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앞둔 얼마 전 불우이웃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매일 밤 붕어빵 장수로 변신하는 한 젊은 신부(神父) 이야기가 보도돼 화제가 됐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변신(?)'이었던 예수님처럼 성직자의 이 변신은 추운 겨울 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선물했다. 성직자의 가운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불우이웃을 위해 붕어빵 굽기를 쉬지 않았던 신부의 손은 거룩한 성당 한 켠에서 드리는 기도 못지않게 주님의 기쁨이 되었으리라.


감동은 때로 '붕어빵 장수가 된 신부' 이야기와 같은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예수님의 탄생은 감동이자 충격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태어나 본 적이 없는 곳,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변신이었다. 죄많은 세상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현현(顯現)은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나신 예수님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였다.

누군가를 위해 내 소중한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 타인을 위해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을 몸소 보이셨던 예수님이셨다. 다른 사람보다 더 부자여서,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능력이 많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세상의 권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먼저 내어놓을 때 가질 수 있는 권위, 먼저 섬길 때 섬김받을 수 있는 권위, 먼저 낮아질 때 높아질 수 있는 '섬김의 권위'였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탁소에 옷걸이들이 걸려 있었다. 갓 세탁소에 들어온 새 옷걸이에게 아주 오래된 옷걸이가 말을 걸었다. "이봐, 자네가 옷걸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말게." 그러자, 신입 옷걸이가 물었다. "이미 전 제가 옷걸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그렇게 내가 옷걸이라는 걸 강조하는 거죠?" 그러자 고참 옷걸이가 말했다. "가끔씩 말이야. 옷걸이들이 비싼 옷이나 고급옷이 자신의 몸에 걸리게 되면, 마치 자기가 대단한 것인양 착각을 하더란 말이지. 벗고나면 원래 옷걸이 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야."

우리 모두는 이처럼 옷걸이와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우리가 현재 입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벌거벗으면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입고 있는 옷에 너무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마치 대단한 것인양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새해를 시작하는 이 즈음, 분주한 일상속에서 진정으로 있어야 할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자.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모두 각자가 발디딘 곳에서 '붕어빵 장수가 된 신부'와 같은 아름다운 변신을 꿈꿔봄이 어떨까.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