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수로 구축 중요해
마르둑 신, 자연환경 종교적 표현
물 통제할 수 있는 신이 ‘참된 신’
자연환경 도전정신 주는 세계관

바벨론 왕궁
▲복원된 고대 바벨론 왕궁. ⓒ위키

3. 메소포타미아 절기의 특징

메소포타미아가 큰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애굽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자연 조건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메소포타미아(특히 바빌로니아 지역, 두 강 사이 땅)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지만, 사계절 마르지 않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과 비옥한 넓은 평야가 있었습니다.

아라비아 판과 이란 판이 충돌하여 생긴 거대한 메소포타미아 계곡은 처음에는 바닷물로 가득 찬 쓸모없는 땅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이란 산지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점점 채워지며 지금과 같은 넓은 충적토 평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충적토로 만들어진 메소포타미아 평원은 비가 내리지 않았고, 물이 없었기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땅 속에 철이나 금 같은 지하자원도 없었고, 목재를 얻을 수 있는 울창한 숲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있었지만 농사를 위하여 그 물을 내륙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은 실로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문화사적으로 볼 때 메소포타미아 하류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앗시리아 지역에서 먼저 시작하였으나, 이 지역은 목축을 하기에 좋은 초원 지대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문명이 크게 발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의 부흥은 바빌로니아의 발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문명의 시작은 늦었지만 바빌로니아 지역은 한 번 수로를 이용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사법이 소개되자 수많은 ‘도시 국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형태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은 비록 그 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자를 만들고 수로 농법을 개발하면서 메소포타미아 특히 남부(바빌로니아) 지역에 거대한 문명이 자랄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수로를 관리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모든 것이 다 충적토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하자원도 부족하였지만 튼튼한 수로를 만들 수 있는 목재나 돌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수로를 만드는 재료는 강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진흙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로 만들어진 수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수로 중에서도 잘 무너지거나 또 중요한 부분에만 불에 구운 벽돌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벽돌을 구울 나무나 석탄이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너무나 귀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축제 신년
▲신년 축제를 즐기는 고대 바빌론 백성들을 표현한 그림.
더구나 강으로부터 각 농토까지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거미줄 같은 수로를 파야 했는데, 수로가 어느 한 곳만 무너져도 모든 물길은 차단되고 따라서 농작물들은 강한 햇볕에 금방 타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메소포타미아 농부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농사 자체보다 수로를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수로를 관리하는 일은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왕의 업적에서 늘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일 정도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수로를 관리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공포를 준 것은 바로 홍수입니다. 나일강의 홍수와 달리 메소포타미아에서의 홍수는 ①3-5월 사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②흙벽돌로 쌓은 유프라테스강이나 티그리스강의 길고 긴 둑 중에서 어느 부분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늘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홍수가 한 번 발생하면 평원으로 이루어진 넓은 지역이 물바다가 되어, 재산과 인명이 한 순간 다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수메르 문명은 다양한 신화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때 만들어진 신화는 이후 메소포타미아 모든 국가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신화는 바빌론의 신인 마르둑(Marduk)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신화는 메소포타미아의 자연 환경을 신이라는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현대인들에게는 사실과 거리가 먼 만들어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현재의 자연 환경이 존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는 과학적이며 사실적인 이야기로 이해하였습니다.

이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계곡을 가득 채운 바닷물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바닷물의 여신인 티아맛(Tiamat)은 최초의 신으로 자신의 몸에서 민물의 남신인 압수(Apsu)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두 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신들이 세대를 이루며 태어나는데, 이 신들은 인간들처럼 매우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인간을 창조한 것도 자신들의 노예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벨론 마르둑 티아맛
▲바벨론의 신들. 티아맛과 싸우는 마르둑.
이처럼 신들의 세계를 질서가 없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수로가 만들어져 물이 통제되기 전 혼란스러운 메소포타미아의 자연 상황을 상징한 것입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는 신은 이런 혼란을 제거하고 세계에 질서를 가져오는 능력의 신입니다.

즉 바닷물과 민물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물이 통제되어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상태를 가져오는 신이야말로 참된 신이고 그 신이 바로 마르둑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둑은 티아맛을 죽이고 이 시체 안에 통제된 질서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이 창조된 세계의 중심이 바로 바벨론이고, 매년 춘분마다 마르둑에게 제사를 지냄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다시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각 도시는 다른 신들을 섬겼지만 마르둑은 늘 신들의 우두머리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심지어 앗시리아는 자기네들이 섬기는 신이 참 마르둑이라고 하며 바벨론의 마르둑을 모독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마르둑은 바닷물과 민물이 뒤섞인 메소포타미아에 ‘통제된 안전한 물’을 가져온 신 중의 신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물로 인하여 엄청난 고통을 당하지만 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물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신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유익만을 주는 자연 환경을 가진 애굽에서는 모든 신들이 감사의 대상이었지만, 생존하기 위해 자연 환경과 싸워 이겨야 하는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오직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신만이 섬길 가치가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자연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갖게 했고, 따라서 과학, 기술, 수학 등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자연환경을 가진 애굽에서는 불합리해 보이는 것조차 신이 주신 것으로 보고 순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는 자연환경 차이로 말미암아 신년 절기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달랐고, 이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도 정반대의 시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건기 황량 버려진 유적 마을 도시 야후디아 골란 고원 고대 역사
▲ⓒ이스라엘 골란 고원의 황량한 고대 유적지 모습. ⓒ픽사베이
이스라엘 농업, 전적으로 비 의존
여름은 고온건조, 겨울 저온다습
강수량에 적절한 시기 매우 중요
우기와 건기 맞춰 삶 방식도 적응

4. 이스라엘 절기의 특징

1) 이스라엘 자연 환경의 특징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강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강은 있지만, 농업에 쓸 수 있는 물을 제공하는 강은 없다는 뜻입니다.

우기에만 흐르는 와디는 많지만, 사계절 흐르는 강은 요단강뿐입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지중해 해수면보다 200-400미터 낮은 높이로 흘렀기 때문에, 그 물을 땅 위로 끌어올려 농사에 쓸 수 있는 방법이 고대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농업은 전적으로 비에만 의존해야 했고, 이는 매우 불안정한 농사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가뭄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에 보면 가뭄이나 기근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돌이 많은 산지로 이루어진 지형에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가나안 지역에서는 삶 자체가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처럼 풍요로울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러했듯 가나안 땅에 가뭄이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것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생존을 도모하여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름은 고온건조하고 또 겨울은 저온다습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에서의 농사는 비가 내리는 겨울철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저온에서도 잘 자라는 보리와 밀을 많이 심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귀한 땅을 쉬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에 건조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포도, 올리브, 무화과, 대추야자 등 과일 나무들을 재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농사는 일단 비가 많이 내려야 풍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비의 양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내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즉 ‘이른 비’가 촉촉히 내려야 여름 내내 바짝 말라 쇠처럼 딱딱하게 된 땅이 부드러워져 고랑을 파고 씨를 뿌릴 수 있게 됩니다. 또 차가운 ‘늦은 비’가 제 때 내려야 곡식들이 알차게 영글어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올리브 감람산 예루살렘 이스라엘 거룩한 교회 기독교 그리스도 예수 성자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감람산. ⓒ픽사베이
이처럼 가나안에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런 이유로 성경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주로 과일 농사를 짓는데, 비록 비가 내리지 않아도 멀리 만년설로 덮여 있는 헬몬산에서 새벽마다 내리는 이슬을 과일나무들이 흡수하여 당도가 높은 과일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넓고 평평한 지역은 과일나무보다 보리나 밀을 심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과일을 심을 수 있는 장소는 산지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조그마한 공간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제한됩니다.

과일나무 중에서도 포도나무를 심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포도나무는 과일 나무 중 비교적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포도나무를 심을 수 없는 좁은 곳에서는 그 다음 선택으로 경제성이 높은 감람(올리브) 나무를 심게 됩니다. 이렇게 작은 땅이라도 놀리지 않고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여름철 농사법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농업 주기는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와는 다르게 겨울철 우기와 여름철 건기로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 우기와 건기의 구분에 맞추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방식도 적응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절기는 가나안 땅의 농사 주기에 맞추어 발달돼 왔으며, 이를 아는 것이 이스라엘의 절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는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오역이 나오고 성경의 내용에 공감하는 정도가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