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목사(듣는마음심리상담센터 대표).

컵에 2분지 1의 물이 담겨 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나 있다”고, 다른 사람은 “물이 반밖에 없다”고 반응을 한다. 전자를 낙관주의자라고 하고 후자를 비관주의자라고 한다. 비관주의자들은 무슨 일이든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이런 태도는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태어나면서 비관적인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지켜지지 않는 약속, 터무니없는 처벌,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학대, 예상치 않은 이별, 채워지지 않는 결핍, 희망에 대한 좌절의 연속 등의 경험은 비관주의를 심화시킨다. 천성이 낙천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계속되는 삶의 시련으로 상처를 받으면 이러한 경향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사람과 미래에 대해 불신하는 태도는 가정에서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며, 문화와 인간들의 사고와 감정에 침투한다. 불신이 팽배한 사회, 교류가 없는 가정, 애인에게 실연당한 마음,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상처, 억압, 사기, 사고 등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내면의 아픔을 갖게 한다.

사람에게 어떤 모양이로든 당했던 사람은, 여간해서는 불신의 사고방식을 버리기 어렵다. 자신이 마음을 열고 믿으면 괜히 남에게 이용당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는 상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부정적인 결과를 찾아보며 자신의 뿌리 깊은 확신을 옹호한다.

미래를 믿어봐야 실망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의 보호막을 유지하기 위하여 희망을 애써 깎아내리고, 즐거움을 얕보고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비관주의자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할 때, 자신을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며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한다. 상실의 가능성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 않고 미리 대비하고자 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비관주의는 결국 인간의 관계를 파괴한다. 비관주의자들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부정적인 태도로 인해 실망하여 그를 떠나버리기 쉽다. 비관주의는 자신을 실망에서 보호하겠지만, 대신 믿음, 친밀감, 지속적인 사랑을 누리는 것을 막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비관적인 태도를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긍정적인 태도로 변한다면, 삶과 인간관계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비관주의자가 관계회복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첫 단계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자신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비관주의는 악마처럼 끈질겨서 좀처럼 인식하며 떼어내기 힘들다. 비관주의자들은 비관적 요소 자체를 다 정당화하며 자기 합리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리라”(요 10:10)고 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람들이 세상의 상처로 인한 비관주의의 늪에 빠져 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이 땅에서 더 복된 삶을 살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자신의 비관적인 태도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또는 그 누군가에게서 비관적 태도를 경험했을 것이다. 비관주의자가 된 계기를 살펴보고 그 상황을 기억해 보라.

비관주의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억하고 그것을 목록으로 만들어 본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비관적 태도는 하나의 습관이다. 비관주의는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파괴한다. 누구든지 잠재적인 비극에 두려워하지 말고 가능성을 즐기며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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