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기적 물고기 떡 빵 모자이크
▲오병이어교회 내부 바닥의 모자이크. ⓒ크투 DB
본문: 요한복음 6장 27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새로운 차원을 여는 장면입니다. 사람이 왜 살고 있는가의 목적론적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수고하면서 살아가는 삶에서 그 의미를 질문하는 상황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육신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육신의 음식처럼 사람이 육신만을 위해 먹고 살다가 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식량도 노동과 이마의 땀에 의해 살면서 얻게 되는 양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영생을 위한 식량’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육적인 차원의 식량이 아니다
육체는 한계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썩을 양식’은 인간의 육신을 위한 식량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살기 위해 먹어야 합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먹지 않으면 곧장 죽게 되니까요.

그래서 사람이 사는 모습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먹고 살기 위해”라고 말합니다. 육신을 위한 식량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먹지 않으면 죽게 되니까요.

그런데 본문에서는 더 깊은 차원에 대해서 말합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육신을 위한 양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존재에 대한 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썩는 양식’을 상징적으로 거론하면서, 육체의 한계성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더 잘 먹으려고, 그리고 남보다도 더 많이 먹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인간의 근본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탐욕을 중단하고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시각적 전환을 하라는 권고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를 양식 이야기로만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2. 영적인 차원의 식량
영적인 차원의 식량이 있다는 말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육신을 위한 식량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살아도 육신적인 차원을 넘어 살다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정신적 차원을 위해 남달리 업적을 남긴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먹고 사는 것을 넘어 정신적인 차원을 살았던 사람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영국 수상 처칠을 비롯해 피카소, 토스카니니는 각기 정치가와 화가, 그리고 음악가로서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산 20세기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 외에도 기라성(綺羅星), 이른바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이라는 명성이 드높은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들도 모두 한 삶을 살다간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더 높은 차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영생하도록 하는 영적인 차원입니다. 정신적인 차원이 있는 것과 같이, 영적인 차원도 있습니다.

영적인 차원은 정신의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영역입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의 신비한 세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식량은 먹고 마시는 육신적인 것을 넘어서는 차원입니다.

물론 영생하도록 있는 식량은 육신을 위한 것 원리는 동일합니다. 먹고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빵은 생명의 물(요한복음 4:14)과 매우 밀접하게 일치합니다.

이 물은 한번 충당되면, 영혼 안에서 영원한 에너지로 흐르고 솟아올라 의식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을 부여합니다.

그런데 불멸하고 썩지 않는 음식이 있습니다. 영혼 안에 천상의 생명을 먹이며, 일단 동화되면 신성한 생명자체가 됩니다. 바로 육신의 차원을 넘어선 영적인 차원입니다. 한계적인 육신의 차원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의 차원입니다.

3. 인자가 주시는 식량
주님이심을 알아보고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양식을 언급하면서, 인자가 주시는 식량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인자라는 사람의 아들이 주시는 영원한 식량이라는 말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위한 존재를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인 주님은 이 무한한 보물, 이 영원한 축복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큰 선물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가장 격렬한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주님을 찾는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이유를 대조하면서, 영원한 세계를 말합니다. 주님은 잘못 오해하게 되면, 기적의 일꾼이나 현세의 유력자, 승리의 열광자들의 광대한 무리의 예언자 지도자만 아닙니다.

그런다 해도 인자가 주시는 식량은 영원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인자가 주시는 영생의 문제는 요한복음의 주요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시간과 감각과 육체와 세상과 죽음에 관계없이 완전한 축복의 삶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여기서 주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메시야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심을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주님의 신비와 지상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주님입니다. 이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영생을 위한 식량은 육적인 차원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영생을 위한 식량은 영적 차원임을 깨닫게 하소서. 영생을 위한 식량은 인자가 주시는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이 영생을 허락하시는 주체임을 믿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