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제1독자 이스라엘 백성들 대상으로 쓰여
2-5천 년 전 문화 배경 잘 이해할 것이라 전제해
너무 쉽게 성경에 대해 결론내리는 것 매우 위험

애굽 이집트 나일강
▲애굽인들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당시 벽화. ⓒ픽사베이

7. 요셉은 왜 바로에게 야곱의 가족을 목자라고 소개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왜 요셉이 굳이 애굽인들이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증히 여기기까지 하는 목축을 야곱 가족의 가업이라고 바로왕에게 소개하였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요셉의 신앙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족장 시대의 애굽 문명은 당시 가나안과 비교하여 보면 굉장한 유혹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비에 의존해야 하고 따라서 매우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가나안과는 다르게, 애굽은 사계절 물걱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일강 홍수가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향이었습니다.

성경도 애굽을 풍요의 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애굽은 늘 가나안의 기근으로부터 대피하는 장소가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식량만이 풍부한 것이 아니라 금과 은 같은 보화가 많은 곳으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사 45:14; 히 11:26). 애굽인들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황금과 각종 보석 그리고 고급 세마포(잠 7:16; 겔 27:7)는 화려했던 애굽인들의 삶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가나안과 애굽의 삶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지방의 젊은이들이 돈과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소명이 없었다면 야곱의 70 가족도 화려한 애굽 문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소명 의식을 불어넣어 준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야곱 가족이 애굽 문명에 흡수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하여 목축을 직업으로 선택함으로써, 에굽인들과 동화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즉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인들과 어울려 430년간 농업에 종사하였다면, 자신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애굽인이 되어버렸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반드시 야곱의 가족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유언을 할 때도 출애굽시 반드시 자기 뼈를 가나안으로 가지고 갈 것을 후손들에게 맹세시켰습니다(창 50:25; 출 13:18-19).

야곱의 후손들이 430년간 애굽에 살면서 이 약속을 기억하고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고센 땅에서 목축에 종사하며 살게 한 요셉의 지혜였습니다.

비록 애굽인들이 싫어하는 목축에 종사함으로써 애굽인들에게 차별을 받았을지언정, 그 덕분에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요셉이 얼마나 영적인 사람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요셉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8. 결론

야곱의 후손들은 400여년 동안 애굽에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살았지만, 요셉의 믿음 덕분에 아브라함 후손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기간을 ‘400년 애굽 종살이 기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목축이 가업이라고 하여 애굽인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애굽 귀족들의 가축이나 돌보는 비참한 종살이 생활을 하였지만, 이들은 요셉 덕분에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 시절과 좋은 대비를 보여줍니다. B.C. 586년 바벨론으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은 B.C. 537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까지 불과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바빌로니아의 포로 정책에 따라 잡혀갈 때는 병자와 약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혀갔지만 1-3차 포로 귀환을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불과 5만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적은 숫자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이들이 비록 전쟁 포로였지만 불과 60여 년만에 바빌로니아인들과 동화되어 풍요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재산도 모으고 고위직에도 오르면서, 바벨론에서 굳건한 삶의 터전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광야.

따라서 막상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그동안 바벨론에 모아 놓은 재산을 버리기 너무 아까웠고, 예루살렘은 황페화되어 선뜻 귀향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부족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애굽에서는 요셉의 믿음 덕분에 반드시 가나안으로 돌아간다는 확신과 희망 속에 살 수 있었지만, 바벨론에서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겠다는 다니엘 등 여러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소홀히 하고 바벨론의 화려한 물질 문명에 빠져 지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그 정체성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세상 물질의 유혹이 가장 견디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요? 애굽의 금은보화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인가요? 예수님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 6:23).

9. 첨언: 성경 문화 배경을 공부하는 즐거움

성경 문화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성경이 더 잘 이해되고, 더 재미있어집니다. 성경은 이미 제1독자(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문화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 날쩌 신문기사 하나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독자들이 이미 기자와 많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신문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만일 자세히 설명하면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오히려 짜증을 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쁜 시간에 누구나 아는 것을 다시 반복하여 읽게 되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를 5백 년 뒤 누군가가 읽는다고 가정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사람은 5백 년 전 사람들이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록된 문자만 가지고 판단하게 되면 많은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는 기사가 쓰였던 당시 문화를 미리 알게 된다면 보다 더 정확한 본문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을 공부하기 힘든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 모세오경은 4,500년 전 또 신약은 2,000년 전 쓰여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천 년 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전혀 다른 자연 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성경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너무 쉽게 성경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자연환경 그리고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잘 모르고 언어마저 바뀐 상황에서 함부로 쉽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이런 것들에 대하여 잘 알면 알수록, 저자의 의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런 노력이 있더라도 우리가 성경의 의미를 100% 정확히 파악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는 그만큼 더 성경의 본래 의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마치 다니엘이 서책을 연구하다 70 이레의 비밀을 깨달은 것처럼(단 9:1-2), 우리도 성경을 끊임없이 연구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는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오역이 나오고 성경의 내용에 공감하는 정도가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