 하는 차이만 있다.

중독자들은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손실을 입게 됐을까? 그것은 탐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자신이 탐닉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중독자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도박중독자들은 ‘운이 안 따라서, 재수가 없어서, 아직 실력이 모자라서, 사기를 당해서, 밑천이 모자라서’ 등 다른 이유를 대면서 자신이 도박을 했다는 근원적 사실을 회피한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면 궁극적으로 중독을 계속할 명분을 상실하고 도박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위기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독자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중독에 탐닉했기 때문이다. 큰 빚을 지고 돈을 잃은 도박 중독자들의 경우 장소가 도박판이므로 모든 위기는 도박한 자신과 도박판에서 초래됐다. 문제는 깊이 빠진 중독자일수록 현실의 난관을 단기간에 해결하려는 데 있다. 손쉽게 빨리, 일거에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할수록, 기회는 다시 ‘한판 크게 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잃은 돈을 만회하고 난관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잃은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은 너무나 멀고 암담해 보인다. 힘든 노동과 적은 봉급, 오랜 시간 등등은 원래 싫어했던 것이 아닌가? 거기에 비해 도박은 ‘몇 번 크게 맞으면 지금까지 잃은 것들을 모두 보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지름길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잃게 만든 도박은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로 변모한다.

중독에는 이상한 희망이 존재한다. 중독 행위를 하기만 하면 모든 현실이 반전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알콜 중독자들은 술만 마시면 현실의 괴로움까지 잊고, 도박 중독자들은 도박판에 뛰어들면 갑자기 희망이 솟아오른다. 이런 희망은 다른 중독자들도 모두 동일하지만, 특히 도박 중독자들에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돈을 딸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도박자는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 직면하면 중독자는 깊은 우울에 빠져 절망하고 자살하거나, 도박을 끊고 재기의 길을 가는 선택의 기로에 처한다.

그럼에도 도박자들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울과 절망을 회피하려 하며 마지막까지도 불합리한 희망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잃은 것이 많고 절망이 심할수록, 기대는 오히려 더 강렬해진다. 잃은 곳에서 재기의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 역설, 상실의 장소가 재기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는 모순, 모든 문제의 근원인 도박이 마지막 의지책이 되는 모순, 이것이 ‘중독의 역설’이다.

10) 결론: 교회가 중독자들의 ‘결핍’을 채워야

이상에서 우리는 중독증의 환경적인 요인을 고찰했다. 나를 둘러싼 주변 여건,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속하는 여러 삶의 조건들이 모두 환경적인 것으로 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주어진 자연적 환경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든 중독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정신 기반의 허약함이 환경과 결합해 중독이 일어나는 것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더 원초적인 원인을 들라면 ‘모성 결핍’을 들 수 있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마땅히 받아야 할 정신 에너지인 부모의 에너지, 특히 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은 정신의 성장에 자양분이요 중요한 에너지이라는 것이다. 이런 중요성과는 달리, 우리 환경은 갈수록 모성 결핍이 일어나기 쉬운 상황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점차 중독의 기반을 쌓아서 더 많은 중독자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 못내 걱정스럽다. 교회가 이런 현상을 직시해 정신적·영적 측면을 고려해 교육하고 목회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만큼 성도들이 건강해질 것이라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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